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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가족에게 '충성'으로 인사하는 입영 장병들.
ⓒ 윤형권
▲ '인분사건'이후 첫 훈련병 입소를 맞은 24일 논산훈련소.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윤형권

"사람으로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정말 말도 안 나와요."
"내 자식도 그런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24일 오후 1시 논산 훈련소. 인분 사건 이후 첫 장병들의 입소가 시작됐다. 부모 또는 친구, 애인과 함께 입영소 정문에 들어서는 장병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상기된 표정이다.

귀하게 길러온 자식을 군에 보내는 부모들의 심정이야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겠지만, 수원에서 왔다는 원모씨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안 보내고 싶죠. 정말 보내고 싶지 않아요. 특히 인분을 먹였다는 뉴스 보고는 밤잠을 못 잤어요. 너무 억울하고, 내 자식도 거기로 가는데 그런 일 또 생기면 어쩌나 하고…."

원씨는 외아들의 짧은 머리를 자꾸 쓰다듬으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이제 몇 분 후면 한동안 못 볼 아들 얼굴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아들 앞을 떠나지 않았다.

"얼차려 정도는 군대니까 그럴 수 있죠. 저도 다 군대 갔다왔고, 또 이 땅에 군대 갔다온 많은 아빠들은 다 그렇게 생각할겁니다. 그렇지만 인분을 먹이는 것은 말도 안되죠. 세상에 그런…."

순천에서 왔다는 김승곤(51)씨는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군기 확립을 위한 얼차려는 이해가 간다면서도 이번 사건만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펄쩍 뛰었다. 김씨는 "그것은 누가 봐도 잘못된 행동"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성실하게 군 생활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막둥이의 입소를 위해 제주도에서 하루 전에 도착했다는 김호원(52)씨는 조금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걱정은 안합니다. 우리 큰애도 이 훈련소 나왔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시름 놨습니다."

김씨는 이어 "그래도 그 뉴스 처음 볼 때는 정말 걱정됐다"며 "우리애도 저런 일 당하지는 않을까 해서 얼마나 걱정했는데, 조사도 나오고 그랬으니까 또 그러지는 않겠죠?"라고 오히려 기자에게 되물었다.

▲ 헤어지기 아쉬워 꼭 껴안은 연인.
ⓒ 윤형권
남자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경주에서 온 고유정(24)씨도 "군대 간다기에 가서 더 건강해지고 남자답게 변해서 오라고 말해줬다"며 "그런데 군대 내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씨는 이어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그렇게까지 가혹한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아무리 군기강도 좋고 처벌도 좋지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지켜줘야 할 인권과 인격은 있는 것 아니냐"고 분개했다.

이번 사건으로 군에 대한 불신이 더욱 높아진 듯했다. 한 부모는 "어떤 사람들은 몇천만원씩 주고 군대도 빼고 그러던데, 우리 같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훈련소 정문으로 가는 길에 내걸린 '우리 훈련소는 폭언이나 구타를 하지 않습니다'라는 팻말을 보던 한 사람은 "폭언이나 구타를 안 해? 그런 군대가 인분을 먹이나?"라고 비꼬았다.

논산훈련소측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터. 입소 대대장은 인사말을 통해 "최근 비인격적인 가혹행위가 발생하여 자식을 보내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괴롭겠습니까, 정말 같은 부대 장교로서 송구스럽고 부끄럽다"며 말문을 열었다.

대대장은 "지난 주말 인권위원회에서 조사를 벌여 한 개인의 비리로 결론이 지어졌다"며 "그러나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철저히 정신무장하여 새롭게 거듭날 것이며, 경어 사용 및 인격존중과 자율시간도 최대한 보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드디어 가족들과 헤어지는 시간. 연병장에 모인 장병들이 가족들에게 "충성!" 외치며 연병장에서 빠져나가자 이를 지켜보던 가족들은 일제히 눈물을 쏟아냈다. 어느 때 어느 가족이라 할지라도 군에 보내는 마음이야 항상 애틋하겠지만, 최근 '인분 사건'으로 더욱 마음 졸였던 가족들은 발길을 떼지 못해했다.

아들을 보내고 돌아가는 심정을 묻는 질문에 한 어머니는 "이제 어쩌겠어요, 저는 그저 건강하라고 기도해주는 수밖에"라며 "나라가 불렀으니까 나라가 책임져 주겠죠?"라며 애써 태연해했다.

열린우리당, 논산훈련소 방문해 진상조사

▲ 열린우리당 김성곤·박찬석·안영근 의원 등이 24일 '인분사건'이 일어난 논산훈련소를 찾아 조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윤형권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24일 논산훈련소를 방문, 조사활동을 펼쳤다. 이날 방문조사에는 열린우리당 제2정조위원장인 김성곤 의원과 안영근·박찬석 의원, 그리고 보좌진 및 국방전문위원 등 20여명이 함께 참여했다.

오후 3시30분께 논산훈련소에 도착한 조사단은 교육사령관 이상태 중장과 육군훈련소장 허평환 소장, 사건 당시 목격 사병 등이 참석한 가운데 부대현황과 사고내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허 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저희 훈련소는 훈련병들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한 가운데 강한 교육훈련을 통해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기위해 불철주야 노력해 왔다"며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 이번 사건이 일어나 너무나 허탈하고 참담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허 소장은 "이번 사건으로 심려를 끼쳐 국민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사고현황을 보고받은 김성곤 의원은 "보고에 의하면 인분이 묻은 손가락을 입에 넣고 '이게 바로 전우의 피맛'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먹은 훈련병이 있었나"라고 물었다.

이에 허 소장은 "사건이 있은 후 조사해 보니 중대장이 2회에 걸쳐 입에 넣었다 뺐다 하도록 지시했고, 이에 일부는 입에 넣기도 했고 일부는 넣지 않기도 했었다"며 "그러나 삼키게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박찬석 의원은 "중대장의 명령을 거역하면 더 큰 얼차려가 예상됐기 때문에 192명이나 되는 훈련병이 인분을 입에 넣은 것 아니냐"며 "이러한 행위가 관례적으로 이어져 오거나 또는 더 혹독한 가혹행위를 시킨 것은 아닌가"라고 따졌다.

이에 대해 허 소장은 "군기 문란한 행위를 하면 얼차려를 줄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어 팔굽혀펴기 등의 벌을 주기도 한다"며 "그러나 이번 사건은 물론, 이번 보다 더한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안영근 의원은 "사람이 살다보면 물 내리는 것을 잊을 수도 있고 변기가 고장이 날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러한 이유로써 이러한 가혹행위를 했다는 것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며 "더욱이 소대장과 분대장들까지도 이를 보고있었다는 것은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다.

허 소장은 "감찰부에서는 모든 기수의 훈련병 중 30명을 무작위로 차출하여 소원수리를 받고 있으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번 사건과 같은 내용은 없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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