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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명사] : 소의 머리, 발, 무릎도가니, 내장 따위를 푹 고아서 만든 국, 밥을 말고 소금, 파, 후춧가루를 넣어서 먹음.

국어사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설렁탕'에 대한 설명이다. 주로 소의 뼈를 오랜 시간 고아서 우러난 국물에 소고기와 국수를 삶아 넣어 먹는 설렁탕은 그 맛이 담백하고 구수한 우리의 고유한 음식 중 하나다. 이 설렁탕의 유래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이야기의 뿌리는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의 '선농단' 유적지에서 찾을 수 있다.

▲ 사적 제436호 선농단 -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본 모습
ⓒ 이인우
선농단(先農壇)은 조선 태조부터 역대국왕들이 농사의 신인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주신(主神)으로 그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현재 사적 제436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다. 예조에서 경칩이 지나고 해일(亥日)에 제삿날을 정하면 임금은 3일전부터 재계하고 당일 새벽에 선농단에서 여러 중신과 백성들이 참가한 가운데 농사와 곡식의 신들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제사가 끝나고 날이 밝으면 임금이 친히 쟁기로 밭을 가는 시범을 보였는데 이를 '친경례'라고 한다. 왕이 몸소 농사를 실천함으로써 중신들과 만백성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일깨우려 했던 의식이었다.

그리고 모든 행사가 끝나면 왕은 중신 및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참가자들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해 소를 잡아 국말이밥을 내렸는데 이를 '선농탕'이라 했으며 훗날 닿소리 이어 바뀜으로 설롱탕으로 읽게 됐고 오늘날에 와서는 설렁탕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 같은 조선왕조의 선농제향과 친경례는 1909년까지 계속됐으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사라지게 됐으며 일제는 이곳에 '청량대'라는 공원을 조성하여 선조들의 얼이 담긴 문화유산을 말살하고자 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부터 선농단 주변의 주민들이 선농단친목회를 조직하고 선조들의 의식을 재현함으로써 다시 선농제향의 맥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농림부와 동대문구청, 동대문문화원 주관으로 매년 4월 20일 선농제향을 재현하고 있다.

▲ 선농단 전경 - 북서방향에서 바라본 모습
ⓒ 이인우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을 나오면 선농단을 알리는 안내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안내표지판을 따라 느티나무가 양옆으로 심어진 선농단길을 300여 미터 올라가면 우측에 위치한 선농단을 만날 수 있다.

위치상으로 보면 선농단은 일반 주거지역보다 다소 높은 곳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당시만 해도 선농단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멀리 청량리와 종로 방향까지 훤하게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아쉽게도 지금은 주변의 높은 빌딩 사이에 가려져 안내 표지판을 보고서야 찾을 수 있다.

선농단은 생각만큼 규모가 있거나 또는 화려한 장식이 있는 제단의 모습은 아니다. 주변에 심어진 측백나무와 함께 잘 다듬어진 석축이 그저 네모 모양으로 평평하게 다져져 있으며 그 위에 또 한 층의 제단이 북쪽으로 기울어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전부다. 물론 조선시대 선농제향이 치러졌을 때의 구조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보존되고 있는 제단의 모습은 매우 단조로울 뿐이다. 제단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주변에는 나지막한 벽을 축조해놓았는데 사방이 트여진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구조임을 암시하게 한다.

▲ 선농단의 서쪽에서 자라고 있는 천연기념물 240호 선농단 향나무
ⓒ 이인우
선농단의 서쪽에는 조선조 초기 선농단이 축조될 당시에 심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현재 천연기념물 240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이 향나무는 높이 약 10여 미터 둘레 약 2미터로 휘지 않고 곧게 자란 것이 특징으로 '선농제향'이 끝나면 나무 주변에 막걸리를 부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향나무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문인석상
ⓒ 이인우
향나무 앞에는 문인석 하나가 향나무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페인트 칠이 된 흔적과 함께 머리의 모자 부분이 떨어져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보였으나 그 형태는 매우 선명했다. 얼굴에는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댄 흔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문인상의 눈, 코, 입을 직접 만져보고자 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선농단은 조선시대 농업의 소중함을 친히 알리기 위해 왕이 직접 제를 올리고 한 해의 풍년을 기원했던 역사적 문화 유적지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롯된 우리 고유의 음식인 '설렁탕'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점심때가 다 되어 선농단을 뒤로하고 다시 큰 길로 나오면서 주변의 상점들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설렁탕을 파는 식당은 찾을 수 없었다. 선농단길이 주택가이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스쳐지나가는 것은 왜였을까?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길>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하차 후 1번 출구로 나오면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느티나무 공원을 지나 안암오거리 방향으로 300미터정도 올라가다가 종암초등학교 바로 전 우측에 선농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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