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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김규환 기자가 쓴 <민주당은 '홍어'가 만만해 보이나> 기사에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이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다음은 유종필 대변인의 반론 전문입니다... 편집자 주

필자는 얼마 전 국회 기자실에서 민주당의 기자실 개소식을 공지하면서 "민주당에 홍어가 돌아온다"고 말했다. "홍어는 당의 상징어족이고, 이는 관습당헌"이라고 덧붙이고 관련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나의 익살에 기자들은 까르르 웃음소리로 반응했고, 나도 덩달아서 웃었다.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몇몇 언론이 이를 말랑말랑한 터치로 보도했고, 당 안팎에서 제법 이러저러한 반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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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필 대변인 "홍어는 민주당의 상징어족"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홍어동호회의 어떤 분이 정색을 하고, 비분강개하는 필치로, 필자와 민주당을 향하여 칼춤 비슷한 것을 추었다. 이 분의 긴 글을 요약하자면, 민주당이 홍어를 만만하게 보아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데, 그러지 말라는 주장인 듯싶다.

이에 대한 나의 주장을 두괄식으로 전개하는 게 좋겠다. 우리는 홍어를 매개로 민주당의 부활을 알리고 당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싶었다. 다시 말해서 홍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의도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도가 없었다면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조용히 홍어를 내놓았을 거니까.

내가 홍어의 정치적 이용을 '자백'했으니까 이제 논점은 분명해졌다. 홍어를 정치적으로 이용(악용 또는 활용이라는 가치판단적 용어를 쓰지 않겠다)하는 것이 나쁜가 아닌가로 모아진다. 나는 홍어든 뭐든 다른 사람에게 별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상업적이든 군사적이든, 또는 기타 등등 뭐든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 혹여 '신성한 홍어를 어쩌구...' 한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덧붙이자면 나는 평소 한국정치에 유머와 운치가 부족한 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나 스스로는 그런 흥취를 가미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는 점을 감안해주기 바란다.

말이 나온 김에 홍어파티를 기획하게 된 동기를 소개하고 싶다. 마포당사로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당원 한 분이 가져온 것이라며 당의 기자실로 홍어회라는 것이 배달되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여럿이 달려들어 그 벌건 살점을 한 입씩 집어넣었다. 그런데 톡 쏘는 맛이 제로였다. 가자미로 판명 났다. 우리는 순간 실망했다. 그 때 문득 홍어회의 추억이 떠올랐다.

나는 홍어를 제법 좋아하는 축이라서 간간이 맛을 봐왔지만 당에서는 홍어가 사라진지 1년 가까이 된 것 같았다. 워낙 당세가 기울어 홍어 생각 자체도 못했을 터이지만, 홍어잔치를 할 일도, 하고 싶어도 벌일 장소도 마땅치 않았던 것이 민주당의 처지였다. 본의 아니게 궁색을 떨고 말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이것이 홍어파티의 단초이다.

그 때 나는 '톡 쏘는 맛'이 제로인 가자미를 곱씹으면서 총선 이후 민주당의 모습이 홍어에서 가자미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다소 비약을 했다. 김 빠진 맥주, 레몬 조각이 생략된 진토닉, 빨간 체리가 실종된 칵테일,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고양이 등등...

그러던 차에 최근 입각설과 전당대회를 계기로 민주당이 총선 이후 처음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몇몇 기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중에 한 기자가 기자실 개소식을 제안해서 즉석에서 '민주당에 홍어가 돌아왔다'라는 헤드라인까지 결정되었던 것이다.

사실 홍어는 옛날에는 서민들의 먹거리였다고 한다. 서민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우리 민주당도 궂은 일 좋은 일에 늘 홍어파티를 해왔다. 당의 애환이 배어있다. 대선 패배와 대선 승리의 뒤끝에도 홍어가 있었다. 기자들도 민주당에 몇 달만 출입하면 홍어맛을 보게 되는 것이 민주당 출입기자만의 특권이라면 특권이었다. 하루 이틀 전이나 몇 시간 전에 기자실의 홍어파티가 예고되면 많은 기자들이 가슴 설레면서 기다렸다가 나름의 품평을 늘어놓았던 것도 민주당 기자실만의 색깔 있고 정감 넘치는 풍경이었다. 이런 행사를 이번에 부활시키려는 것이다.

기호식품 가운데 커피와 초코음료는 대조적이다. 초코가 정신을 어둡게 하는 대신 육체를 살찌게 하는 것과 정반대로 커피는 육체를 갉아서 정신을 풍부하게 한다. 18~19세기에 유럽에서는 일정한 지성을 공인받기 전에는 커피점의 출입을 제한당했다고 한다. 지성인을 자처하는 사람은 남 보는 데서 초코를 입에 대지 않았다. 예술가들이 커피를 친구 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는 홍어회를 씹어 먹을 때면 커피 마시는 기분이 들곤 한다. 영양학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분학적으로는 톡 쏘는 맛이 흡사 커피향과도 같이 정신을 일깨우는 느낌을 준다. 홍어와 돼지고기, 익은 김치를 삼합이라 하여 함께 먹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홍어는 정신을 각성시키고 돼지고기는 육체를 살찌우고 김치는 상반되는 둘을 아우르는 역할이 아닐까. 영양학 문외한의 무책임한 분석이다. 전혀 다른 것들의 절묘한 조화요, 좀 비약하면 화이부동(和而不同: 조화롭되 같지 않음)의 경지가 바로 삼합이 아닐까.

내친 김에 홍어에 얽힌 우리 집안의 에피스드 한 꼭지.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인 우리 아버지가 1970년대 중반 전라도 고향을 떠나 서울 변두리에서 칩거하실 때 늘 아쉬운 것 중 하나가 홍어맛을 못 보는 것이었고, 이를 전해들은 광주의 큰딸이 아버지 생신인가 뭔가 하는 날에 큼직한 홍어 한 마리를 사서 가방에 넣고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는데, 내릴 때 보니 홍어 가방이 오간 데 없더라는 것. 아버지께 이 사실을 고하자니 애당초 없던 일만 못하고 안하자니 큰딸의 효성을 증명할 길이 막막하여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로 아버지 집에 당도하게 되었는데, 아버지를 뵙자마자 자기도 몰래 눈물이 펑펑 쏟아져 부녀간에 눈물의 상봉을 연출했더란다.

그 당시는 부녀간의 오랜만의 상봉은 으레 눈물을 찔끔이라도 짜는 게 상례인 시대였는데, 아버지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눈물바다에는 문제의 홍어가 개입되어 있었다. 잃어버린 홍어가 얼마나 톡 쏘고 쫄깃쫄깃 하였을까. 급기야 아버지는 정색을 하고 그 귀한 것을 남 줘버린 딸의 불찰을 꾸짖었고, 이에 딸은 홍어가 딸보다 더 귀하냐는 투의 푸념을 했더라는 우리 집안의 ‘전설 따라 30센티’이다. 홍어가 뭐길래...

70년대 중반까지는 영등포시장에도 홍어가 없었다고 하니 아마 서울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 뒤 80년대 초반 아버지가 별세했을 때 나는 영등포시장에 나가 최고로 큰 홍어를 두 마리 사와서 조문객들을 접대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
ⓒ 민주당
홍어가 바다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은 문자 그대로 유영(游泳: 물속에서 헤엄치며 노니는 것)의 전형으로서 어느 잘 생긴 고기보다 카리스마 넘치게 보인다. 양반 축에는 끼지 못해도 당당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꽤나 매력적이다. 녹두장군을 연상시킨다.

마지막으로, 홍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한마디. 민주당은 아무리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으며, 아무리 궁해도 가자미 되기를 거부하고 당당하고 톡 쏘는 홍어가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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