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기 작가 공지영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법정 스님의 번역서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사람들의 눈과 귀에 익숙한 글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이다. 더구나 다음과 같은 글이 신문과 방송,인터넷 매체 등에서 많이 인용되고,시를 좋아하는 이들의 읊조림 속에서 온 국민의 애송시처럼 읽히는 다음의 글이 더욱 더 사랑을 받고 있다.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윗 글은 우리가 많이 사랑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숫타니파타>라는 초기 경전에 나오는 말씀의 아주 일부만을 써 놓은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래서 종교를 가리지 않고 많이 읽고 있는 이 글은 시 형식을 띄고 있는 데다가 서로가 서로를 대할 때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경쟁의 사회에서 욕심을 내며 남을 속여서라도 나의 이익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가 강하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리라.

게다가 공지영이라는 유명 소설가의 소설에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어서 많은 이들의 눈과 귀에 익숙한 숙어처럼 읊어지고 있는 글귀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글귀이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소'가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한 것이다. 무소가 소인가? 소라면 어떤 소인가? 무소의 뿔은 또 어떻게 생겼으며 몇 개인가? 왜 무소라고 부르는가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그래서 의문을 속시원하게 풀고자 공부를 시작했다. 제 뜻과 용도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흔히 숫타니파타는 <경집>(經集)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경들을 모아 놓은 것' 또는 '작은 말씀들을 모아 놓은 경'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숫타'라는 말은 원래 인도 마가다의 말인 빨리어로 '경전'이라는 뜻도 있지만 '잘 설해진=잘 말씀한'이라는 뜻도 있다. 때문에 숫타니파타는 '잘 설해진 (가르침) 모음' 또는 '잘 말씀한 (가르침) 모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불교경전 중에서 초기의 경전을 '아함경(阿含經)'이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에서 번역된 한역경전이며 남방에서 대하고 있는 경전들은 '니까야'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한역 아함경이나 남방의 니까야가 모두 그 경전의 분류, 편집 방법을 경전의 길이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경의 이름에 그 성격이 나타나 있다. 가장 초기의 아주 짧은 경들의 모음은 '쿳다까니까야'이다. '소부니까야'라고도 한다. 한역에서는 별도로 모아 놓지 않고 독립된 경으로 되어 있는데, <법구경>, <숫타니파타> 등 우리에게 알려진 몇 개의 경전군이 있다.

숫타니파타는 쿳다까니까야에 속한 경전이므로 길이가 아주 짧으며,다른 경전들처럼 묻고 답하는 이가 다로 있지 않아서 경전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시 형식의 경전이다. <담마파다> 또는 <법구경>이라고 부르는 같은 경전 또한 시 형식의 경전이다. 이러한 형식의 경전 또는 가르침을 '우다나'라고 부른다. 우다나는 '감흥어(感興語)' 즉 시(詩)라는 말이다.

숫타니파타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직후 약 50년 전후에 성립된 아주 초기의 경전이다. 그것은 원시적인 불교 공동체에 대한 표현을 담고 있고, 두타행(頭陀行)이나 바라밀(婆羅蜜: paramita)같은 후대의 불교 교리가 없고, 탑묘나 유골 등에 관한 언급이 없으며, 아쇼카왕의 비문에도 씌어 있는 등의 여러 증거에 의해 아주 초기에 편집된 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경에는 수행자(사문)와 사제(바라문) 및 재가자와 출가자의 삶, 그리고 이상적인 고행자와 성자의 길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 나라에 몇 명의 스님과 불교학자가 번역을 했는데 대개는 일본책을 번역하거나 한문 경전을 번역하여서 원어의 맛을 잘 알기가 어렵다. 근래에는 전재성 교수의 빨리 원전 번역이 나와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 1149개의 짧은 시들로 이루어진 이 경이 가지는 가치는 참으로 중요하지만 이는 읽는 이의 이해의 몫일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하자. '무소'란 도대체 무엇인가? 물소인가? 코뿔소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코뿔소'다.

세계적으로 뿔이 하나이면서 소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코뿔소밖에 없다. 그런데, 코뿔소를 한자로 번역하면 '서(犀)'가 되는데 우리 나라에서 번역할 때는 자세한 상식을 모르다 보니 코뿔소, 외뿔소, 무소라고 번역했는데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이는 '물소'라고까지 번역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혼자서 가라고 했기 때문에 외뿔소라고 번역했지만 외뿔소는 잘 안 쓰는 이름이다. 코뿔소의 외뿔처럼이라 한 번역은 맞는 번역이기는 하지만 글의 맛이 적다. 우리 글의 맛을 살린 제대로 된 번역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이다.

무소라는 말의 참 뜻은 국어사전에도 안 나오고 불교사전에도 안 나오고 고어사전에도 확실치 않아서 뜻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무소= 무서'라고 해서 코뿔소를 뜻하는 말이다.

고어로는 무쇼, 무서, 서(犀)를 찾을 수 있다. 쌍용자동차의 차 이름 무쏘, 뭇쏘는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린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무'라는 말은 '없다, 하나다, 약하다'라는 뜻이 들어 있는 우리 고유 말의 접두사이다. 무서리, 무쇠솥, 무소…. 그래서 무소라는 말은 뿔이 무성하게 많지 않고 하나만 있는 소라는 말이다.

물소라고 나와 있는 사전도 있는데 망발이다. 물소는 뿔이 두 개 있으므로. 그러니까 무소는 코뿔소가 맞다. 무쇠뿔이라는 것은 무쇠로 만들어진 뿔이라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말에 소유격이나 기구격의 기능을 가진 '의'는 앞의 소리를 생략하고 'ㅣ'을 앞말에 붙여서 쓰기도 한다.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무쇠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써도 된다.

'물소의 뿔'은 절대로 안되지만 '코뿔소의 뿔처럼'이라고 해도 되고, 뿔이 하나라는 말을 어렵게 쓰지 않고 바로 의미가 통할 수 있게 '외뿔소의 뿔처럼'으로 써도 좋다. 그렇지만 가장 맛있고 멋있는 표현은 '무소의 뿔처럼' 이다. 무소라는 말에는 뿔이 하나라는 뜻이 이미 들어 있으므로 굳이 또 나타낼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