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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에 남아 있었으면 최소 차관까지는 무난했을 거란 평을 들어온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 그런 그가 느닷없이 공직을 박차고 나와 외국계 자본과의 진검승부를 선언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뉴브리지캐피탈 제일은행 매각차익 1조1800억원, 칼라일(한미은행 매각) 7000억원. 론스타(스타타워빌딩 처분) 2000억원.

어디 이뿐인가.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자본은 기업 인수·합병(M&A), 파이낸싱, 부동산 투자로 막대한 차익을 거둬갔다. 그러면서 세금 한푼 안 낸 경우도 많았다. 오죽했으면 영국의 유명 경제지에서 '한국은 외국자본의 놀이터'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을까.

투자세계의 장보고 꿈꾸는 '드림팀'

이때 꼭 9세기 동아시아를 장악한 해상왕 장보고처럼 외국계 펀드를 평정하겠다고 나선 토종 PEF(사모투자펀드)가 있어 화제다. PEF 이름도 장보고에서 따와 '보고펀드(VogoFund)'라고 지었다. 그들은 투자세계의 장보고를 꿈꾸고 있다. 알만한 이들은 그들을 '드림팀'이라고 부른다.

이들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공직에 남아 있었으면 최소 차관까지는 무난했을 거란 평을 들어온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가 먼저 눈에 띈다. 그는 재경부에서 금융정책국장,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며 이른바 ‘잘나가는 관료’ 가운데 한명이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공직을 박차고 나와 외국계 자본과의 진검승부를 선언했다.

“자신 있습니다. 승산 없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면 공직을 뛰쳐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최고 금융전문가 이재우·신재하 의기투합

여기에 국내 최고의 금융전문가 둘이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힘을 보탰다. 이재우 리먼브라더스 서울지점 대표(현 보고펀드 공동대표)와 신재하 모간스탠리 서울지점 전무 겸 투자은행(IB) 부문 대표(현 보고투자자문사 대표)가 그들이다.

둘 모두 기업 M&A에 있어서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들이다. 이재우 대표는 전 직장에 사표를 내고 두 달이 지나서야 사표가 수리될 정도로 회사는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지난 13일 서울 소공동 한화빌딩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에서 보고펀드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변양호 대표를 만났다.

PEF(Private Equity Fund, 사모투자전문회사)란?

PEF는 개인이나 금융회사 같은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기업의 경영권을 사들인 뒤 기업가치를 높여 되팔아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투자한다.

증권시장에서 지분을 공개매집하거나 대주주 또는 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매입할 수도 있다. 자금 사정이 어려운 기업으로부터 부동산을 싼 값에 사들였다가 나중에 팔아 차익을 낼 수도 있다.

PEF는 기존의 사모 인수·합병(M&A)펀드와 비슷하지만 출자액의 100%까지 차입이 허용되기 때문에 더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국내 자본에 의한 PEF 설립이 허용됐으며 올 상반기 중 6∼7개의 토종 PEF가 선보일 전망이다.
서너평 남짓한 사무실이지만 그가 품은 포부는 원대하기만 했다. 대체 이 같은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뭐든 마찬가지겠지만 PEF는 특히 사람이 중요합니다. 조직이 크다고, 돈이 많다고 되는 게 아니죠. 전세계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헤지펀드도 단 몇 명이서 합니다. 이재우, 신재하 대표는 모두 미국 본사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최고의 전문가들입니다. 날고 긴다는 외국계 자본이지만 저흰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외국계 자본이 순순히 물러설 까닭은 없다. 얼마나 냉철하고 또 무서우리만치 영악한 그네들이던가.

“외환위기 직후엔 우리에게 돈이 없었고 경험이 없었고 사람이 없었습니다. 돈, 경험, 사람 모두 갖춘 외국계 투자기관이 수월하게 살 수 있었던 거지요. 더욱이 당시는 우리도 팔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했죠.”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는 얘기로 들렸다.

“이젠 우리도 돈이 충분합니다. 시중 부동자금이 400조원이나 된다 하지 않습니까? 경험이요? 외환위기 이후 7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수업료도 엄청나게 지불했죠. 외국에서 공부하고, 경험도 쌓고 돌아온 뛰어난 인재도 많습니다. 이재우, 신재하 대표를 한번 보세요.”

시장이 모르는 매물 골라내야 진정한 PEF

외환위기 때와 사정이 바뀐 것은 투자대상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누구나 알만한 매물이 많았습니다. 그저 우린 돈이 없어 엄두를 못 냈을 뿐이죠. 하지만 이젠 진로 매각에서 볼 수 있듯이 보이는 매물만으론 수익성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앞으로는 보이지 않는 매물을 찾아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은행, 하이닉스, 대우건설 등이 좋은 매물로 거론되곤 있지만 진정한 PEF는 시장이 몰랐던 매물을 골라내는 데 있습니다.”

토종PEF의 힘은 여기서 발휘된다.

“PEF는 무엇보다 인적 네트워크, 신뢰성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어느 대기업에 자금상의 문제가 생겼다고 합시다. 이를 해결하는데 돈이 필요하다면 그 기업에선 이를 누구와 얘기하겠습니까? 은행이요? 은행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자금상 문제가 있으니 대출을 부탁하면 오히려 기존에 대출한 금액을 서둘러 회수하려 드는 곳입니다.

과거엔 외국계를 기웃거렸지만 그건 마땅한 규모의 우리 펀드가 없었기 때문이고, 이젠 그렇지 않다는 거죠. 저희 같은 PEF도 생겨났으니 이젠 저희가 하겠다는 겁니다. 우리 돈으로, 우리 사람으로 우리 기업을 살리겠다는 거죠.”

그래서 토종을 강조했다. 이름만 장보고에서 따 온 게 아니라 토종을 강조하기 위한 의미도 장보고에서 가져왔다.

“장보고는 성공한 국제 경영인입니다. 민족정신이 투철하면서도 글로벌 마인드를 지녔죠. 책(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이 쓴 ‘장보고의 동북아 전략’)을 보니까 장보고엔 ‘백의 민족을 보호한다’는 뜻도 있고 일본에선 ‘보물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한다고 합니다. 둘 다 좋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갈 겁니다.”

하지만 토종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자칫 온정주의로 기울기 쉽다. 더구나 프로중에 프로의 세계라는 PEF 시장에서 자본의 국적성을 따지는 건 아마추어적이다. 외국계가 됐든 토종이 됐든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상 목표인 것은 마찬가지다.

“외국자본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가면서도 우리 사회, 우리 경제, 우리 국민 속에서 사랑을 받으며 투자업무를 한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국민들한테 사랑을 받으면서 크고 싶습니다. 신재하 대표도 ‘한국인인 만큼 언젠가는 한국회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저희와 선뜻 의기투합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 국민 속에 뿌리 내린 PEF 될 것

우리 국민 속에 뿌리를 내린 PEF가 되겠다는 각오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왜 토종펀드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뭐가 다른가. 우리 돈, 우리나라 사람이 펀드를 이끈다는 것?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펀드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한국사람이 ‘헤드’에 앉아 있다.

“우리 국민 속에 뿌리내려야 하기 때문에 영업방식이 외국계와 같을 수 없습니다. 외국계는 지독히도 영악하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PEF는 프로무대인데 그렇게 안 하면 살아남을 수 있나?

“한탕 크게 하고 떠나면 된다는 식이 저희와 다르다는 겁니다. 저희는 이 땅에서 5년, 10년 후를 내다봅니다. 당장 눈앞의 수익률만을 좇는 식의 영업은 하지 않을 거라는 얘깁니다. 무엇보다 국내 투자자들에게 5년, 10년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수익을 안겨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국계처럼 단 한번의 대박에 승부를 걸겠다는 게 아닙니다. 한번 투자로 끝난다면 우리 투자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토종 PEF가 성공하면 펀딩에 참여한 우리 투자자들은 수익을 내서 좋고, 투자대상 기업은 정상화의 길을 밟아서 좋고, 국민들은 외국계 자본에 돈 퍼다 주지 않아서 좋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거죠.”

사랑 받으려면 먼저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진정 국민 속에 뿌리 내릴 토종펀드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좀 더 멀리 바라봐야 할 터다. 펀드의 공익적 측면이 강조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많이 번 사람이 많이 내야... 공익도 함께 고민

“물론 비즈니스는 철저하게 글로벌 기준에 맞춰 가져갑니다. 최대한 상업적이 되겠다는 얘기죠. 그러나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공익적 역할을 함께 고민할 겁니다. 그렇다고 비즈니스 자체를 공익과 연결시켜선 안 됩니다. 대신 많이 번 사람이 더 많이 내겠다는 겁니다.”

투자자들은 과연 보고펀드의 진가를 알아주고 있을까.

“지금은 투자대상을 물색하기 보다는 펀딩에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누가 펀딩에 참여했는지 밝힐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도적인 외국계 PEF와 경쟁할 수 있는 규모는 충분히 마련됐습니다. 그리고 7월부터 본격적인 투자대상 물색에 나설 계획입니다.”

1시간 남짓 가진 인터뷰 중간에도 변양호 대표는 ‘장보고의 동북아전략’을 손아래 놓아두고 연신 만지작거렸다. 마침 장보고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 ‘해신’이 인기다.

학계, 문화계, 심지어는 재계 까지도 최근 장보고 연구에 관심을 쏟고 있다. 9세기에 해상왕 장보고가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엔 보고PEF가 외국계 펀드를 평정하고 투자세계의 장보고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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