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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대광고 교목으로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의 저자 류상태 전목사.
ⓒ 오마이뉴스 이종호

우리는 지금부터 한 노점상과 만난다. 서울 양재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노점 자리치곤 너무도 한적한 한 초등학교 부근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그는 "먹다 지쳐 잠이 들면 축복을" 준다고 외치는 '출산드라'의 건강한 개그마저 '신성모독'이라고 딴지를 거는, 천국을 지독히 사모하는 속 좁은 보수 기독교인들을 향해 "당신들만의 천국은 없다"고 외친 이다.

전직 목사이자 고등학교 종교교사였던, 마흔 아홉의 중년인 그의 이름은 류상태.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고 있을, '종교의 자유와 예배 참석 선택권'을 주장하며 단식까지 해가며 학교에 맞섰던 '강의석 사건'의 교내 후원자이자 대광고 교목실장이었던 바로 그 류상태이다.

그런 그가 한국 교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책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삼인 펴냄)를 냈다.

'개독먹사'(안티기독교인이 주로 쓰는 용어로 '개독'은 '개신 기독교' 또는 '개 같은 기독교'의 준말이고, '먹사'는 '목사'를 비꼬는 표현)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액세서리 노점상'으로 전업한(?) 류상태씨를, 초여름처럼 후텁지근한 날이었던 5월24일 그의 좌판 옆에 내내 서서 2시간반가량 인터뷰했다.

뱃속 편한 액세서리 노점상

"그동안 세상과 교회의 비위를 입으로만 적당히 맞추며 살아온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이젠 좀 홀가분합니다. 떳떳하지 못한 처신에서 벗어나 제 신념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사는 지금, 예기치 않게 말 못할 고통을 겪는 가족들에게는 너무 너무 미안하지만 제 삶을 찾은 것 같아 제 개인은 오히려 행복합니다."

'뱃속 편하다'는 시쳇말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류상태씨는 일흔이 넘은 노모와 아내, 두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40대 가장으로서 가져야 할 현실적 역할을 감안할 때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추락했겠지만,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왔던 자신을 배반(?)하고 신념에 따른 나로 커밍아웃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온 셈이라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광고는 지난해 45일 동안 단식한 의석이한테 예배선택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아직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약속을 이행해야 합니다."

대광고 측에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분기탱천해 있었지만 얼마 되지 않은 퇴직금을 모두 걸고 모험할 용기조차 없어 본전을 까먹지 않을 것 같은 액세서리 노점상을 생계수단으로 선택할 만큼 그는 소심한 사람이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그는 그날의 '개시'를 했다.

"액세서리는 유행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시장조사를 하느라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여자들의 귀와 목을 유심히 살피게 되는데, 어쩌다 저와 눈이 마주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제가 어떻게 보이겠어요. 주책을 넘어 주책바가지죠."

한국교회는 머리와 몸이 분리된 중환자

"한국교회는 머리와 몸이 분리된 중환자입니다. 그것도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대로 두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심각합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류상태씨의 비판은 신랄하지만 설득적이다. 20여 년이나 몸담고 있었던 절절한 경험에 기초한 성찰적 자기반성 위에서 던지는 비판이기 때문이리라.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못하고 나와 다른 모습을 한 상대를 모두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배타성,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했지만 십자가는 주님이 지셨으니까 그 공로로 이 땅에서 편안하게 예수 믿다가 천국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 하느님의 뜻을 따라 책임을 느끼고 이끌어가야 할 역사에의 무관심, 직제 구분에 불과한 목사와 장로, 집사를 신분 차별로 받아들이는 권위주의, 문자주의에 갇힌 성서 해석으로 하느님 뜻 왜곡, 종말론적 환상주의 경향 등등이 그가 진단한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중병의 증상들이다.

"제 자신이 목사였던 사실이 슬픕니다. 저의 이런 지적을, 비기독교인들은 다 알아듣는데, 유독 기독교인들은 못 알아들어요. 제대로 믿자고 하는 저를 격려는 못할망정 오히려 비난하고 저주합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그는 한국교회가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그 중병을 치료하는 길은 '교회·예식·교리·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적 종교 시스템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하고, 예수님처럼 세상 한가운데로 진출하여 생동적인 변화를 창출하는 '무브먼트의 대전환'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애초 조직이나 교리, 경전, 의식 이런 것들을 깨뜨리라고 하셨는데, 한국교회는 오히려 그걸 더 강화했어요. 이것은 명백하게 예수를 배반한 것이죠."

성서는 '객관적 진술'이 아니라 '고백의 언어'

ⓒ 오마이뉴스 이종호
류상태씨는 성서는 '객관적 진술'이 아니라 '고백의 언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보수주의 개신교인들은 그 고백의 언어를 객관적 진술로 읽음으로써 그 지독한 배타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가령, 자기 아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사랑 고백을 객관적 진술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 성서를 문자에 갇혀 해석한 객관적 진리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인들을 세뇌시켜 자주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게 류상태씨의 주장.

그래서 그는 교리를 내세워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협박하는 한국 교회의 지독한 도그마를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성서를 바로 이해하려면 역사는 역사로, 신화는 신화로, 전설은 전설로 이해해야 합니다. 신화와 전설을 역사처럼 이해하려는 것은 진실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성서는 인간의 역사와 문학, 문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것들은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그릇이지요. 그릇은 그릇일 뿐입니다. 그릇을 씹지 말고 그릇에 담긴 음식의 맛, 즉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류상태씨는 요즘 사회문제로까지 떠오른 대형교회의 세습이나 대형성전건축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비판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지는 대형교회들의 물량주의 이면에는 교인들이 많으면 헌금도 많아지고, 힘도 생기고 하여 일하기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개신교의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소극적인 모델로 새길교회를 예로 들었다. 새길교회는 3가지가 없는 교회로 유명하다. 목사가 없고, 교회 건물이 없고, 교단이 없다.

그는 요즘 기독교의식개혁운동, 복음의 원형 찾기를 하느라 분주하다. 애초 그는 두 가지 활동방법을 생각했었다. 인터넷을 활용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편견에서 벗어나는 운동을 해야겠다는 것이 그 하나였는데, 현재 인터넷에 '불거토피아'(cafe.daum.net/bgtopia 불로소득을 거부하며 아닌 것을 거부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라는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또 하나는 강의석 사건을 통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학교 내의 종교문제를 학교 내에서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학교 종교 자유를 위한 시민연합'(학자연)을 만들어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 책을 내면서 한 가지 방법을 추가했다. 애시당초 책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의 권유로 책을 쓰면서 책도 매우 유용한 운동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책은 계속 쓸 생각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진실로 너희 종교는 하나이니라'

목사 안수를 받을 때 교단의 신념체계에 따라 사역하기로 약속했던 류상태씨는 근본주의로 종교에 입문하였으나 대학 시절 전공이 철학이었던 탓에 <꾸란>이나 <우파니샤드> 같은 이웃종교의 경전을 접하면서 다원주의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진학한 장로교신학대학원에서 이같은 그의 자유로운 입장을 수용할 리 만무. "진실로 너희의 종교는 하나이니라"는 <꾸란>의 구절이 머리에 맴돌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과 다르게 신학대학에서 통과될 수 있는 논문을 쓰고 졸업한다.

강의석 사건이 터졌을 때도 적당히 학교 입장을 대변하고 그럭저럭 넘겼으면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보전하며 목사와 교사로 살고 있었을 그.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강의석군 사건의 유탄에 맞아 희생됐다고 말한다. 외형상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와의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얻은 결론은 강의석 사건은 강의석 사건대로 하나의 독립된 사건으로 기능하면서 그에게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도록 뇌관 역할을 했다.

뇌관은 폭탄이 터지도록 불을 붙여주기만 할 뿐 폭발력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 1990년대 초부터 신념이 변한 그의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교회 개혁에 대한 열망이 이미 임계점 가까이 도달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강의석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인터뷰를 한 지도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그의 좌판에 붙어서 있기가 부담스러웠다. 오늘 장사의 절반을 공치게 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아서였다. 그런 그에게 인터뷰를 끝내기 위한 마지막 발언을 부탁했다.

"먹고 살기 위해 하고 싶은 말 못했던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이 현실적 형용모순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아웃사이더로 새로운 삶을 사는 인간 류상태씨의 얼굴에는 천진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류상태는 누구인가
'개독먹사' 버리고 노점상 된 교회의식개혁운동가

ⓒ오마이뉴스 이종호
서울에서 태어나 종교가 없던 류상태는 중앙대 철학과 시절 미팅에서 만난, 너무도 잘 대해주던 여학생에게 이끌려 기독교에 입문했다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아예 진로를 바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다닌다.

1983년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염광여상에서 잠시 시간강사로 있다 영락교회 전임전도사로 본격적인 목회를 시작한다.

1985년 목사 안수를 받은 류상태는 영락교회 박아무개 목사의 구두사건이 있던 그날 숭의여중 종교교사로 부임한다.

이후 그는 대광중고 교목실장을 지내면서 한국기독교연합회 교목협의회 회장을 지내는 등 탄탄한 목회자의 길을 걷는다.

그런 그의 삶이 바뀐 것은 2004년 10월 일어난 ‘대광고 강의석 사건’이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강의석군이 학교에서의 종교자유와 예배선택권을 주장하며 단식을 하는 등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것. 이때 그는 강의석군 후원자를 자처하게 되는데, 그 일로 목사직과 교사직을 스스로 반납하고 학교와 교회 밖으로 나와 지금은 생계수단으로 액세서리 노점상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다음 카페 ‘불거토피아’의 카페지기로, 또 ‘학교종교자유를 위한 시민연합’ 실행위원으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 조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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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신문, 잡지, 출판사에서 일했고, 출판평론가로 활동하며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나의 인생 이야기 자서전 쓰기>, <미국학교에서 가르치는 미국역사>를 썼고, <전기>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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