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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와 전두환 그리고 한용운

예정된 2월 3일 아침 8시 금강산행 버스는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육로 관광이 시작되면서 수로 관광은 실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제 금강산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양평·홍천·인제를 거쳐 고성 통일 전망대에 설치된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휴전선을 넘어가게 됩니다.

잠깐 조는 사이에 버스는 어느덧 백담사 입구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 설악산 백담계곡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백담사에 갔던 기억이 났습니다.

작은 사찰인 백담사는 무엇보다도 전 대통령인 전두환씨가 이곳에 유배된 후로 널리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죠. 10여 년 전에 방문했을 때에도 전씨가 머물렀던 방을 그대로 보존하여 관광객을 불러들인 기억이 납니다. 그 후 특별한 일이 없으니 지금도 그런 모습은 큰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사실 백담사는 일제시기 항일 승려로 이름을 떨친 만해 한용운 스님이 머물렀던 곳입니다. 그의 시 '나룻배와 행인'을 새긴 한용운의 시비도 있지요. 그러나 전씨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보니 한용운은 곁가지로 머물고 말았었죠.

요즈음에는 전씨의 가치가 점점 떨어져서인지 한용운 스님을 기리는 사업이 다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이곳에 한용운 기념관을 세운다는 이야기도 언론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쪽 유일의 금강산 사찰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어느덧 차는 진부령을 넘어 고성으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조금 지나다 보니 건봉사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었습니다.

건봉사는 금강산 사업이 시작되기 전 남한에서 가볼 수 있었던 유일한 금강산 사찰이었다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금강산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고,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금강산 건봉사라고 불려 왔습니다.

13년 전 처음으로 건봉사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전에는 다른 금강산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큰 규모였으나, 전쟁 중 파괴되어 나중에 세운 조그만 전각 하나만이 겨우 사찰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후 다시 방문해 보았더니 일부 건물들이 복원되어 제법 사찰의 모습을 띠고 있었지만, 13년 전만 하더라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큰길에서 건봉사까지는 비포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길도 엉망이어서 도저히 승용차로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차를 세워두고 2~3km 정도를 걸어서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절 입구에는 그곳부터 민통선임을 알리는 푯말이 서 있어서 꽤 긴장하며 절 구경을 하였습니다. 바로 위쪽이 휴전선이라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했지요.

▲ 건봉사 입구의 민통선임을 알리는 표지판. '이곳은 민통선 북방지역이므로 사찰내에 한하여 자유로이 이용하고...'
ⓒ 백유선
▲ 건봉사 일주문. 한국전쟁 때 불타지 않은 건봉사의 유일한 건물입니다.
ⓒ 백유선
이곳에서 불기 2955년으로 표시된 돌솟대를 보고 실제 불기와 몇 백 년 차이가 나는 것에 의문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 구경 온 스님에게 물어 보았더니 잘 모르더군요. 이곳에 거주하던 스님 한 분이 답을 주었습니다.

석가모니 입멸 후 점을 찍어 연도를 표시하다 보니 생긴 오류라고 하더군요. 최근에야 다시 알게 된 내용이지만 석가모니 탄생과 입멸에 대한 기록의 부재와 연도표시의 오류에서 생긴 일이며, 이제는 국제적으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불기 연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건봉사 돌솟대. 불기 2955년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는 1960년대 이전에 사용하던 불기 연도 표기법에 의한 것으로 현재 사용하는 불기 연도와는 몇 백 년 차이가 납니다. 요즈음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연도 표기법에 의하면 올해는 불기 2549년입니다.
ⓒ 백유선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금강산의 사찰을 돌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한 사명대사의 비였습니다. 13년 전 처음 보았을 때는 일제에 의해 세 조각이 난 채 땅에 나뒹굴고 있었는데, 몇 년 후 다시 와보니 복원되어 있더군요.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 건봉사 사명대사비. 일제가 이렇게 파괴한 후 오랫동안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 백유선

▲ 복원된 건봉사 사명대사비. 다소 어설픈 모습이었습니다.
ⓒ 백유선
지금 생각하니 이때 금강산에 처음 와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이곳은 금강산의 초입에 해당하고 절 이름도 금강산 건봉사인 것처럼, 넓게 보아서는 금강산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차는 화진포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군 휴양소로 지정되어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었던 곳인데 일반인에게 공개되면서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김일성 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더구나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도 남아 있습니다. 구태여 이곳 경치의 아름다움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통치자들의 별장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전 38선 이북이었던 이곳이 전쟁 후 남한의 영토가 되면서 남북 지도자의 별장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거죠. 최근에 김일성 별장을 보수, 수리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기억으로 이곳 별장에서 찍은 김정일의 어릴 적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휴전선은 없다

백담사, 건봉사, 화진포 모두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의미 있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차는 이내 점심 식사가 예정된 금강산 콘도에 도착했습니다.

식사 후 통행증을 받기까지 약 1시간 이상 자유시간이 있었습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이곳의 경치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보내는 1시간이 꽤 아쉽게 생각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화진포나, 아니면 출입국 관리소가 있는 통일 전망대에서 시간을 보내게 했으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금강산 콘도에서 본 겨울 바다
ⓒ 백유선
출입국관리소가 있는 통일 전망대에도 여러 번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망원경을 통해 또는 육안으로 금강산을 바라보았던 아쉬움이 기억납니다. 멀리 보이는 낙타등처럼 보이는 구선봉과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로 알려진 상팔담이 어렴풋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철조망의 무게에 눌려 아쉬움을 지닌 채 이곳을 떠나곤 했습니다.

▲ 남쪽 출입국 관리소. 공항에서의 출입국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 백유선

▲ 출입국 관리소에서 바라본 통일전망대
ⓒ 백유선
바라보기만 했던 그곳 금강산을 이제 육지를 통해 가게 되었습니다. 민통선, 북방 한계선, 휴전선, 북측의 남방 한계선을 차례로 지날 생각을 하니 가슴 속에는 기대감과 함께 무엇인지 모를 긴장감에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긴장 속에 드디어 차는 휴전선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차 안에서 현대 측 안내원이 휴전선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휴전선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것이었죠.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휴전선은 철조망으로 되어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차를 타고 통과하면서 본 휴전선 표시는 녹슨 철판 표지판,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휴전선은 단지 그것을 알리는 작은 푯말 하나에 불과할 뿐, 그 동안 TV를 통해서 본 철책선은 북방 한계선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휴전선을 기점으로 남북 각각 2km지점에 남한의 북방 한계선과 북한의 남방 한계선이 이중 철조망으로 각각의 경계선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는 말 그대로 비무장 지대인 것이죠. 다시 말하면, 휴전선이 철조망이 아니라 남측과 북측의 경계선이 철조망이었던 것입니다. 군에도 다녀왔건만 이제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전에는 통일 전망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낙타등 모양의 구선봉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과 금강산이 말 그대로 개골산 즉 바위산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북측 한계선을 지나 북한 군인의 검문이 있었습니다. 인원수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딱딱한 모습이어서인지 우리 학생들의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이곳을 지나니 이제는 북한의 영역입니다. 멀리 북한의 마을이 보이고 걷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울타리가 처진 찻길 주변에는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부동자세로 선 북한 군인이 버스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촬영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군사시설이 있는 지역이니 촬영을 철저히 통제한다고 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이나 군사지역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이해가 되기도 했으나, 사실 군사 시설이 쉽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보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들의 딱딱한 모습에서 이곳이 북한 땅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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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기행기 1] 금강산에 대해 '제대로' 알아봤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초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기행기의 세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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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콘서트>,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공저), <우리 불교 문화유산 읽기>, <한번만 읽으면 확 잡히는 국사>(상,하)의 저자로 중학교 국사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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