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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을 구경하면서 사적이나 명승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모두 돌로 만들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 오래 되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체로 현대가 금강산관광을 시작하면서 만든 것으로 보였습니다.

사적이나 명승을 설명하는 안내판이야 당연히 세우는 것이니 논의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대개 철판으로 만들어 세워놓은 것에 비해, 금강산의 것은 거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다소 다를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보는 것은 이른바 '현지지도표식비'라고 하는 기념비입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금강산을 방문하여 지시하거나 교시한 내용을 새겨 비석처럼 세워놓은 것으로 줄여서 표식비라고 합니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도 자신들의 방문기념비나 현판에 글씨를 남기기도 합니다만 이런 종류의 표식비는 처음이어서 눈여겨보았습니다.

▲ 삼일포 현지지도표식비. 내용은 이렇습니다. "위대한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47년 9월 28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1981년 6월 16일 여기 삼일포를 찾으시어 경치 아름다운 이곳을 근로자들의 문화 휴식터로 더 잘 꾸릴데 대한 귀중한 가르침을 주시였다."
ⓒ 백유선

▲ 구룡연코스 입구의 현지지도표식비. 남한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촬영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 백유선
"길이 전하는 또 하나의 불멸의 기념비"

1984년 북한에서 발간된 <금강산의 력사와 문화>에 의하면 외금강에 11개소, 내금강에 8개소, 해금강에 3개소에 현지지도표식비가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금강산 기행 중에 본 것들도 모두 이보다 전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현재도 그 숫자는 이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표식비에 대한 이 책의 서술은 북한에서 표식비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금강산 지구에 세워져 있는 현지지도표식비들은 어버이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이 지구를 현지 지도하시면서 우리 인민들에게 돌려주신 뜨거운 사랑과 크나큰 배려를 위대한 사랑의 서사시로 아로새겨 길이 전하는 또 하나의 불멸의 기념비이다.

즉 북한에서 현지지도표식비는 '불멸의 사적'으로 후손에 길이 전할 노동당시대의 기념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 주의사항 중에는 표식비에 올라서거나 손가락질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금기사항으로 되어 있습니다. 북한에서 불멸의 사적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인데 이를 모독하는 행위는 당연히 그들의 심기를 흐리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친일시비에 휘말린 대통령의 현판이 강제로 철거되는 모습이 뉴스가 되고, 광화문의 현판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방문해서 민박했다는 한 마을의 방문기념비는, 이미 오래 전 옛 5·18광주민중항쟁 묘역 입구의 발판으로 전락해 방문자의 발에 짓밟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 옛 5·18광주민중항쟁 희생자 묘역 입구의 발판으로 전락한 전두환 전 대통령 방문기념비. 1993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현재는 옛 묘역 곁에 5·18국립묘지를 새로 조성했습니다. 이 돌의 행방은 알지 못합니다.
ⓒ 백유선
표식비는 이처럼 남한에서 일부 정치지도자의 현판이나 방문기념비가 천대 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체제의 차이에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고, 정치지도자를 보는 눈의 차이일 수도 있으며, 재임 중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평가는 역사가 내려주리라고 믿습니다.

표식비의 교시 내용은 금강산을 문화적 휴양지로 잘 꾸미라는 내용을 비롯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금강산을 방문하여 언급했던 내용들입니다. 김 주석은 이미 북한에서는 신격화된 존재니 그들이 보면 교시 내용을 적어 표식비를 세우고 성역화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남한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신기한 관찰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표식비 근처는 호기심 속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장소가 됩니다. 그것도 맨 처음에 보이는 표식비가 특히 관심의 대상이 될 뿐 나중에는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슴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금강산의 구룡연 코스에서는 주차장에서 구룡폭포까지 모두 5개의 현지지도표식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주차장을 출발하여 얼마 가지 않아 맨 처음에 나타나는 표식비는 김일성 주석이 김정숙을 회고하였다는 내용의 것이었습니다.

▲ 구룡연코스 입구의 현지지도표식비. 내용은 이렇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어버이 수령님의 점심식사가 못내 념려되시여... 이곳에서 걸음을 돌리시였다. 존경하는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이후에도 끝내 금강산을 다시 찾지 못하시였다.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1973년 8월 19일 금강산을 찾으시였을 때 김정숙동지의 고결한 충성심에 대하여 가슴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 백유선
김정숙(1919∼1949)은 김 주석의 첫째 부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입니다. 김정숙에 대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동단에 가입하여 반일활동을 하였으며, 1933년에 공산청년단에 가입하였다. 1935년 9월에 항일유격대에 가입하여 1936년 이후 김일성이 지휘하는 항일연군 제1로군 6사에서 활동하였으며, 제1로군 6사가 주도하던 조국광복회 조직사업을 위해 공작원으로 장백현에 파견된 적이 있었다.

1940년 10월 23일 김일성부대가 일제의 토벌을 피해 소만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이동할 때도 김일성과 함께 있었고, 그들은 이 국경을 넘기 직전에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련에서 김정일과 둘째 아들(전쟁 전에 익사)을 출산하였다. 광복이 되자 여성 유격대원들과 1945년 11월 25일 함경북도 웅기항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왔다. 1949년 9월 22일 30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는데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김 주석과 함께 항일투쟁을 했으며, 결국은 서로 결혼한 인생의 반려자이자 동지였으나 3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를 회고하였다는 표식비는 앙지대에도 또 하나 세워져 있었습니다. 특히 앙지대는 김 주석이 김정숙을 회상하였다고 하여 회상대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로 보아 김 주석의 김정숙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앙지대 현지지도표식비. 김정숙을 회고하였다는 내용입니다.
ⓒ 백유선
그 외 목란관을 지나 두 번째로 만나는 표식비는 "조국 통일의 역사적 위업 수행을 위한 강령적 교시를 주신 곳"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는 통일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금강문 앞의 표식비는 "금강문을 지나야 금강산 맛이 난다"고 하여,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언급한 내용입니다. 금강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내용의 표식비로 생각되었습니다.

옥류동의 표식비는 경치에 반해 감탄하다 보면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내용에는 김 주석과 김 국방위원장이 방문했다는 사실은 적혀 있으나 다른 것과는 달리 교시한 내용이 없이 그냥 "뜻 깊은 사적을 남기시었다"라고만 되어 있는 것이 독특했습니다.

▲ 목란관 위의 현지지도표식비. 내용은 이렇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1973년 8월 19일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 수행을 위한 강령적 교시를 주신 곳"
ⓒ 백유선

▲ 금강문 앞 현지지도표식비. 내용은 이렇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73년 8월 19일 몸소 여기 금강문을 지나시며 '이 금강문을 지나야 금강산 맛이 납니다'라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 백유선
또 구룡연의 표식비는 "금강산을 세계 명승지로 더 잘 꾸밀 데 대한 강령적 교시를 주시었다"는 내용입니다. 삼일포에서 본 표식비도 마찬가지여서 "경치 아름다운 이곳을 근로자들의 문화휴식처로 꾸릴 데 대한 귀중한 가르침을 주시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즉 이 두 곳의 표식비는 금강산을 잘 보호하고 가꾸어 휴양지로 만들라고 교시하였다는 내용입니다.

내용 중에 다소 신기했던 것은 남한에서는 예전에 사용하다 이제는 그다지 쓰이지 않는 '근로자'란 말이 북한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남한에서는 근로자 대신 노동자란 말이 더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옥류동의 현지지도표식비. 다른 표식비와는 달리 교시한 내용 없이 그냥 "뜻 깊은 사적을 남기시었다"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 백유선

▲ 구룡연의 현지지도표식비. 금강산을 세계적 명승지로 만들자는 내용입니다.
ⓒ 백유선
명제비와 영생탑

표식비 외에 또 하나 명제비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김 주석이나 김 국방위원장이 내린 명제 즉 명언이나 어떤 것에 대한 정의를 그대로 새겨 놓은 비입니다.

이번 금강산 기행 중에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구룡대에는 김 국방위원장이 "참으로 금강산은 우리 민족의 기상입니다"라고 한 말을 새겨 놓은 비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비석은 명제비라고 하여 현지지도표식비와는 구별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미사여구가 없는 이 비는 성격상 우리 정치지도자의 어록비와 비슷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금강산과 직접 관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 온정각 근처 온정리 마을 입구에는 '영생탑'이라 불리는 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영생탑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쓰여 있어 김 주석이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한다는 내용입니다.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사회주의 체제에서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영생'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고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정봉사소의 북한 봉사원에게 물어보니 영생탑은 '리'단위로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삼일포 가는 길에 보이는 여러 마을들에 이 영생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영생탑은 정면에서만 촬영이 허락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약간 옆에서 사진을 촬영하려다가 북한 군인의 제재를 받기도 했습니다.

▲ 영생탑. 내용은 이렇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 백유선
이들 표식비나 명제비 그리고 영생탑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 보려 했으나,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북한 체제를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짧은 소견으로는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좀더 많이 알게 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초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기행기의 열일곱 번째입니다.
이 내용은 글쓴이의 홈페이지('백유선의 고구려 유적답사기', http://noza.pe.kr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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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콘서트>,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공저), <우리 불교 문화유산 읽기>, <한번만 읽으면 확 잡히는 국사>(상,하)의 저자로 중학교 국사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