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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8월 13일이니 2일 뒤면 광복 60주년 기념일입니다.

대한제국이 붕괴되면서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국권을 빼앗긴 뒤 우리 민족은 200만 명의 인원이 참가한 1919년 3·1운동을 비롯하여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35년간 민족해방을 위한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전개했습니다.

그러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하여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우리민족은 해방을 맞게 됩니다.

주권을 빼앗긴 역사, 또다시 한국전쟁으로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의 나가사키(長崎), 히로시마(廣島)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월 9일 얄타협정에 따라 러시아가 대일선전포고를 한 데 이어 38선 전역을 점령하였고,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한 미국이 38선 분할안을 제기하였습니다. 9월 8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였습니다. 이로써 한반도는 자유주의 미국과 사회주의 러시아가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주권을 빼앗긴 한 번의 역사가 5년 뒤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로 다시 나타납니다. 이는 반세기가 훌쩍 흐른 지금까지도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과 같은 이념 논쟁이나 얼마 전에 있었던 총기난사 사건으로 그 가족과 온 국민이 오열하였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 주변의 현실과 잔영으로 따라다닙니다.

이러한 현실이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감상할 작품들도 그런 우리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과 현실을 실감나게 담아낸 전쟁 보도사진가(photo journalist)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 Swiss, 1916-1954)의 전쟁 관련사진 9점입니다.

함께 감상하면서 광복을 자축하고 그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 비숍(Werner Bischof)의 초상
ⓒ Bischof
비숍의 사진에는 자연에서는 담아낼 수 없는 그만의 아름다움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전쟁과 관련한 그의 사진에는 인간의 내면을 읽어 표현해주는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의 사진들을 귀 기울여 감상하고 있으면, 전쟁 당시의 실감나는 상황과 그 현장에서 일어나는 소리들이 지금도 들려오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의 사진집도 이미 8권이나 출판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사진들에 비하면 그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습니다. 또 그의 개인 누리방에 있는 설명조차도 남쪽과 북쪽을 바꾸어 달아 놓았거나 지명을 잘못 표기하는 등 옳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아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38세의 이른 나이에 사진에 대한 열정을 거둔 비숍

스위스의 사진가 비숍은 취리히(Zürich)에서 태어나 1932~1936년까지 그곳에서 예술과 기술공부를 했으며 1942년 광고사진 작업실을 열어 활동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1945년에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지의 피난민을 찍어 유럽의 전쟁참상을 보도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으며 1948년에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를 여행하며 취재한 작품들이 라이프(LIFE) 잡지에 실리면서 대호평을 받았습니다.

1949년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보도사진가 단체 '매그넘포토'(Magnum Photos, 세계대전과 9·11 사태를 비롯하여 세계의 사건들을 보도하는 사진가들의 모임)에도 가입하여 활동하였습니다. 1951년 라이프지의 일로 인도에 가서 민중의 기근을 촬영했는데 이것이 미의회를 움직여 대량의 밀가루를 보내게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952년에는 한국에 와서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촬영했으며, 이 때 찍은 사진이 아래 작품들입니다.

멕시코를 취재하고 칠레를 거쳐 페루를 여행하다 1954년 5월 16일 안데스의 한 낭떠러지에서 추락, 치료를 받다 5월 24일 그의 나이 38세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진에 대한 젊은 열정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시각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흑백사진으로 표현된 비숍의 예술적 재능은 정평이 나있는데, 사건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형적인 바탕 위에 국제적인 감각과 시인의 감정이 고도로 융합되어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Kaesong. International Press photographers covering the Korean War.
ⓒ Bischof
한국전쟁 당시 개성에 취재 나와 있던 국제 보도사진 기자들의 모습입니다. 한국전쟁의 실상이 알려졌던 것과 상상했던 것에 비하면 기자들의 숫자도 많습니다. 또한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자세히 보면 불과 50여 년 전의 사진기인데도 그 크기와 모양이 놀랍도록 크고 이색적입니다. 이처럼 사진기의 기종과 그 변천사도 볼 수 있어 재미를 더해줍니다.

▲ 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 Bischof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남북 모두 전쟁 포로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남쪽을 점령하고 있던 유엔이 정치적 적응과정을 위해 중국과 북쪽 포로들을 재교육하고 있는 거제도 막사 안 모습입니다.

예상보다 큰 건물이지만 허술해 보이며 그 안에 빼곡히 들어 앉아있는 모습이 숨을 쉬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화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뒷모습의 교육자는 팔동작조차 힘있게 표현되어 있는 반면 형체만 보이는 수많은 포로들의 구부정한 모습이 참 대조적입니다.

▲ 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prisoners waiting for medical treatment
ⓒ Bischof
역시 중국과 북쪽 포로들을 위한 거제도에 있던 재교육 막사 안 정경입니다. 북쪽 포로들이 잠자리용으로 지급된 듯한 얇은 담요를 모두 똑같이 뒤집어 쓴 채 치료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화면의 앞쪽을 어둡고 무겁게 처리한 안정된 구도로 주인공들의 내면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독자(관객)를 직시하고 있는 포로들의 주름진 표정과 살아있는 눈동자를 통하여 전쟁의 잔인함과 전쟁에 대한 반항(반대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보고있는 독자에게도 그 섬뜩함이 전해져 옵니다.

▲ Island of Koje Do, A camp for North Korean prisoners of war
ⓒ Bischof
이 사진 역시 한국전쟁 당시 북한포로들을 가두어 두고 재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지어놓은 거제도 막사입니다. 담장을 대신하여 쳐진 가시가 난 철망이 허술해 보이며, 그 철조망 사이로 모자를 쓴 간부로 보이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철조망과 빨래 사이로 보이는 영상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신을 가두어 둔 그 철조망 위에 옹기종기 널어놓고 따스한 햇볕에 말리고 있는 빨래(세탁물)들이 참 정겹고 전쟁 상황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인간적으로 다가옵니다. 휴전은 한국을 38선을 따라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어 놓았지만, 철조망과 그 위에 얹어놓은 빨래 사진을 통하여 비숍은 전쟁이 인간의 감정마저 단절해놓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 Island of Koje, A camp for North Korean prisoners of war
ⓒ Bischof
1950-53년 사이에 남한을 돕기 위해 연합국이 결성되었는데 중국이 북한을 도우러 왔던 한국전쟁 당시의 거제도 포로수용소 내부의 모습입니다. 큰 자유의 여신상 앞 광장에서 포로들이 사각으로 돌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철조망 안에 있는 포로 수용소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는 상황도 가슴 아프지만, 그 앞에서 춤을 추게 된 포로들의 모습과 동작이 재미있다기 보다는 애처롭게 다가옵니다. 화면은 운동의 연장이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이나 주인공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고 구성도 자유롭게 묘사되어 서럽도록 아름답게 가슴에 남습니다.

▲ Village of San Jang Ri
ⓒ Bischof
남한과 북한 사이 최전선에 위치한 상장리마을에서 비숍이 찍은 사진입니다. 누워있는 모습과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들의 안타까운 표정만으로도 전쟁의 고통이 실감나게 전해지는 작품입니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시선을 잡아 끄는 구도입니다. 화면 앞 쪽 아래를 어두운 방으로 배치하였으며, 오른 쪽 위 사선으로 창 같은 작은 문을 그리고 그 작은 문 안에 왼쪽 손을 짚고 바라보는 소년을 그 문의 오른쪽으로 몰아 구성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왼쪽 가운데 윗부분의 밖을 밝고 환하게 담아냄으로써 많은 이야기와 희망적인 미래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 Island of Koje, The youngest member
ⓒ Bischof
역시 거제도의 북쪽 포로들을 위한 수용소입니다. 앞 왼쪽에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다른 인물들은 전체적인 윤곽만으로 묘사되어 있는 반면, 나이 많은 동료들과 똑같은 군복을 입은 일곱 내지 여덟 살 가량의 소년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기 몫의 국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받아 들고 있는 천진난만한 모습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으며, 예기치도 못한 이런 상항에서 뒤쪽의 수많은 포로들의 뒷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어린이의 앞 모습과 표정은 비교적 밝고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어린이의 순수한 모습을 통하여 비숍은 전쟁뿐만 아니라 휴전과 냉전에 대한 단호한 주장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 Town of Pusan during the Korean War
ⓒ Bischof
1952년 한국전쟁 당시 비숍이 부산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전쟁동안 한국의 수도는 부산이 되었습니다. 제한된 세계인 답답한 공간 안에 가둬진 듯, 길거리 양지 바른 구석에 모여 있는 고아 셋의 각기 다양한 표정을 몸서리쳐지도록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누추한 차림의 아이들은 각기 다른, 고통에 찬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맨 앞 쪽 아이의 얼굴에 나타난 불확실한 표정을 통하여 그 당시의 상황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숍은 한국전쟁 뿐 아니라 아시아 아이들도 이런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그 이전에 비숍이 찍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생겨난 유럽의 고아들과도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그가 전쟁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주요 주제임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그 무엇으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 Bischof
이 사진도 마찬가지로 유엔이 중국과 북한 포로들을 재교육하는 수용소와 그 수용소를 지키고 보초를 서는 막사의 모습입니다. 그 막사를 배경으로 저녁 햇살이 비치고 있으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찬거리로 보이는 것들을 묶어 머리에 인 채 그 곁을 무심히 지나가고 있는 인근 마을 주민의 모습입니다.

구도와 배경, 윤곽이 아름답고, 저녁 어스름 집으로 향하는 여인의 모습이 흑색으로 강하게 표현되어 푸근하고 따듯하게 느껴집니다.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대조적인 풍경이 현존한다는 사실이 더욱 서럽고 시리도록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을 예술로 승화한 비숍

이렇듯 비숍은 전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전쟁은 슬픔과 고통 뒤에 감춰진 희망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38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여 사진의 역사에 이름을 일찍 올렸으나 "인간의 고통스런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예술가"로,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가 사망한 이튿날인 1954년 5월 25일에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도 불인전선에서 지뢰를 잘못 밟아 사망했습니다. 카파가 철저히 대상의 현실성을 냉엄하게 표현했던 반면, 비숍은 종교적 평화주의자처럼 이기고 진 나라에 상관없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를 연민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의 사진 초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로 표현했으나, 각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그의 관심을 현실적인 세계로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민중의 생활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들 내면의 기쁨과 슬픔을 몸소 느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위에서 본 전쟁의 현실과 그 진실을 그대로 전해주는 베르너 비숍의 작품들을 감상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와 광복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보았습니다. 다시는 온 누리에 이렇게 가슴시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이 되살아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지면의 제한으로 더 많은 비숍의 전쟁사진을 다 감상할 수 없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세계전쟁 사진을 다음 연재기사에서 감상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부탁합니다.

덧붙이는 글 | 비숍의 초상과 소개, 그의 사진작품과 설명은 "사진의 세계역사(A World History of Photography)"란 책과  매그넘 포토(http://www.magnumphotos.com), 그리고 비숍의 누리방(http://www.wernerbischof.com)에서 도움받아 실었고, 번역하여 덧붙인 것입니다. 위의 전쟁 관련 사진 이외에도, 인간의 내면을 담은 비숍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다음 기회에 더 소개를 할 계획이므로 기대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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