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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규상

ⓒ 심규상

"독립투사 통곡한다. 김창룡묘 파내라."
"민족반역 역사에 시효는 없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등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20여명은 3.1절을 맞아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제1장군 묘역)에 안장된 김창룡 육군중장의 묘(69번) 이장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9시 대전현충원 정문에서 집회를 갖고 "김창룡은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수많은 항일조직을 색출하고 독립군을 고문학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방후에는 정보장교로 군부 내 각종 사건을 조작했고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배후로 지목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또 "독립군을 고문한 민족반역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것은 애국지사를 욕되게 하고 민족정기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김창룡 묘와 지척의 거리에 백범의 모친과 큰아들이 안장돼 있다"며 "김창룡의 묘를 즉시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대전광역시당도 이날 성명을 내고 "국방부는 친일 반민주 정치군인 김창룡의 묘에 대한 이장을 즉시 결정하고 올바른 과거사 청산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국방부 "관련법상 유가족 요청 전에는 이장 불가능"

한편 국방부는 이같은 요구에 대해 "군은 안장대상 여부를 오직 관계법령에 의거 결정하고 있다"며 "국립묘지에 안장된 자는 관련법(국립묘지령 15조)에 의거 피안장자의 유가족으로부터 이장요청이 있어야만 (이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창룡 묘는 사망(1956년 1월 30일)이후 사설묘역에 안치돼 있다 지난 1997년 7월 31일 유가족의 국립묘지로의 이장신청에 따라 관련법에 의거 1998년 2월 13일 대전국립현충원으로 옮겨졌다.

김창룡 전 특무부대장은 함경남도 영흥 태생으로, 일제시대 관동군 헌병대 정보원, 한국전쟁 당시 육군본부 정보원, 군검경합동수사본부장, 육군특무부대장 등을 지냈다. 지난 1992년에는 안두희에 의해 김구 선생 암살 당시 '실질적 지령'을 내린 인물로 지목됐다.

또 김종필 자민련 총재(한국전쟁 당시 육군본부 정보2과 근무)는 2000년 1월, '대전형무소 학살사건'을 공론화시킨 재미동포 이도영 박사와의 면담 과정에서 "(전쟁 당시 양민학살은) 전부 김창룡(당시 육본본부 정보국 4과장)이 한 것이다"고 증언한 바 있다.

대전국립묘지에는 김창룡 중장 외에도 유학성 전 의원(1927-1997, 육군대장. 12.12 관련 인물), 오제도 검사(1917-2001, 한국전쟁직전 ‘보도연맹' 주도) 등이 안장돼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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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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