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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은 이 나이에 30여년 전 그 아득한 세월 속으로 여행이 가능하다면, 하여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볼 수 있다면, 더불어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교실의 삐걱거리던 작은 나무 의자에 한 번만 앉아 볼 수 있다면….

하루를 보낸다는 건 내 삶 속에 과거란 이름의 또 하루를 보탠다는 것이리라. 그렇게 보탠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덧 42년의 세월을 만들었다.

어느 순간. 지나간 시간들이 문득 문득 그리워진다. 마흔둘이라는 내 삶의 무게가 이젠 제법 묵직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건방진 표현일까. 그러나 난 가끔 꿈을 꾼다. 42년이란 세월을 훌훌 벗어던지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꿈을.

▲ 배불뚝이 갈탄 난로 위엔 노란 양은 도시락이 겹겹이 쌓여있다.
ⓒ 김정혜

지난 토요일(30일). 하루 중 아주 짧은 두어 시간 동안 난 32년 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때로 여행을 다녀왔다.

파란 칠을 한 긴 나무 책상과 나무 의자. 배불뚝이 갈탄 난로 위엔 찌그러진 노란 양은 도시락이 겹겹이 쌓여 있고 낡은 교탁 옆엔 역시나 낡은 풍금이 놓여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여선생님은 그 낡은 풍금으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고 계셨다. 그 선생님의 성함은 '이인숙'이었다.

▲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3학년 2반 수업을 하고 계시는 이인숙 선생님
ⓒ 김정혜
지난 90년. 선생님은 등교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시신경을 크게 다치셨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시야는 뿌옇게 흐려졌다. 시력을 잃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었다.

92년. 교직을 떠난 선생님은 하루하루를 절망의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하셨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역경이라도 꿋꿋하게 이겨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순간을 떠올리며 선생님 앞에 놓여진 어둠의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셨다.

다시 웃음을 찾았고 희망이란 것을 가슴에 품었다. 그런 선생님 곁에는 언제나 남편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끝내는 못다 이룬 선생님의 꿈을 이루게 해주었다.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담임을 맡으셨던 3학년 2반. 10년을 훌쩍 넘은 지금도 3학년 2반 교실에선 여전히 선생님의 정겨운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선생님께선 열심히 풍금을 치시고 학생들은 그 풍금소리에 맞추어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뜨거운 감동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네 가슴을 뒤덮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울컥하고 뭔가가 턱 걸리는 것 같았다. 내가 부르는 '고향의 봄' 노래엔 얼룩얼룩한 눈물자국이 번지고 있었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 있는 '덕포진 교육 박물관'은 전직 교사인 김동선 이인숙씨 부부가 함께 설립한 곳으로 사랑의 학교, 추억의 학교로 불리고 있었다.

그곳은 32년 전의 바로 내가 철없이 깔깔거리며 공부했던 그 옛날 3학년 2반 교실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정녕 꿈같은 과거의 한 귀퉁이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여러 가지 교육 자료들, 생활필수품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그날도 이인숙 선생님은 그 낡은 풍금을 두드리며 여전히 수업을 진행하고 계셨다.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많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그곳을 찾았는데 선생님의 풍금소리에 맞춰 크게 합창하는 엄마도 아빠도 또 아이들도 그 순간만큼은 똑같이 3학년 2반 학생들이었다.

내 마흔 둘의 어느 여름 날 하루. 꿈처럼 다녀온 32년 전 그때 그 시절은 오래오래 내 기억 속에서 소중한 한때로 남겨질 것 같다.

▲ 방학 하던 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었던 통지표
ⓒ 김정혜

▲ '엄마, 아빠 어렸을 때 옛날 교과서'
ⓒ 김정혜

▲ 낡은 앉은뱅이 책상이 정겨운 '형님책상'
ⓒ 김정혜

▲ '엄마 아빠 어렸을 땐 공부방이 따로 없었단다.'
ⓒ 김정혜

▲ '몽당 연필로 공부하던 그 때를 잊지 맙시다.'
ⓒ 김정혜

▲ 늘 가슴에 달려 있었던 명찰들...
ⓒ 김정혜

덧붙이는 글 | 찾아 가는 길: 서울시청 광화문에서 631번 이용. 덕포진 입구에서 하차. 덕포진 표지판을 따라 한참 들어가면 '덕포진 교육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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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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