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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시작된 MBC의 수목 미니시리즈 <내 이름은 김삼순>(이하 김삼순)이 '대박'을 치고 있다. 시청률조사회사 AGB 닐슨미디어 리서치가 집계한 전국 시청률에서 첫날 17.4%를 기록하더니 2회는 무려 22.9%, 이어 3회는 28.5%로 수직 상승하며 동시간대 드라마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기 시작했다.

예쁘고 마른 것들은 가라, 평범한 여성들의 시대가 올 것이니

▲ 김선아가 스물아홉 노처녀 김삼순으로 분한 <내 이름은 김삼순>
ⓒ MBC
스물아홉 뚱뚱한 노처녀에 대학도 안 나왔고, 파티쉐(프랑스 제빵사) 자격증이 있긴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해고 당하고, 애인도 원룸도 자동차도 없다. 그녀는 평균이다. 이상과 현실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스물아홉 그 또래 여성들의 평균.

<김삼순> 공식 홈페이지에 '이 땅의 모든 삼순이들을 위하여'라는 제목과 함께 나와 있는 기획 의도다. 여기에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이른바 시원하게 '내지르는' 그녀의 성격이다. "지랄하네" "개싸가지" "새끼야" 등등의 남성적(?) 용어일 것 같은 말들이 김삼순(김선아 분)의 입에선 너무도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쏟아져 나온다.

드라마를 위해 6kg의 살을 불렸다는 김선아의 모습은 살짝 우울(?)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국판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아니냐는 관심과 비아냥을 동시에 듣기도 하지만 그간 '뻔'했던 공주형 여주인공의 계보에서 비껴서 있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불 같은 성격에 독설을 퍼붓기도 하지만 애인에게 차인 후엔 마스카라가 범벅이 되도록 '엉엉'거리기도 하는 그녀. 때론 넋을 놓고 있다 급정거한 버스 뒷자리서 운전석까지 '다다다' 밀려가는 김삼순. 그녀는 그간 예쁘기만 했지 도대체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던 '이슬표' 여주인공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재미있다" VS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그러고 보면 삼순이는 과거 90년대를 휩쓸던 <사랑을 그대 품 안에>나 <별은 내 가슴에> 등에서 보여지던 청순가련형 여주인공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여자들이 보는 삼순이는 어떤지 궁금해져 몇몇 여자 동창들에게 안부를 빙자한 전화를 걸었다.

"사실 그전에 아침 이슬만 먹고 사는 주인공들 보면 웃기지도 않았지. 하긴 나도 이슬을 먹긴 해, 좀 쓴 이슬이라 그렇지(웃음). 일단 삼순이가 내숭떨지 않아서 좋긴 하더라. 김선아가 보여 주는 편안함이 70% 이상 먹고 들어가는 것 같아. 한국의 '르네 젤위거'라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성격이 딱 나인 것 같던데.(웃음)"

"솔직히 그동안 다른 드라마들의 여주인공들이 좀 재수가 없었지. 가끔 그 닭살 대사들 생각하면 새해에 먹은 떡국이 넘어오더라. 그에 비해 삼순인 대사가 '죽음'이야.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 인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을 뒤집어지게 만들던데. 전체적으로 솔직한 게 좋고 사실은 삼순이 같은 인물이 여성의 평균치 같다는 생각이 들어."

▲ 김삼순은 재벌 2세 현진헌(현빈 분)을 만나 계약연애를 시작한다.
ⓒ MBC
"액면가만 높은 줄 알았더니 실거래가도 높네. 어디서 저런 유통기한 지난 호빵을 데려왔지."
"니가 살 좀 쪘다고 간도 부었구나."


드라마 속의 톡톡 튀는 대사를 보면 적어도 '재미' 면에서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물론 무조건 공감할 만한 스토리는 아닌 것 같다는 불평들도 이어지며 따끔한 질책이 뒤따랐다.

"재미있어. 하지만 결국 그 드라마도 캔디렐라(캔디+신데렐라) 이야기 아닐까. 나이 서른 넘어 봐. 그런 거 안 믿게 돼. 솔직히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2세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옷깃이나 스칠 수 있을까. 그런 거 신경 끄고 열심히 일이나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아."

"먹고살기 어려우니까 정통 멜로보다는 코믹으로 가는 것 같아. 스토리도 뒤로 가면 뻔할 것 같고 결국 재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 것 같아."

내 주위의 또 다른 삼순이는 바로 그녀들

이런 이야기를 듣자 이젠 서로를 남녀로 바라보기엔 너무 익숙해져 버린 그녀들과 어느덧 '한판'을 가뿐히 돌파한 그녀들의 나이가 짓궂게도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글쎄, 선보는 데 30분이나 늦게 나와선 뒤로 따악 제낀 채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결혼 그까이꺼 뭐어' 이러는 거야. 변호사면 다야. 자기가 굉장히 잘난 줄 알어. 그런 사람이랑 결혼하느니 그냥 이대로 벽에 똥 바르고 말지."(민아무개씨·31·회사원)

"야, 난 말도 마라. 지난번에 먼저 다니던 직장서 놀러 오래서 가서 술 한잔 했거든. 근데 박 부장이라고, 이 사람이 집에 바래다 주면서 느끼하게 들러붙더라구.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회사 그만두고도 여기까지 온 거면, 다 알고 왔잖아' 그러며 실실 웃는 거 있지. 한마디로 기가 막혔지."(신아무개씨·32·전문직)


지난 동창회서 쏟아진 그녀들의 말말말. 과에 여성이 많았던지라, 모임 때면 싫든 좋든 그녀들의 '갖가지' 사연들을 듣게 된다. 얼핏 들으면 성깔 꽤나 있을 '불끈녀'들 같다. 하지만 10여 년 곁에서 봐온 '친구 같은 동창'의 생각으론 글쎄, 평소 눈물 많고 가슴 따뜻한 평범한 여성들일 뿐이다.

때론 '믿고 떠들어 줘서' 감사해야할지, 나를 남자로 봐 주지 않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셔야 할지 헷갈리기도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들은 열심히 일하고 때때로 첫사랑의 기억에 가슴 시려하기도 하는, 대한민국의 '표준 노처녀'이자 '삼순이'라는 것.

대한민국 삼순이가 되길 바라며

▲ <내 이름은 김삼순>이 전형적인 '캔디렐라' 드라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 MBC
한 동창생은 '삼순이'라는 이름이 주는 어감에 대해 "다소 덜떨어진 것 같지만 평소 편한 친구 사이에서도 많이 쓰는 단어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실제 이름을 가진 이들은 언짢아할지도 모르지만 비하보다는 '친근함'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름이 바로 삼순이일지도 모른다.

어쨌건 <김삼순>은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씩씩하고 평범한 여자 주인공과 재벌 2세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에서 <파리의 연인>식의 전형을 따라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김삼순>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기대치와는 다른 일이다. 방영 첫 주 만에 '3344'(삼순이와 삼돌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팬클럽까지 만든 사람들. 왜 그들은 <김삼순>에 열광할까.

좀 뚱뚱하고 못 생기면 어떤가. '잘 생기고 경제적으로도 착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희망을 청초한 생머리에 숨겨 놓던 다른 여주인공보다, '개싸가지'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내뱉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려는 삼순이의 모습이 가슴에 와닿기 때문 아닐까.

그것이 어쩌면 현대 여성들의 가슴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자아인 동시에, 대한민국 평균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삼순이'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희망은 아닐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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