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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고려대학교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식과 관련한 적지않은 소동을 보니,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일이 떠오른다.

91년 외대학생들에게 계란세례 받은 당시 정원식 총리

지난 1991년 당시 국무총리였던 정원식씨에 대한 외대생들의 이른바 밀가루, 계란 투척 사건이 그것이다. 그 당시 새롭게 총리에 임명된 정원식씨는 외대 교육대학원에서 강사 자격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정씨는 총리임명 이후 마지막 강의를 위해 외대를 찾았고, 당시 10여명의 수강생들로부터 작은 선물과 함께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강의실 밖의 상황은 달랐다. 정씨가 외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일부 외대 학생들은 강의실 주변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당시 분위기를 잠깐 설명하자면, 당시로부터 2년 전 정씨는 교육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전교조 참여교사를 해직하는 데 앞장섰으며, 총리로 취임되기 두 달 전에는 당시 명지대 1학년 강경대 학생이 시위 도중 전경에 맞아 숨졌을 때였다. 그리고 그 뒤 1주일에 한 명 꼴로 각 대학 학생들이 분신하면서 매주 토요일에는 정권 타도를 위한 시위가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열렸었고 급기야 당시 성균관대 4학년인 김귀정씨가 역시 시위 도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 학생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이에 노태우 대통령은 정국 전환 차원에서 노재봉 총리를 경질하고 정씨를 후임 총리로 임명하였던 것이다. 강의를 마친 정씨는 분노한 학생들과 마주쳐야 했고, 이때 학생들로부터 밀가루와 계란 세례를 받은 뒤 황급히 학교를 빠져나갔다.

피해 당사자는 침묵한 채 사회 분위기 일순간 반전

그러나 그날 저녁부터 사회 분위기는 일순간 반전되었다. 총리의 외대 방문에는 수십 명의 기자들이 동행하였고, 그날 학생들의 행동은 고스란히 신문과 TV에 전해졌다. 다음날 각 조간신문에는 계란과 밀가루 세례로 범벅된 정원식씨가 마치 집단구타를 당한 뒤의 모습인양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1면 톱으로 실렸다.

사건 당일 저녁 청량리 경찰서에는 수십 명의 외대생들이 계란 투척 여부에 관계 없이 연행되어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외대생들은 일순간 '스승도 알아보지 못하는 패륜아'가 되어야 했다. 학생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도 싸늘하게 돌아서버렸다. 스승도 못 알아보는 학생들이 외치는 민주화 등의 구호가 무슨 의미가 있냐면서….

순식간에 대역죄인이 돼버린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반론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당시 계란 투척을 주도한 사람들은 학교당국으로부터 제적 등의 징계를, 공안당국으로부터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 이후 정국의 상황은 급반전 되었다. 거의 매주 토요일 서울시내가 아수라장이 되던 시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무엇보다도 2주 뒤 치러졌던 지자체 선거에서 집권 민자당이 호남을 제외한 전지역에서 승리하면서 정국주도권을 굳건히 유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강경대, 김귀정씨를 포함, 당시 시위 현장에서 억울하게 숨지거나 분신 자살하였던 10여명의 젊은이들이 어처구니 없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만 것이다.

정원식 총리 한 사람이 외대 학생들에게 당한 봉변의 반작용은 이렇게 크게 그리고 빠르게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당시 언론에 의해 '피해당한 스승'이었던 정원식 총리의 입에서 학생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싶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피해 당사자인 정원식씨는 정작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일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당시 행동은 물론 과거 시위 등에 대한 모든 일들을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극적으로 전체 사회의 여론으로 발전한 것이다.

지금의 사례는 14년 전과는 다르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고대생들의 마찰은 과거 외대에서 일어났던 일과 외형적인 부분, 일부 언론의 극성맞은 보도 등에서는 유사하지만 그 본질은 다소 차이가 있다.

물론 당시의 정원식 총리와 지금의 이건희 회장은 평판이나 영향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경기가 다소 풀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학생들에게 취업은 쉽지 않은 관문이고, 삼성은 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 하는 회사이다. 그리고 우리 경제에서 삼성이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란 힘들다.

그러나 이것만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학생들은 이건희 회장의 존재를 부인한 것이 아니다. 우리 경제 발전의 중심에 있는 삼성의 역할을 부인한 것도 아니다. 다만, 현재까지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일부 계열사에서 노동자를 탄압한 것에 대한, 일부 문제점에 대한 항의의 표시일 뿐이며, 이러한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록 명예박사학위지만 경제학도, 경영학도 아닌 철학박사를 수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항의였을 뿐이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대한 이 정도의 문제제기, 그것도 이재용 상무의 표현대로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 의해 일어난 일을 이렇게까지 침소봉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비록 겹겹히 둘러싸인 경호원들에 의해 이건희 회장에 대한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학생도 물리적인 위해를 가할 의사나 수단도 없었다. 적어도 오마이TV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학생들의 반대의사 표현 자체를 봉쇄하려 한 삼성 관계자들과의 마찰때문에 약간의 소동이 벌어진 것일 뿐이었다.

오늘 아침 뉴스에는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10여명의 대학 간부가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고 하는데 이 점 역시 참으로 우려되는 부분이다. 학교 측에서 어렵게 모신 외부인사를 잘 대접하기는커녕, 큰 소란을 안겨준 데 따른 죄책감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것이 자칫 학위수여에 반대의사를 표시했던 학생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무조건 잘못했으니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14년 전 외대에서의 그 사건의 또 다시 재현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려스러운 일이다. 문제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수단이 강구되어야 한다.

삼성이여,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하자

문제의 해결을 위한 열쇠는 굳이 잘못의 유무를 따졌을 때 피해 당사자일 수 있는 삼성이 쥐고 있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삼성그룹에서는 처장들이 사퇴하는 등 사태가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표현을 했다고 한다.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아울러 삼성그룹에도 하나의 건의를 해보고자 한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들을 초청해서 그들과 토론의 장을 마련해 봄이 어떠할까? 삼성 입장에서는 우리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부 곱지 않은 시선이 남아 있음이 억울할 것이고, 학생들 역시 외부에서 바라보는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실제 당사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부탁일 수 있겠지만 이건희 회장이 직접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여진다면 더 더욱 좋을 것이다. 적어도 이 문제는 당시 시위에 참가하고, 이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에 반대했던 학생들과 삼성그룹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비중있게 다뤄지거나, 우려에 가득찬 학교 당국자들의 목소리는 궁극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이건희 회장의 명예학위 수여에 재계 관계자보다 더 큰 박수와 함성을 학생들로부터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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