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해방 60주년·원폭투하 60주년, 그리고 한일협정 체결 40주년을 맞아 지난 2004년에 이어 <대구경북 오마이뉴스>는 지난달 24일부터 2월 1일까지 8박 9일동안 일본 히로시마를 현지취재했습니다. <대구경북 오마이뉴스>는 이번 히로시마 현지취재 결과를 분야별로 상(한국인 원폭피해자)-중(우경화 맞는 일본 시민사회)-하(민족학교)로 3회에 걸쳐 보도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 히로시마 평화공원 안 한복판에서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다. 점점 강해지는 일본의 우경화 기류 속에서 대안은 무엇인가.
ⓒ 오마이뉴스 이승욱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경화를 막을 수 있는 내부적인 동력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한 재일동포 청년운동가는 일본 우경화 현상과 우려를 이와 같이 설명했다. 실제 한 사회의 우-좌경화든 보수-진보의 흐름은 양존하면서도 견제를 이뤄나간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우경화 현상의 실질적 위험성은 우경화를 조절할 제어수단이 미약하다는 점에서 더욱 확대된다. 기자가 만난 재일동포 청년운동가의 '근심'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관련
기사
[원폭 60주년 특집-상] 한일 양국의 '무시와 방치'...밀항서 법정투쟁까지

일본 시민사회의 성장 역사

일본 시민사회는 1970년대 초·중반기를 거치면서 급속도로 확산된다. 급진적인 좌파운동이 '좌절'되면서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로 이어진 것이다. 초기 일본의 시민사회단체는 고도 산업화로 인한 폐해에서 비롯됐다. 공해 등 환경문제가 시민사회의 주요한 주제로 떠올랐다.

▲ 지난 28일 일본 히로시마 원폭공원 원폭돔(겐바쿠돔) 앞에서 한 단체가 "이라크 파병 반대"를 주장하며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당시 시민사회의 발전상을 기억하는 반전단체 '피스링크' 대표인 유아사 이치로(湯淺 一郞)씨. 그는 "당시는 일본 시민사회가 환경운동을 중심으로 대중 속에 뿌리내리는 시기였다"라면서 "실제 마을 단위별로 공해반대 단체가 생겨날 정도로 활성화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환경운동을 중심으로 시작한 일본 시민사회의 '붐'은 지난 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기점으로 대중적인 반핵운동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지난 87년 일본 수도인 도쿄(東京)에서 2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반핵을 모토로 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시민사회단체는 비정치적이거나 소규모로 산개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그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일본 내에서도 반핵·반전운동의 중심지인 히로시마현의 경우 평화단체만 200여개가 산재해 있다. 환경단체를 비롯해 소비자운동단체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상상 이상인 셈이다.

소규모·비상근 체제 중심... 전국적인 연대 부족

미국의 원폭투하 책임 묻는 민간법정 열린다
"일본의 침략전쟁 사죄와 함께 풀어갈 것"

일본 히로시마 시민사회단체는 패전 60주년·원폭 6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오는 12월 10일부터 11일까지 이틀동안 개최될 예정인 '원폭투하 민간법정'이다.

원폭투하 민간법정은 일본과 한국 등 원폭투하로 인한 희생자가 발생한 국가의 피폭자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원폭투하에 대한 책임을 묻는 상징적 의미의 행사다.

일면 이번 행사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당한 한국과 같은 국가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원폭투하를 일제 침략의 '응보적' 성격으로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

히로시마 9조회 쿠노 나루아키씨는 "원폭투하는 전쟁책임자 책임과 일반 민중의 피해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면서 "히로시마의 대다수 민중들은 전쟁 피해자로서의 민중이라는 점을 호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간법정에 앞서 일본 정부와 천황에 대해 침략전쟁에 대한 책임을 물는 사업을 벌일 것"이라면서 "침략전쟁을 겪은 한국과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에 대한 사죄 등도 민간법정과 함께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이승욱
일본 시민단체는 상근자 조직을 중심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시민단체 간사나 간부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직업을 두고 그외 시간을 단체활동에 투자한다. 별도의 사무실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조직적 특성은 시민들과 밀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탄핵반대 집회나 여중생 촛불시위처럼 대규모 대중과 호흡하는 연대집회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 영향력은 가시적이거나 대중적인 여론화로 이어지지는 못하다.

평화단체인 '히로시마 9조회'(九條會)에서 활동하고 있는 쿠노 나루아키(44·久野成章)씨는 "지난 80년대까지 한국의 민주노총과 유사한 전국적인 망을 가진 노동조합 조직이 있어 전국적인 연대집회와 활동이 가능했다"면서 "하지만 이 조직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지역 단위별로 로컬운동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됐다"고 설명했다.

전국적인 연대체의 부재는 최근들어 언론의 힘을 얻고 있는 극우단체에 비해 조직적인 활동에서 뒤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쿠노씨는 "전국적인 차원에서 연대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면서 "현재 전국적인 행동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들어 일본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위기감이 상승하고 있다.히로시마 평화교육연구소 코바야카와 켄(50·小早川 健) 사무국장은 "개인적으로 우경화 현상을 상당히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불온시되던 자위대 해외 파견과 헌법개정 움직임 등도 오히려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강해지는 우익을 실감한다"... 우경화 막을 일본 시민사회의 과제

▲ 히로시마 구조회 쿠노 나루아키씨. 그는 "일본의 우익들이 조직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특히 일본의 우익화를 이끌어가는 극우단체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시민사회의 우려이기도 하다. 쿠노씨는 "아직도 반전과 평화를 추구하는 그룹이 우익보다 힘이 강하다"면서도 "하지만 일본 우익들의 활동도 점점 조직적인 측면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쿠노씨는 또 "최근들어 일본 우익들이 매스미디어(대중매체)를 이용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일본 사회내에서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면서 "특히 보수적인 정치권과 연계해 자신들의 주장을 정책적으로 반영하는 전술이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일본 우익진영의 공세속에서 시민사회의 내부의 대응은 어려움에 처해있다. 대다수 일본의 시민들 사이에서도 점차 개인주의화·정치적 무관심화가 확산되는 풍토 속에서 일본 시민사회는 '노령화'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여전히 일본 시민사회를 이끌고 있는 핵심 주축은 60~70년대 운동 세대들이다. 30년전부터 시민사회를 탄생시켰던 세대들을 대체할 새로운 세대들의 '수혈'은 일본 시민사회가 넘어야 할 과제이면서 일본의 우경화를 막을 수 있는 관건인 것.

내부의 노령화 현상과 일본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 그리고 우익의 공세 속에서 일본의 우경화는 점점 '세련되고' 치밀해지고 있다. 이러한 우경화 기운은 최근 북·일관계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강경 대응논리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한·일 공동 역사 부교재 사업... "우경화 저지 위한 시민사회 협력 필요"

▲ 히로시마의 대표적인 평화단체인 피스링크이 지난해 1월 일본 해상자위대의 파병을 반대하며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 피스링크
이런 가운데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과 전교조 대구지부가 함께 제작한 한·일 역사교과서 공동 부교재 출간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일 양 단체가 일본 우익의 역사교과서 채택운동에 맞서기 위해 추진한 한·일 역사교과서 부교재는 오는 3월 중순 한국어와 일본어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 부교재는 150쪽 분량으로 출간되는 이 부교재에는 임진왜란을 국가주의적인 관점이 아닌 양국 민중의 피폐한 삶을 부각하고 임진왜란을 '조선침략' 전쟁으로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평화를 추구하는 양국의 시민사회의 시각을 동시에 담아낸 이 부교재는 일본의 우익화 흐름을 견제하는 한편 양국의 갈등관계를 해소하는 '나침반'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히로시마평화교육연구소에서 국제교류 사업을 맡고 있는 이승훈(38)씨는 "일본 내부에서 우익 정치인-우익단체-언론이 상호유기적으로 일상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면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의 협력과 연대는 절실하다"고 말했다.

"평화의 도시 히로시마에 군사기지 용납 못해"
[히로시마 시민단체 소개] 히로시마 9조회 & 피스링크

▲ 지난달 29일 일본 히로시마 YWCA사무실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회의를 갖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일본 히로시마는 평화도시라는 상징성 만큼 반전과 평화를 표방하는 NGO단체들도 다양하다. 그중 히로시마 9조회(九條會)와 피스링크는 대표적인 평화단체다.

◎히로시마 9조회 : 히로시마 9조회는 일본 '평화헌법 9조'의 정신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지난 92년 2월 결성된 단체이다. 일본 평화헌법 9조는 지난 47년 일본이 전쟁 참회의 뜻으로 공포한 헌법으로 ▲평화 희구 ▲국제분쟁 해결 위한 전쟁과 무력 영구 포기 ▲군대유지 금지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히로시마 9조회는 평화헌법 9조와 관련한 대중 강연을 갖는 한편 일간지 의견광고를 통해 시민들에게 헌법 9조의 정신을 설득하는 작업을 벌인다.

히로시마 9조회 후지이 스미꼬(54) 대표는 "과거 전쟁 책임이 있는 일본에게는 평화헌법 9조는 가장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정신"이라면서 "시간이 갈수록 이 정신이 퇴색되고 있고 유사헌법 제정 등 평화헌법 9조가 해체될 위기에 있다"고 우려했다.

히로시마 9조회처럼 각 지역별로 9조회 정신을 살리자는 단체들이 결성돼 있다. 현재 회원은 외국인을 포함해 전국에서 5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히로시마 9조회는 매년 6차례 정기회의를 갖는다.

◎피스링크 : 히로시마 9조회가 대중 강연을 중심으로 '조용한' 활동을 벌이는 반면 피스링크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단체라고 소개할 수 있다. '평화선단'으로 더 알려진 피스링크는 지난 89년 2월 결성된 단체로 히로시마·쿠레·이와쿠니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평화단체이다.

피스링크의 탄생은 단체가 자리한 입지와도 관련성이 있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과거 쿠레와 이와쿠니 지역은 일본 내에서도 해군 등 군사기지라 자리잡고 있었던 지역이다. 미군도 역시 이 지역에 주둔해 있었고 베트남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핵무기도 다량 보관돼 있었고 지난 걸프전 당시에도 이곳을 이용했다.

피스링크 유아사 이치로 대표는 "히로시마가 평화의 도시를 상징하는 곳이면서도 부근 30km부근으로 군사기지가 존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면서 "이러한 지역민들의 의지를 모아 반전운동을 벌이는 취지로 결성됐다"고 말했다.

일상적으로 피스링크는 군사기지 주변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례 등을 고발하는 활동을 벌이고 이슈가 발생했을 때는 직접적인 행동에도 나선다. 지난해 1월 일본 해상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당시 해상에서 이를 저지한 것도 피스링크였다. 현재 피스링크 회원은 쿠레와 이와쿠니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300명 정도이다. / 이승욱

덧붙이는 글 | *원폭피해자 지원 및 구술증언 사업 <평화길라잡이> 참여하기→대구KYC

*<대구경북 오마이뉴스> 바로가기→dg.ohmynews.com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