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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서점들은 우월한 가격 경쟁력과 빠른 배송으로 서점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고 예전보다 더욱 그 수가 늘어난 시내의 대형 서점들 역시 엄청난 양의 책들과 넓고 쾌적한 매장을 바탕으로 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 엄청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소규모 동네 서점들이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 맞설 마땅한 생존 무기가 부족한 동네 서점들의 고민과 하소연을 직접 들어봤다.


서울 구로동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는 한 작은 서점. 겉으로 보기에도 전형적인 소규모 동네 서점인 이 곳은 매장도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니 20평 정도 되는 좁은 매장에 다양한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서점 안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두 여학생이 문제집을 고르고 있었다. 한 학생이 원하는 책이 없자 서점 주인은 책이 들어오는 대로 학생에게 연락을 해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원하는 책이 없어 빈손으로 되돌아가는 손님이 전체 손님 중 10% 정도 된다고 했다. 그 여학생들이 나간 후 서점에는 저녁시간인데도 거의 1시간여 동안이나 손님이 들어오지 않았다.

▲ 주택가에 위치한 20평정도 소규모 서점의 내부. 생각보다는 밝고 깔끔한 분위기였다.
ⓒ 윤영섭
IMF부터 시작해 책대여점, 인터넷 서점 등장까지... 악재만 계속

이 곳에서 14년 동안 서점을 운영해 왔다는 서점 주인 P씨. 인터뷰를 하기 전에 "요즘에 동네 서점 찾기가 왜 이리 어렵나요?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찾아보다 없어서 결국 이 동네 사는 친구 얘기 듣고 여기까지 왔어요"하고 말하니 서점 주인이 웃으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기자 양반은 한달에 책 몇 권이나 읽어요? 요즘 사람들 책 거의 안 읽어요. 가끔 신문들 보면 예전보다 독서량이 늘어났다고는 하는데 그거야 일부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얘기고 전체적인 독서인구는 전혀 늘어나고 있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 같은 동네 서점들이 많아지겠어요. 없어졌으면 없어졌지."

서점 주인의 날카로운 지적에 평소 TV나 신문, 잡지만 들여다봤지 정작 책읽기를 멀리했음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일단 말문이 열리자 서점 주인은 그동안 쌓아 온 걱정이 많은 듯 하소연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헌책방으로 이 일을 시작해 2년이 지난 후부터 지금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P씨는 지난 1997년 IMF가 터진 이후로 매출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IMF가 터진 이후 매출이 30~40% 정도 떨어졌다. 그 후 좋아지기는커녕 대형서점과 책대여점에다 책을 싸게 파는 인터넷 서점까지 생겨나니 우리 같은 동네 서점들이 별 수가 있나."

365일 쉬는 날 없이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3시간 동안 서점을 지킨다는 P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동네에 서점이 5개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만 남고 다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나마 우리 서점은 지금 이렇게 살아남았지만 그게 뭐 장사가 잘 돼서 그런가. 이곳에서 10년 넘게 서점을 한 덕분에 비교적 단골손님이 많고 우리 애들 아빠가 따로 직장을 다니니깐 살아남았지. 만약 그렇지 않고 부부가 같이 서점만 운영했더라면 임대료 내기도 빠듯했을 거야."

중고생들 참고서와 어린이용 책들 때문에 겨우 버텨

대형 서점하고 인터넷 서점 때문에 일반 소설이나 수필, 잡지 등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예전만 하더라도 학생들 참고서, 잡지, 일반 책들의 판매 비율이 거의 비슷했는데 지금은 매출의 50% 이상을 참고서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비교적 대형 서점 이용이 적은 30~40대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찾는 동화책이나 근처에 있는 중고등학교에서 학년별로 정한 권장도서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 서점 근처에 있는 중고등학교에서 각 학년별로 권장하는 도서 목록.
ⓒ 윤영섭
효자노릇을 할 것이라 예상한 EBS 문제집들은 결과적으로 다른 참고서들의 판매 하락을 주도했다. EBS 문제집은 불티나게 팔렸지만 그로 인해 학생들이 다른 참고서를 사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참고서 판매는 오히려 줄어든 것.

P씨는 이 같은 동네 서점이 살아남으려면 지금보다 매장이 더 커야 하고 보유 도서도 더 많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하의 서점들은 앞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 P씨의 주장.

P씨는 꾸준히 규모를 늘려서 대형 서점들처럼 손님들이 더 편하고 여유 있게 책을 살펴볼 수 있도록 공간도 마련하고 책 이외에도 책과 비교적 궁합이 잘 맞는 문구 판매를 겸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 소규모 동네 서점의 주력 상품은 바로 중고생들의 학습 참고서.
ⓒ 윤영섭
도서정가제, 시행했으면 단속도 확실해야

지난 2003년부터 5년간 한시적으로 도서정가제가 시행됐다. 이 제도에 따르면 오프라인 서점들은 정가대로만 책을 판매할 수 있으며 온라인 서점들은 10%까지 할인해 판매할 수 있다.

도서정가제 시행이후 이전보다는 다소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이 역시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서점 주인의 지적이다.

온라인 서점들은 표면적으로 10%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판매하고 있지만 마일리지 적립 제도 등으로 실제로는 10% 이상의 할인을 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변칙적인 할인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P씨는 "이 때문에 몇몇 소규모 서점들이 하는 수없이 제살 깎아먹기식 할인을 하고 있어 다른 소규모 서점들마저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도서정가제를 어기면 벌금을 물게 되지만 신고 절차가 까다롭고 문화관광부도 단속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정부에 제대로 된 단속을 주문했다. 또 도서정가제를 한시법에서 벗어나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도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고 이중에는 도서정가제를 우리나라처럼 법으로 정해놓지 않은 나라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모두 아주 철저하게 지킨다고 한다. 결국 우리나라 도서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와 의식부족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편 P씨는 소규모 서점들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상대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책이 적은 소규모 서점들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해 서로 책 보유상황을 공유한다면 손님들이 찾는 책이 없을 때 좀더 효율적으로 책을 찾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규모 서점들이 규모 확장과 시설 개선 등을 할 때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등의 배려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요즘 이 바닥에도 거대 자본들이 많이 들어와서 서점들이 더욱 대형화, 첨단화 되고 있는 추세지. 어떤 사람들은 경제 원리를 말하지만 책이란 게 꼭 경제 원리로만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우리 같은 서민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는 건지."

P씨는 예전부터 서점을 그만두고 업종을 바꾸고 싶은 생각을 몇 번이고 했지만 현재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그나마 교육상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계속 서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서점을 꾸려가기는 힘들지만 아이들이 책과 가까이 지내며 원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어 그런지 다른 아이들보다 독서량이 많고 학교성적도 상위권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P씨는 "평소보다 매출이 절반이상 뚝 떨어지는 비성수기(4,5,6,9,10,11월)에는 가게 임대료 내기도 힘들지만 그나마 우리 애들이 책을 좋아해서 계속하고 있어. 애들이 커서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말로 업종 변경을 할 것"이라고 힘없이 말했다.

"혼자 서점지키기도 힘든데 언제 남의 서점까지 가서 확인하나"

이번에는 서울 문래동에 위치한 작은 서점에 들어갔다. 15평 정도 되는 조그마한 크기의 서점 안에 손님은 하나도 없고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혼자 돋보기 안경을 쓰고 책을 읽고 있었다.

10년 동안 이곳에서 서점을 해왔다는 주인 K씨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불황과 고민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얘기해봤자 나아지겠냐는 듯한 맥 빠진 목소리였다. 이 곳 역시 구로동의 서점과 마찬가지로 중고생들 참고서 때문에 어렵게나마 버티고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게 K씨 얘기.

"우리 서점 바로 옆에 중학교가 하나 있어서 좀 괜찮았는데 요즘엔 별로야. 서점이 너무 작다보니 학생들이 여기엔 와봤자 책이 없겠거니 생각하고 그냥 대형서점으로 가지. 서점을 늘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게 어디 하고 싶다고 되나. 지금 같아서는 늘리기는커녕 문 안 닫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지."

일부 학생들의 경우 문제집 한 권을 산 다음에 복사나 제본을 해서 여러 명이 보기까지 하니 마지막 보루였던 참고서 매출도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대로 자구책을 찾다가 학생들이 보던 참고서들을 저렴한 가격에 사들여 다시 되파는 헌책방 영업도 함께 하고 있다.

"참고서 특성상 일반 책들과 달라서 올해 나온 책들은 내년에 또 못 팔아. 올해 못 팔면 다 반품해야 되는데 참고서들은 일반 책들과 달라 반품도 잘 안 받아주려하고. 여러 가지로 힘들지."

K씨는 일부 언론에서 제시하는 동네서점들의 생존 전략에 대해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어떤 사람은 동네서점들도 분야별로 전문화해서 백화점식인 대형서점들과 차별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람들이 책을 많이 사서 읽어야 말이지. 요즘 들어 국민들 독서량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아직도 한참 멀었어. 게다가 학생들은 제본해서 책 보고 예전에는 책 대여점도 막 생기고 그러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돈 주고 책 사보는걸 아깝게 생각하잖아."

제도적인 문제점은 없냐고 물었더니 K씨 역시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학생들 소문에는 우리 서점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서점이 참고서를 10% 할인해서 팔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쪽 때문에 학생 손님 많이 뺏겼지. 그런 건 나라에서 확실히 단속해줘야지 나 혼자 서점 지키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언제 남의 서점까지 가서 그걸 지키고 앉아있나."

"언젠가 그 서점 주인을 만나서 왜 할인판매를 하냐고 따졌지. 그런데 요즘엔 자유경쟁 시대가 아니냐고 오히려 큰 소리 치더라고. 서로 규칙은 지켜가면서 자유경쟁을 해야지. 그럼 도서정가제를 하고 있는 나라들은 요즘 자유경쟁 시대인거 몰라서 하고 있나."

매장이 너무 좁아 책들이 별로 없어 그나마 찾아오는 손님들 중 상당수가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해 그냥 되돌아가고 베스트셀러 등을 주로 찾는 20~30대 손님들은 대부분 시내의 대형 서점을 찾고 있어 매출은 계속 가파른 내리막을 걷고 있다는 것이 K씨의 하소연이다.

"나야 뭐 자식들도 다 커서 시집, 장가보냈으니 돈 들어갈 데도 별로 없어 그럭저럭 유지해왔지만 이젠 정말 못 버틸 것 같아. 우리 같은 동네 서점들은 하나둘씩 없어져 가는데 반대로 시내의 큰 서점들은 늘어나고. 돈이 돈을 낳는 시대에 이런 작은 서점들이 뭐 어쩔 수 있겠어? 요즘에는 동네 할인마트 안에도 100~200평되는 큼지막한 서점들이 들어서더라고."

1년 중 절반 이상을 매장 임대료도 못내 적자에 허덕인다는 K씨는 업종변경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조만간 또 하나의 소규모 동네 서점이 문을 닫게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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