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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문 고려대 총학생회장(왼쪽)과 박이정엽 연세대 민노당학생위원장이 23일 오전 고려대에서 만나 학내 친일청산 작업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고려대 인촌 김성수 동상과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의 동상은 철거될 수 있을까.

지난 23일 오전 11시, 서울대학교 일제잔재청산위원회(준)가 대학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던 시각, 대학가 '친일 청산' 움직임의 진원지이기도 했던 고려대학교에서 두 명의 학생이 만났다.

학내 친일 청산 '고-연전'에 나선 고려대 총학생회장 유병문(23·산업공학 3년)씨와 연세대 민노당 학생위원장 박이정엽(25·경제학과 4년)씨.

이들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노벨상 수상자 초청 강연회를 여는 등 '글로벌'을 선언한 고대와 120년 전통의 사학으로 21세기 명문대를 지향하고 있는 연대가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대학내 친일 문제를 청산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이 꼽은 고대와 연대의 대표적인 친일인물은 고대 인촌 김성수와 총장을 지낸 유진오, 연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과 유억겸. 이들이 준비하고 있는 학내 친일 명단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친일인물 명단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재단과 보수언론, 친일 인사들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학 친일청산은 친일 세력의 근거지 해체하는 일"

고대 친일잔재 청산에 불을 지핀 한승조 전 명예교수. 유병문씨는 "한 교수의 친일 발언과 인촌의 친일 행적이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 교수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일면서 친일 교수들이 움츠리고 있지만 뿌리 깊은 친일 세력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내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한승조 교수가 등장할 것이라는 것이다.

박이정엽씨 역시 "일제에 부역했던 인물과 재단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친일 인물들의 성향은 이미 드러난 상태"라며 "친일 명단을 발표하면 재단측은 '당시 친일은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 혹은 무반응으로 외면하면서 파문을 줄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반박할 논리는 충분하며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친일세력의 주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학 친일청산은 "대학 출생의 어두운 비밀을 밝히는 일이자 친일세력의 근거지를 해체하는 일"이라며 "대학 친일청산은 사립학교법 개정과도 연결된 문제로 대학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가로막는 수구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고대가 할 일은 성대한 기념행사 아닌 친일 역사에 대한 평가와 반성"

▲ 유병문 고려대 총학생회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친일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외면한 채 노벨상 수상자들을 초청하는 등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하는 것은 학우와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대학이 해야할 일은 성대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100년이 되도록 친일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참회와 반성이다."

유병문씨의 말이다. 그는 "재단의 압박이 심할지라도 청산할 것은 청산하고 부딪칠 것은 부딪치겠다"며 "학내 친일잔재의 진실이 규명되면 학우들도 친일청산에 적극 참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학생들의 동참을 기대했다.

그러나 대학 내 분위기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학생과 교수들의 무관심. 유씨는 "한승조 교수사태 발생 시점에는 학생들의 분노가 뜨거웠으나 지금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상태"라고 말했다.

고려대 총학생회 산하 '일제잔재청산위원회'는 이 달 28일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11일 위원회가 출범했으니 18일만에 결과가 발표되는 셈. 짧은 조사기간 탓에 기대와 우려가 반반 섞여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명단은 작성된 상태이지만 조사는 발표 당일까지 진행될 것"이라며 "명단에 생존한 인물은 없고 과거에 총장과 교수를 지낸 인물들이다. 누구나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친일인사가 명단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고대 총학생회장은 또한 "반론과 해명의 기회를 주기 위해 대학이나 재단 측에 토론회를 제안할 계획"이라며 "또한 학우들과 토론을 통해 친일청산 여론을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이 동상 철거 않으면 친일파 표식 설치할 것"

▲ 박이정엽 연세대 민노당 학생위원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18일 친일청산위원회를 출범한 연대 학생위원회는 이 달 말 친일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14일간의 짧은 조사일정이다. 연대 학생위원장은 "3월 말 발표할 예정이지만 4월 초로 연기될 수도 있다"며 "조사가 허술할 경우, 역풍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려대는 인촌을 기념하기 위해 '인촌상', '인촌동상', '인촌기념관'을 세웠고 학교 주변에는 '인촌로'가 있다. 연세대는 '백낙준 동상' 백낙준의 호를 딴 '용재관'과 '용재상', '용재 석좌교수'와 '유억겸 기념관'을 세웠다.

두 사람은 친일 인사의 동상을 청산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특히 연대 학생위원장은 "학교측의 동상 철거를 요구하겠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친일파라는 표식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연대 학생위원회는 백낙준 동상철거 서명운동과 모금운동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연세대 학생위원장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민족과 민중을 배신해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친일 상징물은 대학에서 사라져야 한다"며 "대학의 친일잔재 청산을 통해 대학과 지식인 사회에 만연한 기회주의적인 처세도 함께 청산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학내 친일청산이 고대, 연대, 서울대, 이화여대로 확산되면서 친일청산 네트워크 구성 등이 논의되는 가운데 학내 일제청산이 과거사 청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대학의 친일청산과 과거사 청산이 맞물려 진행될 경우 진정한 친일청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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