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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위 차별조사과 과장 서영호씨가 휠체어 폭을 재고 있다. 휠체어 폭은 60cm, 수목보호틀을 뺀 인도 폭은 50cm 가량.
ⓒ 이은정
장애인들이 직접 매긴 청계천 거리의 이동권 보장점수는 10점이었다. 아니, 10점도 못 됐다. 직접 청계천 거리에 나선 장애인단체들은 "100점 만점에 10점 주는 것도 아깝다"고 평가했다.

4일 오전 조영황 위원장을 비롯한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청계천 거리에 나가 이동권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다. 이번 조사는 장애인연맹(DPI)이 최근 서울시에 청계천 사업의 이동권 문제에 대한 질의성명을 낸 것이 계기가 됐다.

이날 휠체어 장애인 3명을 비롯, 국가인권위 관계자들은 서울시 청계천복원 사업본부 측의 안내를 받아 ▲경사로 폭과 경사도 등 안전성 ▲점자블럭 설치 여부 ▲휠체어 경사로 진입시 장애요소 존재여부 등을 조사했다.

청계천 시발점인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사 건물 앞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조사는 마전교까지 2.3km 도로를 점검했다. 조사는 이날 오전10시30분부터 2시간 남짓 이뤄졌다.

휠체어는 60cm인데 실제 인도폭은 50cm

장애인들이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문제점이 발생했다. 인도의 폭이나 진입턱 높이 등 아주 기본적인 문제였다.

안형진 서울DPI 기획홍보국 차장은 "인도 진입턱이 너무 높아 중간에서는 도저히 올라갈 엄두를 못 내겠다"며 "인도에 들어가도 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오도가도 못하고 큰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휠체어로 인도에 진출·입할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인도 폭이 너무 좁아 휠체어 한 대가 움직이기도 버거웠다. 인도 전체 폭은 1m30cm 정도였지만 수목 보호틀이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수목 보호틀을 제외한 인도의 평평한 부분은 약 50cm. 폭 60cm인 휠체어가 이동하기에 좁았다.

거리 중간에 건설자재 등의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턱이 높아 주변 도움 없이 차도로 내려오기는 불가능했다. DPI 활동가인 박동렬씨는 "평소엔 목발을 짚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먼 거리를 갈 때는 휠체어를 탈 수밖에 없다"며 "혼자 청계천을 나왔을 때 이런 경우에 닥치면 어떻게 하겠냐"고 호소했다.

다음 경사로까지는 1.4km "도중에 폭우라도 내리면 어쩌냐"

▲ 경사로 폭이 좁아 휠체어 두 대가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
ⓒ 이은정
청계천 인도를 따라 이동하면서 문제들은 더 불거져 나왔다. 휠체어로 오르내릴 수 있는 첫번째 경사로에서 다음 경사로까지는 약 1.4km 거리. 이 때문에 장애인들은 첫 경사로에서 두번째 경사로를 가려면 광화문에서부터 청계4가까지의 거리를 걸어야 했다.

전체 5.6km인 청계천 구간 중 경사로는 8개 뿐이다. 비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보통 계단이 100~150m마다 설치돼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김도경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사무국 차장은 "일단 한번 길에 들어오면 올라가지 말라는 것"이라며 "장애인뿐 아니라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사람이나 노인 분에게 1.4km가 걷기 쉬운 구간이냐"고 되물었다.

박영희 장애여성공감 상임대표는 "혹시 길 아래에 내려가 있는 상태에서 폭우라도 내리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경사로 구간 표시판 설치 등 상식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띄엄띄엄 있는 경사로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도 않았다. 박동렬씨는 "경사로의 폭이 좁아 내려오는 휠체어와 올라가는 휠체어가 서로 충돌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 뒤 "경사로 중앙에 시각장애 보도블럭을 깔게 된다면 (통행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완공 2달 남긴 서울시 "아직 남았으니 차차 반영하겠다"

▲ 인도의 턱이 너무 높아 차도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위험하게 이동하고 있다.
ⓒ 이은정
현장조사에서 비판과 개선요구가 잇따르자 서울시 청계천추진본부측은 "아직 완공된 것은 아니니 차차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계천 공사는 이미 80% 이상 공사가 진행되어 완공일인 10월 1일까지는 2개월도 남지 않은 상태. 이 기간에 장애인을 비롯해 모든 시민의 접근권과 이동권 보장을 위한 개선작업이 얼마나 잘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김도경 차장은 "왜 사전에 미처 이런 것들을 검토하지 않았느냐"며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뿐 아니라 장애인단체와도 (거리 조성에 대해)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리 협의를 했더라면 공사비도 절약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영호 국가인권위 차별조사과장은 "이번 조사의 결과가 나오면 서울시에서 설계도면을 받아 전문가와 함께 수정해 나가겠다"며 "문제점이 발견되면 직권조사에 들어갈지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자연과 '인간' 중심의 친환경적인 도시공간 조성을 하겠다는 서울시가 장애인이동권을 어떤 식으로 보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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