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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대 관권 부정선거 실상을 폭로한 한준수 전 연기군수
ⓒ 심규상

"정부가 총선에서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광범위한 금권 관권선거를 지시했다."

92년 8월 31일, 당시 충남 연기군수를 지낸 한준수씨의 일성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이 한마디로 당시 노태우 정부의 14대(3월 24일) 총선이 사상 유례 없는 공명선거라는 자화자찬은 모두 거짓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당시 한씨가 공개한 증거자료에는 "직을 걸고 여당을 당선시켜라"는 내무부 장관의 전화 내용을 비롯 정부와 여당, 그리고 지방 공무원 조직의 관권 타락선거 실태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그로부터 13년이 흘렀지만 한 전 군수(74. 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의 열정은 양심선언 당시와 조금도 달라보이지 않았다. 한씨는 지난 2일 자택에서 가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말끔히 씻어내기 위해서는 양심 있는 사람들의 폭로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씨는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 때에도 몸담고 있던 야당 또한 법정 선거비용을 초과해 지출하고 수십억원에 이르는 선거사무원 비용을 다른 곳으로 전용했다"며 "부패방지위원회에 제보했지만 정당 내부 일이란 이유로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준수 전 연기군수는 누구?

한준수 전 연기군수는 지난 59년 지방공무원 보통고시에 합격해 이듬해 공직에 첫발을 디뎠다. 73년 당시 충남도지사의 부당한 청탁을 거절, 직위해제 됐다가 행정소송으로 복직되는 등 일찍부터 고집스럽고 강직한 공무원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이 때문에 다른 동기보다 승진이 늦어 89년 공직 입문 30년만에 서기관에 승진, 청양군수로 발령받았다. 91년 연기군수로 발령받았고 재직 중인 92년 14대 총선을 치렀다.

당시 청와대 총무수석을 지낸 여당 후보가 출마, 관권부정선거가 극심하자 "나 한사람 희생으로 관권선거 역사에 종지부를 찍겠다"며 양심선언했다. 또 양심선언 여부를 수차례 가족회의를 통해 만장일치로 결정한 뒷얘기도 화제를 낳았다.

이후 국가권력이 여당 후보의 낙선 책임을 물어 사표제출을 강요하자 불응했고 이에 도 경찰청이 비리를 캐려 보름간 뒷조사를 했지만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해 역으로 청백리 목민관임을 방증시키기도 했다.

지난 95년 상처한 한 전 군수는 기무사 사찰자료를 폭로했던 또다른 '양심선언자' 윤석양 이병의 어머니 민인숙(67)씨와 재혼했다.
한씨는 "양심선언 후 징역형에 대한 형사적 사면복권은 이뤄졌지만 파면이라는 행정적 불명예와 수모는 여전하다"며 명예회복을 요구했다. 당시 한 전 군수는 양심선언 대가로 옥고를 겪고 공무원이 정치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징계파면을 받았다. 이후 95년 8월 사면 복권됐지만, 행정적 사면복원이 이뤄지지 않아 받아야 할 연금의 절반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씨는 "양심선언자들이 하나같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며 "내부 고발자들이 떳떳하게 자신의 명예를 되찾게 될 때 공익제보자가 늘어나고 사회 전체가 투명해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씨는 지난해 12월 말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행정자치부에 통보한 자신에 대한 '복직권고' 결정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한씨는 "공교롭게도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 때 공직을 시작했다"며 "직접 겪은 관권 부정선거 실상 등 공직경험을 책으로 남길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한씨와의 인터뷰 요지.

- 연기군수로 있던 1992년 양심선언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당시 선언내용은 무엇이었나.
"92년 3월 24일 열린 14대 총선이 광범위한 금권 관권선거였다는 것을 폭로했다. 당시 여당(민자당) 후보 당선을 위해 내무부 장관과 충남도지사의 지시로 군수에서 이장까지 공무원 조직이 총동원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입증하는 유권자 개인별 성향 파악 명부, 돈 매수 실태, 공무원 선거배치표, 대선 대책보고서, 선거용으로 살포된 수표 등 증거자료를 함께 공개했다."

- 그때 양심선언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나.
"우리나라 헌정 50년사는 부정선거 역사였다. 60년 3.15 부정선거와 92년 3.24 총선은 그 맥을 같이 한다. 3.15 부정선거가 자유당 독재정권의 종말을 고하게 했다면 3.24 총선은 나의 양심선언으로 관권선거비리를 근절시키는 계기가 됐다.

실제 양심선언 직후 노태우 대통령이 민자당을 탈당하고 중립을 선언했다. 또 현승종 중립내각이 출범했다. 양심선언이 없었다면 관권 부정선거는 한동안 계속됐을 것이고,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정부가 수립되는 결실 또한 없었을 것이다."

- 역대 선거에 대한 평가는?
"공무원 생활을 60년 3.15 부정선거 때 시작했다. 공직생활의 끝은 92년 3.24 관권부정선거였다. 3.15 부정선거 당시 충남 청양에서 선거사무를 맡았다. 거족적인 부정선거가 이뤄졌다. 4.19 의거 후 선거는 그런 대로 깨끗했다. 5.16 이후는 충남도청에서 일할 때인데, 당시 대전 태평동에 있던 조폐공사에서 돈을 찍어다 트럭에다 싣고 군 단위 등에 마구 뿌렸다. 이같은 부정선거는 정도 차이만 있을 뿐 계속됐다. 92년 당시 양심선언은 사회적으로 어떤 큰 계기가 있기 전에는 부정선거를 근절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했다."

- 부정선거가 완전히 근절됐다고 보나.
"크게 나아졌지만 국민들 속에 '부정의식'은 남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95년 사면복권 후 민주당에 입당해 청양홍성 지역 지구당 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정당 속을 들여다보니 기존 타성에 젖어 표 얻는 데만 전념하고 있더라.

98년 대선 때는 중앙당에서 지구당으로 5000만원을 내려보냈다. 이중 2500만원은 선거사무원 수당인데, 중앙당 방침은 선거사무원 주지 말고 농민단체 등 당 특별위원회에 주라는 거다. 항의했더니 선거 끝나면 별도로 선거사무원 수당을 준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도 줄 생각을 하지 않아 중앙당 당무위원회에 가서 '이런게 부정이다'고 따졌다. 그때도 말로는 준다고 하더니 뒤로는 나처럼 따지고 드는 지구당 위원장을 갈아치웠다. 전국적으로 추산해보니 이런 돈만 60억원에 달했다. 이 일로 당시 국민회의를 그만 두고 부패방지위에 제보했다. 김대중 정부 때다. 부방위에서 불러 나가 보니 국장급 직원이 나와 '정당 내부 일이라 우리 소관이 아니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 양심선언 직후 많은 고초를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다. 국가권력으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문제는 고통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기관원들이 집사람에게 '가족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했고 가족들을 감시, 연금, 미행했다. 경찰은 민주당사를 강제난입해 국회의원을 폭행했다. 검찰은 나를 강제 구인해 밤샘조사를 벌였고 교도소 독방에 가뒀다.

첫 재판 때는 집사람이 법정 앞에서 백골단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결국 집사람은 이때 받은 충격으로 심장병을 얻었고 병세가 악화돼 결국 1995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게다가 정년을 사흘 앞두고 징계 파면처분이 내려졌다. 여기에 실형까지 선고받아 연금마저 반액만 나와 노후생계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양심선언 이후 국가권력으로부터 혹독한 박해받아

ⓒ 심규상
- 형사판결은 어떻게 나왔나.
"95년 대법원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형을 확정했다. 반면 나에게 부정선거를 지시한 당시 충남도지사는 징역 8월, 부정선거를 직접 저지른 민자당 후보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형을 받았다. 부정을 저지른 사람보다는 양심선언자에게 가혹한 법집행을 한 것이다."

- 사면복권된 것으로 아는데.
"형이 확정되던 95년 8월 형사 건에 대해 사면복권 됐다. 생각해보면 당시 여당 선거운동을 하던 여당 국회의원 후보와 충남도지사를 복권해주면서 나만 빼놓을 수 없어 끼워넣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무원 정치개입'을 이유로 한 징계파면은 그대로 남아 공무원 퇴직수당과 연금을 각각 절반만 받아왔다."

- 역대 정부에 행정적 사면 요청을 하진 않았나.
"형사적 사면복권이 되면서 법무부 장관과 행자부 장관에게 각각 파면취소 요청을 했다. 하지만 못해준다고만 했다. 한마디로 덮으려고만 하더라. 의지만 있다면 형사적 사면복권을 근거로 파면처분을 취소하고 정년퇴직한 것으로 바로잡을 수 있었다."

- 지난해 12월 말 민주화보상심위위에서 복직권고 결정을 내렸는데.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서 지난해 12월 27일자로 파면 당시 근무했던 기관장에게 복직을 권고하는 결정이 났다. 또 나처럼 복직희망자들이 정년초과로 인해 복직이 어려울 경우에는 연금 등에서 불이익이 없도록 상응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심의위 결정이 권고일 뿐 강제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또다시 묵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해당기관에 오는 3월 말까지 처리결과를 처리하도록 하고 있는 만큼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양심선언자 등이 모여 공익제보자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동안 '양심선언자 모임'으로 활동해오다 지난해 말 '공익제보자 모임'으로 명칭과 성격을 변경했다. 공익차원의 제보를 하려는 사람이나 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20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내가 고문을 맡고 회장은 이문옥 전 감사관, 군 부재자 부정선거를 폭로한 이지문 전 중위가 부회장을 맡고 있다."

- 바람이 있다면?
"대다수 양심선언자들이 전력을 이유로 취업조차 못하는 등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이같은 실상을 보고 누가 부정을 바로잡기 위해 나서겠는가. 사회내 부정의식을 씻어내려면 양심적인 사람들이 자꾸 폭로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내부고발자들이 떳떳하게 자신의 명예를 되찾게 하고 임용권자가 공익제보자를 적극 보호해야 한다."

-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판결로 연기주민들의 상처가 크다. 전 연기군수로서 어떻게 보는가.
"수도권 과밀과 집중으로 인한 폐해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정수도를 이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이전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위치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정부가 정한 연기˙공주 땅은 문제가 있다. 오히려 산수로 보면 논산 신도안 쪽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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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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