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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만덕할망 덕(德)에 살았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란 제주도민들은 지금도 '김만덕'(金萬德·1739~1812)을 '삼신할망'처럼 신화 속 주인공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예로부터 제주인들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정신 가운데 그 대표로 의녀 김만덕의 나눔이 빠지지 않는다. 적어도 제주지역에서 만덕의 위대함과 역사성이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전해져 오는 이유다.

▲ 제주 포구 근처에서 객주로 돈을 벌고 있는 김만덕.
ⓒ 김만덕기념관

'만덕할망', 제주사람에겐 '신화'로 알려져

MBC 드라마 '상도(商道)'로 유명한 거상(巨商) 임상옥(林尙沃· 1779~1855)도 한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세상을 떠돌다 20대 초반에 제주 상인 김만덕을 만나 재기에 성공했다. 임상옥이 만덕을 통해 '돈을 버는 방법과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철학과 시장의 원리를 터득했으리란 짐작 또한 어렵지 않다.

실제 만덕보다 40년 후에 태어난 그가 당대 인삼 무역왕으로 이름을 떨친 데는 김만덕의 도움이 컸다는 게 학계의 지적이다.

'정조 19년(1795년)에 탐라에는 큰 기근이 들어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 갔다.… 만덕이 천금의 큰 돈을 내놓아 육지에서 양곡을 사오게 하여 450석을 관청에 내놓았다. 오래 굶어서 살가죽이 들떠 누렇게 된 주민들이 이 소식을 듣고 관청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관에서는 그들의 급하고 그렇지 않음을 참작하면서 형편에 맞추어 쌀을 나눠주었다. 그 후 주민들은 거리로 나와서 "우리들을 살려준 은인은 만덕"이라면서 그 은혜를 칭송하였다.'-채제공(蔡濟恭)의 증만덕(贈萬德)에서

성공한 'CEO'

200년 전 조선 땅에서 사업을 한 여성. 여성의 사회활동조차 드문 시대에 왕에게 벼슬을 받고 왕비를 만난 평민 출신의 여성. 그리고 법과 금기를 깨고 섬 밖으로 나간 여성.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사업가 김만덕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 김만덕 초상
ⓒ 김만덕기념관
제주 여인 만덕은 아버지 김응열(金應悅), 어머니 고씨에게서 3남매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하지만 1750년 전국을 휩쓴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기녀의 수양딸로 간 만덕은 결국 제주목사까지 찾아가 호소한 끝에 기녀의 신분을 벗고 원래 평민의 신분을 되찾았다. 어려운 청소년시절을 보낸 만덕은 제주시내에서 당시 식당을 하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앞을 내다보는 상술에 점차 눈이 트이기 시작했다.

만덕은 제주의 포구가 지닌 이런 가치에 주목해 포구에 객주(客主)를 차렸다. 객주는 여관 구실도 했지만 외지 상인들의 물건을 위탁받아 팔거나 거간하는 중간상 역할도 했다. 관기 출신이었던 그녀의 객주는 곧 번성했고, 그녀는 객주를 중심으로 기녀 시절의 경험을 살려 제주의 양반층 부녀자에게 육지의 옷감이나 장신구, 화장품 등을 팔고, 제주 특산물인 녹용과 귤 등은 육지에 팔아 많은 이익을 남겼다.(이순구)

▲ 제주 모충사에 세워진 김만덕 비.
ⓒ 양김진웅

"백성 살려야" 전 재산 내놓은 '제주의 어머니'

1792년(정조 16년)에서 1795년(정조 19년)까지 제주에는 계속 흉년이 들어 식량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특히 1795년에는 국가에서 보낸 구호식량마저 풍랑으로 바다에 빠지자 제주 백성들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했다. 이 때 만덕은 그 때까지 모은 막대한 돈을 아낌없이 써서 양곡을 육지로부터 사들여 와 굶어가는 제주인들을 살리는데 힘썼다.

정조 임금은 이 일을 가상히 여겨 내의원(內醫院) 의녀반수(醫女班首)직을 내렸다. 1812년(순조 12년) 10월 12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만덕의 묘소는 제주시 동쪽 사라봉 위쪽 언덕에 모셨다가 현 모충사로 옮겨졌다. 모충사 내에 의녀 김만덕의 공덕을 기리는 20여m 높이의 탑과 함께 만덕관을 건립해 그 뜻을 기리고 있다.

▲ 9일 제주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김만덕 기념 전국 학술세미나
ⓒ 양김진웅

'선구적 페미니스트의 삶'

▲ 제주교대 변종헌 교수.
ⓒ 양김진웅
9일 제주그랜드호텔에서 '김만덕의 시대와 현실'을 주제로 열린 김만덕 기념 전국 학술세미나에서 제주교대 변종헌 교수는 '김만덕의 삶을 통해 본 정신적 가치의 탐색'이란 논문을 통해 "만덕은 주변부 여성의 삶을 뛰어넘고 유교 사회의 중심부에도 인정받는 페미니스트"라고 제기했다.

그는 만덕이 가부장적 유교 문화 속에서도 여성으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출륙금지령과 같은 법과 관례를 깨고 육지로 나가는 최초의 제주 여성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벼슬인 의녀반수에 올랐고, 금강산 구경을 통해 여성에게 부과된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 등이 바로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그는 "만덕의 삶을 페미니즘 혹은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의적 관점이 아닌 다양한 시각에서의 접근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만덕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전을 가진 인물'

▲ 에코페미니스트 김재희씨.
ⓒ 양김진웅
'고래소녀만덕'의 저자인 김재희(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인)씨는 "임금님(정조) 초청으로 당시 의녀반수라는 벼슬을 받은 이후 서울에서 현재의 남대문시장 입구 선혜청(당시 세무서)에서 6개월 가량 살았을 정도로 경제와 유통에 눈이 밝았다"며 "이재에 밝았던 만덕이 칠순이 넘은 영의정 채제공을 비롯, 스물 초반의 임상옥과 자신을 찾아온 수많은 실학자들에게 시장의 원리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궁금하다"고 역사적 상상력에 대한 가능성을 내던졌다.

"누구보다 '만덕할망'을 모셔오고 싶었다"는 그는 "만덕은 자비와 구원의 여신이 된 신화적 인물"이라며 "신화가 아니라 역사로,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래적인 비전을 가진 인물로 만덕할망은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에코페미니스트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김순자 제주도여성특별위원회 제주여성사정립분과위원장은 "행정이 주체가 되어 30년 가까이 만덕기념사업을 벌이고 있었음에도 김만덕의 숭고한 뜻과 업적이 대중화ㆍ전국화에 기여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기민구휼'이라는 자선사업에 초점을 두고 만덕을 바라봤기 때문"이라며 "이는 곧 만덕의 뜻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는 데는 소홀하였다는 반증으로 시대와 역사를 뛰어넘는 김만덕의 생애의 재조명은 그래서 절실하다"고 말했다.

'화폐인물로 삼자' 전국적 추대 움직임

▲ 동덕여대 김경애 교수
ⓒ 양김진웅
'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를 꾸리며 본격적인 '김만덕 알리기'에 나선 김경애(동덕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유관순, 신사임당, 나혜석, 빙허각 이씨, 허난설헌 등 역사 속의 여성인물을 재평가하고 이들을 기리는 사업이 지방자치단체마다 전개되고 있지만 김만덕 보다 큰 비중을 갖고 있는 인물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국회의원들과의 토론회에서도 "21세기가 요구하는 여성은 역경을 뚫고 일어난 여성, 사회와 함께 하는 여성으로 신사임당은 가부장제 사회가 선택한 여성으로서 부적합하다"며 "나는 제주사람이 아닌데도 김만덕의 일생을 볼 때 21세기 한국 여성상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국민 대부분은 신사임당을 잘 알고 있는데 이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상적인 현모양처의 여성상으로 신사임당이 수록됐기 때문"이라며 "이 시대에는 물론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초중등 교과서에 김만덕 일대기가 수록돼야할 당위성을 피력했다.

▲ 지난해에 일본 오천엔권 여성인물로 '十三夜' 등의 작품을 남긴 명치시대 여류소설가 '히구치 이치요(1872∼1896)가 최초로 등장했다. 그녀는 20년 전에도 5천엔권 인물에 사용된 일본 자유주의의 아버지 '니도베 이나조(新度戶稻造, 1862∼1933)'와 함께 최종후보에 올랐다.
ⓒ 여성인물 화폐에!
김 교수는 "북한의 10원짜리 지폐의 주인공은 여배우 홍영희, 일본 역시 지난해 오천엔권에 최초의 여성인물로 '十三夜' 등의 작품을 남긴 명치시대 여류소설가 ´히구치 이치요(1872∼1896)를 선정했다"며 "김만덕은 일반 국민들에게 생소한 점은 있지만 시간을 두고 알려나간다면 화폐인물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인물이 없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김만덕은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귀감이 되는 여성상인 만큼 화폐 도안 개정 및 고액권 발행 때 반드시 화폐인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화폐에 수록되기 위해서 먼저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만덕할망? 에코페미니즘의 모델"
'고래소녀 만덕' 저자 김재희씨 "신(神)격화 필요하다"

▲ 신화와 자연사를 넘나드는 만화 '고래소녀 만덕'. 에코페미니스트 김재희 씨가 쓰고 ‘색녀열전’의 장차현실 씨가 그렸다.
ⓒ장차현실
"김만덕 할망은 제주여신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의 모델로 주저없이 만덕할망을 꼽는 김재희씨(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인)는 "김만덕의 신격화가 필요하다"며 "여기서 신은 삶과 죽음을 가르지 않는 마치 삼신할망과 같은 어머니, 할머니 같은 신(神)을 의미하며, 우상화를 의미하는 신격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생태론(ecology)과 페미니즘(feminism)이 합성된 에코페미니즘의 에코(eco-)는 희랍어의 오이코스(οικος), '집’이란 말에서 유래합니다. 경제학(eco-nomy)과 생태론(eco-logy)의 어두에 나오는 에코는 모두, 집안 살림이라는 뜻과 관련이 있지요. 차이가 있다면 경제학은 인간 중심의 살림인데 비해 생태론은 '지구생명 중심의 살림'. 경제학이 협소한 의미의 이윤 추구에 국한된 살림인 반면, 생태학은 좀더 지속적이고 순환가능한 시스템 전반의 살림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점에서 질적인 차이가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주의 경제학이 성립한다면, 그건 바로 경제학과 생태학의 가치가 대립이 아니라 상호 조화하는 조건을 충족시킨 원리일 겁니다".

그는 "김만덕이야 말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순결한 영혼을 가진 인물"이라며 "상류계층에서 알려진 허난설헌 등과 달리 김만덕은 어떤 여성인물 보다도 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충효의 관점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의 힘'을 보여준 역사적 인물로 재조명돼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고래소녀 만덕>에 대한 연재동기에 대해서도 "만덕이 가진 우주적인 생명력은 어디서 얻었을까라는 고민 끝에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과 인연을 맺었던 귀신고래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고래는 인간처럼 젖을 먹이는 포유류로 유일하게 미역을 먹는 동물. 그는 "한국계 귀신고래의 학명이 'Korea Gray Whale'일 정도로 가장 우리나라 사람들과 친숙하다"며 "고래의 신비함과 만덕의 우주적 사고를 연계시키는 드라마적 상상력은 어렵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만덕이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 얼마를 무엇에 썼느냐'는 문제에 대해 막스베버적인, 즉 이분법적이고 서구적인 사고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며 "인디오의 땅을 침탈한 백인들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팍스 브리타니카를 외치며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리던 대영제국의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이란 책으로 백성이 안 굶고 사는 법을 설파할 즈음 만덕할망은 자본주의가 파국을 피하는 길과 희망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이어 컨텐츠개발과 관련, "기계적으로 찍어내고 도식화하는 컨텐츠의 고민을 넘어 여성의 시대, 영성의 시대, 감성의 시대라는 맥락을 잘 살리면서 개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양김진웅

덧붙이는 글 | 도움=여성인물 화폐에! 시민연대(http://cafe.daum.net/womenmoney)

(사)김만덕기념사업회(010-9025-2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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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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