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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기를 시작하며

'그리운 금강산'

노래 제목으로만 알았던 금강산, 2월 초 2박 3일의 일정으로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학생 통일 체험 활동의 인솔교사로 차출되어 북한 땅을 밟은 것입니다. 사실 그리 많은 경비가 드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 때문인지 가야할 여행 대상지에 끼지 못했는데, 드디어 다녀오게 된 거죠.

평소 역사, 문화에 관심을 가진 국사교사로서 우리 역사에서 그토록 이름을 떨치고 명산으로 이름난 금강산에 다녀오게 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인솔교사인 만큼 금강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여행 전 여러 전적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왜 금강산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금강산은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등등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에 간단히 정리된 내용들이 있었지만 자세하지 않아 일일이 찾아보며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암기했던 금강산의 별칭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정비석의 '산정무한'이란 금강산 기행문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교과서에는 금강산이 여러 번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럴 때면 늘 암기해야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계절에 따른 금강산의 별칭이었죠.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 열심히 외워야 했습니다.

금강산 기행이 결정되고 나서 금강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계절에 따라 어떻게 부르는지 묻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생각이 났지만 계절과 잘 짝지어지지 않았던 것이죠. 무조건 암기했던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암기의 효력은 오래 가지 않지요. 특히 여러 개를 짝짓는 경우에는 틀리기 십상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암기를 통한 공부 방법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국사교사로서 흔히 알려진 '사회, 국사는 암기과목'이라는 말에는 더욱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공부를 하는 주요 목적은 지식의 습득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강의하고 학생들은 그것을 어떻게든 암기하고 머릿속에 집어넣어 자기 것으로, 자기의 지식으로 만들려고 했었죠.

하지만 요즈음의 교육 목표, 공부를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는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지식 습득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것이 요구됩니다. 공부의 목표가 예전과 달라진 거죠. 그러니 예전의 방법으로, 즉 암기 위주의 방법으로 공부해서는 요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 역사, 문화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수학이나 과학의 공식, 또는 영어 단어처럼 기초적인 사실은 암기해 두어야 하겠죠. 이를 바탕으로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암기능력이 아니라 논리적 상상력입니다. 개인적으로 암기과목이란 말을 들을 때면 늘 하는 말입니다.

금강산의 다른 이름조차 잘 연결해 내지 못한 아둔한 기억력을 변호하다 보니 이렇게 주절주절 길어졌습니다. 분명한 것은 기억력은 누구나 한계가 있으며, 이해하고 생각하며 얻은 지식이 암기한 것보다는 오래 간다는 것입니다.

접하기 쉬운 고문헌들

저의 궁금증은 금강산 각각의 이름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왜 그렇게 불렸으며, 또 오늘날 주로 사용하는 금강산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자주 쓰이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금강산에 대한 책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여러 책이 있었지만 우연히 손에 잡게 된 것이 1984년 북한에서 출판한 <금강산의 력사와 문화>라는 책이었습니다.

▲ 북한에서 간행된 <금강산의 력사와 문화>의 속표지
ⓒ 백유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만한 손영종, 허종호 등 북한 유명한 역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펴낸 책이었습니다. 금강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인 만큼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옛 문헌을 통해 금강산의 유래와 이름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요즈음에는 옛 문헌을 찾아보기가 쉬운 편입니다. 많은 대학이 전자도서관을 운영하고 학생들에게는 아이디를 주어 이용하게 합니다. 전자도서관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삼국사기> <삼국유사> <증보문헌비고> <고려사> 등 대부분의 자료가 번역되어 본문 검색이 가능합니다.

예전 같으면 <실록>을 찾아보는 일은 불가능했지요. 번역도 되어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색인이 되어 있지 않으니 일일이 뒤져가며 찾아야 하는 등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이용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으로 쉽게 해결이 되니 연구 환경이 많이 좋아졌음을 느낍니다. 저 같은 아마추어도 옛 문헌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죠.

▲ 전자도서관의 <조선왕조실록> 검색 화면
ⓒ 백유선
진짜 금강산, 가짜 금강산

먼저 정사인 <삼국사기>에서 금강산으로 검색을 했습니다.

'검색결과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삼국유사>, 모두 네 건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는 금강산은 모두 지금의 금강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경주의 금강산과 영천의 금강산이 각각 2건씩이었습니다.

경주의 금강산은 신라 법흥왕 때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의 기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차돈의 목을 치자 목이 금강산에 날아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자추사'라는 절을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자추사는 '백률사'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조그마한 절이지만 이차돈 순교를 기념해서 세운 절이어서인지, 근래에는 이 절의 종에 이차돈의 순교 모습을 새겨놓고 있습니다.

▲ 경주 백률사 전경. 경주의 '금강산'에 있는 절입니다.
ⓒ 백유선

▲ 백률사의 종에 새겨진 이차돈의 순교 모습
ⓒ 백유선
영천의 금강산에 대해서는 "신라에 네 곳의 신령한 땅이 있어 나라의 큰일을 의논할 때는 대신들은 그곳에 모여서 모의하면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졌다"라고 하여 신라의 신령한 네 땅 중의 하나로 영천의 금강산이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모두 지금의 금강산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삼국시대까지는 지금의 금강산의 이름이 금강산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초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기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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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콘서트>,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공저), <우리 불교 문화유산 읽기>, <한번만 읽으면 확 잡히는 국사>(상,하)의 저자로 중학교 국사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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