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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기 옆에 붙어있는 꼭지를 밑으로 살짝 내린다. 동시에 들려오는 소리. 주르르 쫙, 꾸르륵. 물 내려가는 소리다.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소리인가. 나는 변기 안을 내려다본다. 물이 회오리를 치며 변기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이만하면 됐다. 힘차게 물 내려가는 모습이, 이제 완전히 뚫린 것 같다. 아내가 이마의 땀을 훔친다.

변기가 막힌 건 오늘 아침이었다. 나는 아내를 질책했다. 용변을 보고 휴지를 그대로 변기에 버린 탓이라고 했다. 그래서 변기가 막혔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 생각은 달랐다. 휴지는 물에 잘 녹는다는 것이었다. 변기가 막힌 이유는 다른데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의심이 나면 한번 실험을 해보자고 했다.

아내는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받았다. 한꺼번에 그것을 변기에 쏟았다. 그렇게 서너 번을 되풀이했다. 그런 다음 변기의 물을 내렸다. 나는 이제 뚫리려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변기에 고여있던 물이 조금 빠질 듯하다가 이내 멈추어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휴지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이물질이 변기의 배관을 틀어막고 있다. 그것을 제거해야했다.

아내는 양동이에 물을 데웠다. 펄펄 끓는 물을 변기에 부었다. 변기 뚜껑을 닫고는 얼마동안 기다렸다. 그런 다음 변기의 물을 내렸다. 그러나 허사였다. 물이 고이는가싶더니 아주 느리게 빠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좀 낫다. 그나마 물이 조금씩 빠지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짐작이 가는 모양이다. 내게 말했다.

"여보, 물이 조금씩 빠지지요. 슈퍼마켓에 가서 구멍 뚫는 세제를 사오세요."

나는 슈퍼마켓에서 변기 뚫는 세제를 샀다. 아내가 세제를 통째로 변기에 부었다. 아내는 1시간 정도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세제는 강한 염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웬만한 이물질은 다 녹는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작은놈이 대변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급히 이웃집에 전화를 했다. 화장실 좀 빌리자는 것이었다. 변기가 막히니 불편함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1시간 남짓 지났다. 아내와 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변기 앞에 섰다. 이래도 막힌 곳이 뚫리지 않으면 어떡하나. 나는 조심스럽게 변기의 물을 내렸다. 쏴.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그 뿐이었다.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낭패였다. 아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내가 이번에는 철물점에 가서 파워펌프를 사오라고 했다. 파워펌프가 뭐냐고 물으니 압축기라는 것이었다.

나는 부리나케 압축기를 사왔다. 압축기를 변기 밑바닥에 들이댔다. 그때부터 펌프질이 시작되었다. 나는 쉬지 않고 펌프질을 해댔다. 10분 정도 지나서 변기의 물을 내려보았다. 그러나 매양 그대로였다. 목덜미를 타고 땀이 흘러내린다. 러닝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1시간 가까이 되었다. 물을 다시 내려보지만 나아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아내가 보다못해 기술자를 부르자고 했다. 내가 비용이 얼마냐고 물었다.

"10만원은 달라고 할 거예요."
"10만원!"

나는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큰돈을 들여 변기를 뚫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지금까지 고생한 게 너무 억울했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그래도 제일 만만한 게 이웃동네에 사는 김 계장이다. 김 계장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다짜고짜 김 계장에게 말했다.

"야, 우리 집 변기가 막혔다."

김 계장이 키득키득 웃었다. 내게 어떤 방법을 썼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대충 얘기했다. 김 계장은 변기에 단단한 이물질 같은 게 걸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능관통기'를 사용해보라고 했다. 웬만한 이물질은 거의 잡힌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장 철물점에서 '만능관통기'를 사왔다.

이번에는 아내가 한다고 나섰다. 하긴 나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펌프질로 허리도 결리고 손목도 아팠다. '만능관통기'는 긴 꼬챙이 모양이었다. 아내는 '만능관통기'를 변기 속 깊은 곳까지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손잡이를 좌우로 돌렸다. 그런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물질이 잡힐 때까지 손잡이를 돌려야했다. 1시간이 지났다. 그래도 이물질이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아내가 씩씩거린다. 내가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아내는 단단히 오기가 올랐다. 끝장을 볼 태세다. 아내의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되었다. 그때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안되겠어. 기술자를 불러야겠어. 나는 화장실을 빠져 나왔다. 내가 막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내의 외침이 들렸다.

"여보, 뚫렸어요!"

나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내가 자랑스런 얼굴로 내게 연필을 보여주었다. 범인은 바로 연필이었다. 연필이 변기배관에 걸린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변기 주위에 물건들이 많았다. 나는 변기 위에 있는 선반부터 정리했다. 선반에는 칫솔도 있고 볼펜도 있었다. 다른 물건들도 많았다. 연필은 그곳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나는 선반을 깨끗이 정리했다. 물론 변기 뚜껑 위에 놓여있는 물건들도 말끔히 정리했다. 언제 다시 물건들이 변기에 떨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아내는 다시 한번 변기 물을 내린다. 주르르 쫙, 꾸르륵. 세상에 이렇게 듣기 좋은 소리가 따로 있을까. 나는 한참이나 변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힐끗 아내를 훔쳐보았다. 아내가 연신 땀을 훔쳐내고 있었다.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독자 여러분, 변기 주위에 물건을 아무렇게나 놔두지 마세요. 행여 물건들이 변기에 빠져서 배관에라도 걸리면 고생 엄청나게 합니다. 우리 부부도 오늘 온종일 고생했습니다. 아이가 있는 집은 특히 조심하세요. 아이들이 작은 장난감 같은 걸 변기에 집어넣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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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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