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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교과서 속 위안부 20만에 찬성 못해"라는 주장을 하여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영훈 교수는 당시 인구 통계에 근거하여 20만 명의 젊은 여성들이 성노예(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라는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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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교수 "교과서 속 '위안부 20만'에 찬성 못해"


이영훈 교수가 제기하는 정확한 한국인 성 노예 또는 강제 연행 숫자에 대한 문제 제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의 문제 제기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눈감으면서 숫자 타령만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성 노예 또는 강제 연행된 숫자에 대해서 누구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 역사학계의 문제점이다. 해방 된 지 60년이 지난 현재 한국 역사학계는 지난 60년사 또는 100년사에 대한 정확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 중요 원인은 바로 친일파 출신 학자들이 학계를 장악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리영희 선생 말을 빌자면 '일본 우익 세력과의 정신적 공유'를 통해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이론으로 무장하여 기득권을 유지해 왔다. 즉, 일본의 한국 지배를 통해 한국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성 노예 그리고 강제 연행의 문제는 몇 명이 끌려갔는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확한 통계가 있다면 좋겠지만 일본이 조직적으로 문서를 파기하면서 과거사를 감추었고 친일파 출신의 한국 학자들은 문제 의식조차 없었기 때문에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또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 정확한 통계 산출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영훈 교수는 스스로 역사학자임을 강조하면서 정확하지 않은 숫자를 아무렇게나 거론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비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 스스로 성 노예 그리고 강제 동원된 숫자가 대략 얼마가 될 것이라고 추산하면서 통계의 정확성에 찬성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정부와 군부가 조직적으로 젊은 여성들을 성 노예로 강제 동원한 유례가 없다. 이것은 분명 전쟁 범죄이며 반인륜 범죄 다. 바로 이것이 성 노예 그리고 강제 연행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훈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거론하지 않으면서 20만 명이라는 숫자에 초점을 맞추고 문제를 희석시키고 있다. 이런 방법은 '친일'세력들이 쓰는 전형적인 자기정당화 수법과도 같다.

일본은 아직도 한국인 성 노예들은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돈 벌기 위해 취업한 여성들이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성 노예 출신 여성들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일본은 정부와 군부가 함께 조직적으로 젊은 한국 여성들을 성 노예로 끌고 갔고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착취를 당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젊은 청춘을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유태인들은 600만 명이 나치에 의해 홀로코스트 학살로 살인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600만 명이 학살됐다고 추산하고 있을 뿐 누구도 정확한 숫자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코스트는 반 인륜범죄의 대명사가 되어 600만 명이라는 숫자에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600만 명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홀로코스트라는 반 인륜범죄와 살생행위를 기억해야 하며 이런 범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성 노예 그리고 강제 연행의 만행도 기억해야 하며 반드시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일본이 또다시 그러한 만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국제사회로부터 견제를 받게 될 것이다.

부언하자면 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11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은 '적국시민'으로 낙인찍혀 포로 수용소에 감금당했다. 그들은 1988년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 편지를 받았으며 한 사람 당 $20,000의 배상금도 받았다. 미국 정부는 과거사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배상금도 지불한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를 자랑하는 서울대학교 교수의 신분으로서 성 노예 그리고 강제 연행 문제의 핵심은 거론하지 않고 숫자의 정확성을 문제삼는 글을 공개적으로 기고한 것이 진정 올바른 방식의 과거사 청산이냐고 되묻고 싶다.

과거사 청산의 문제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도 한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면서 한-일 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주한 일본 대사는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한-일간 진정한 파트너로서의 동맹이 가능할까. 한-일간의 앙금이 깨끗이 정리되지 못하면 반목과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독일처럼 과거를 사죄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여 과거를 깨끗이 청산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청산은 꼭 해야 할 우리의 과제다.

덧붙이는 글 | 장태한 기자는 미국 UC 리버사이드 대학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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