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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나 사진 찍기를 거부하며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장정일이 얼마 전 KBS 'TV, 책을 말하다' 프로그램에 나타났다. 나는 늦은 귀가를 한 탓에 마지막 몇 분 정도만 시청할 수 있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작가 장정일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데에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선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해서 못다 본 그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기질적으로 대중 앞에서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 그를 차라리 지난번 방송처럼 인터뷰 형식으로 출연시켰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는 '인간 장정일'에 대한 이야기와 '작가 장정일'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의 작품 몇 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단상> - '아무 뜻도 없어요' 편에 실린 그의 짧은 산문들은 2005년 1월 출간된 <생각>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TV에 출연했던 여느 작가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무엇이 작가 장정일에게 있었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뭉쳐진 작가를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은 쉬이 멈춰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너무나 증오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자식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작가 장정일의 모습에서 또 한 번 그의 아픔과 마주해야 했다.

또한 '성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만이 포르노를 쓸 수 있다'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한 작가에 대한 평가가 그처럼 상반되는 작가도 드물다고 하는데, 작가 장정일도 자신에게 붙여진 형용사를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그의 변론을 맡은 강금실은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 봐’에 대한 외설시비 재판에 변론기에서 다음과 표현했다.

"소설이 음란한가 아닌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 성적 수치심과 도의관념의 수준에 달려 있게 된다.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끼고 부도덕하다고 여기면 소설은 음란한 것이지만, 같은 소설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와 같은 정도로 느끼지 않는다면 음란한 것이 아니게 된다. "

또한 임형욱은 장정일의 순진함을 다음의 에피소드에 담아 이야기한다.

"인터뷰를 하기 위한 장정일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을 것이다. … 장정일은 그 날 인터뷰가 일찍 끝날 것이라고 판단하여 주머니에 토큰 몇 개만 달랑 들고 왔었나 보다. 그런데 자정을 넘기게 되자 장정일은 구광본의 휴대폰을 빌린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택시비를 들고 오라고 전화를 하는데, 마침 전화를 받는 쪽은 부산에 내려와 있다고 한다.

그 정도 상황이면, 자주 만나는 구광본이나 자리를 주최한 주최측을 믿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순진한 장정일은 3차가 끝나갈 무렵, 혼자서 비실비실 일어나 어디론가 간다. 보아하니 술 취한 채로 걸어갈 심산이다. 장정일은 그런 사람이다. 택시비 이야기를 하지 못해 그냥 걸어가겠다는…."


장정일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순수함 혹은 순진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작가의 목소리나 어조, 짧게 깎은 머리 모양, 옷차림 등에서 소년이나 스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며 그 느낌을 토로하기도 했다.

다음의 인용문은 그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짧게 쓴 글의 일부이다. 평범하지만 그 속에 진리가 들어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에 별로 어려울 일이 없을 것 같다.

"책이나 공부는 어떤 권리를 얻기 위한 패스포드일지는 몰라도 결코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 해변가의 모래밭에서 햇볕을 쬐거나 물장구치기, 산에 올라가서 맑은 공기를 미시는 거나 절 구경을 하는 것,

강아지나 고양이와 뒹굴며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맛있는 음식이나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것, 비 오는 날 아무것도 안 하고 게으르게 창밖을 바라보는 것, 공원의 벤치에 누워 햇빛에 물든 나뭇잎의 변화무쌍한 푸름을 즐기는 것,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하는 것, 분홍신을 구해 신고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갈 정도로 춤을 추는 것,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록 세 끼 식사를 걸러가며 사랑하는 사람과 긴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온종일 입 맞추는 것 등등. "


자기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제3의 인물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좀 더 객관적일 수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장정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나 결론은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다. 그가 순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작가 장정일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책이다.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장정일 외 지음, 행복한책읽기(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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