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한국인의 표정 백화점 같다. 우리의 참 모습은 때로 남의 눈을 통해서 더 잘 드러나기도 한다. 엘로디의 한국인 초상화는 18세기 김홍도의 조선 사회 풍속화처럼 신세기 문턱을 넘어서는 우리의 한 면모를 반추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 Elodie
한국인 ‘라면 먹는 모습’ 으로 반향을 일으킨 엘로디 도르낭 드루빌을 만나기 위해 오늘은 조금 서두른다. 이 기사로 많은 네티즌(누리꾼)에게 큰 방향을 일으킨 즐거운 사실도 전해주며 밀착취재를 시도해 보기 위해서였다. 친근하고 일상적인 라면 먹는 모습을 피드백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쇼크를 받은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 프랑스 작가가 먼저 쇼크를 받았지만….

관련
기사
외국작가 눈에 비친 한국인 '라면먹는 모습'

그녀가 봄 숨결을 풍기는 화사한 차림으로 나타나다

▲ 엘로디는 반갑게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자신의 벽화 <서울 파노라마> 앞에서 찍은 사진. 오늘은 치마까지 입고 봄의 기운을 몸에 받은 듯 상기된 모습이다
ⓒ 김형순
이제 막 '코리안-아이즈드' 전 2주째 벤자민 주아노가 주말 관객을 위해 그림 설명회가 시작되려는데 그녀가 나타났다. 오늘 복장은 지난 주보다는 상기되어 있다. 검은색 꽃무늬가 새겨진 청색 스웨터 차림에 치마까지 입었다. 늘 그렇듯 표정이나 얼굴에서 전혀 꾸밈이 없다.

인터뷰를 청하니 즉각 응한다. 봄을 느끼는 여심을 읽을 수 있다. 많은 네티즌이 당신이 그린 카툰 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니까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녀도 <오마이뉴스> 기사를 봤다고 한다.

단순하면서 미니멀한 멋을 지닌 한글 모양

오늘 대담은 그림과 연관되지 않은 것도 포함시켰다. 나의 첫 질문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신비한 기호 같은 한글 자모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그녀는 “지금도 한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는 느낌,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가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작가소개
엘로디 도르낭 드루빌(Elodie Dornand de Rouville)

학력
1998-2003 파리 국립 미술 학교 졸업(DNSAP)
1996-1998 파리 고등 미술 과정 졸업(BTS)

관련사항
2003 한국 파스퇴르 학회, 아트 디렉터
파리 Wargny Lievre Production, 부(副) 전시기획자
2002 2-8월 홍대에서 ‘Colin Lefrancq’ 재단 장학금 교환학생

전시회
2004 제주도 아프리카 벽화 참여
2003 관훈 미술관 7-8월전시
2002 스페이스 사디 화랑(강남 삼선동) 전시
2000 그리스 아테네, <멀티미디어 2000> 전시
당신의 이름 ‘엘로디’ 속에 한국 알파벳이 E(ㅌ), L(ㄴ), O(ㅇ), D(ㅁ), I(이), E(ㅌ) 꼭꼭 숨어 있다고 하니까 놀라는 표정이다. 당신의 이름에 ‘이’를 붙이면 <티니이미이티>가 된다고 하니 관심이 고조된다.

한글 구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 주었다. 예를 들어 ‘의’하는 단어에서 초성인 ‘ㅇ’는 하늘(天)이고, 중성인 ‘ㅡ’는 땅(地)이고, 종성‘ㅣ’는 사람(人)이라고 설명하면서 바로 천지인(天地人)사상이 담겨 있다고… .

글자의 모양이 과학적으로 논리적인 규칙에 따라 조합한 것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커진다. 그녀도 조금씩 한글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한글 자모를 응용한 디자인과 춤사위가 있다는 귀띔도 해 주었다.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올 때는 그 지원자가 적어

파리 국립 미술학교에 다닐 때, 교환 학생으로 가고 싶은 나라로 가나와 쿠바를 손꼽았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브라질 아마존 유역 여행 때 경험한 강한 색채감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하며 아름다운 색이 철철 넘치는 세상이 좋단다. 한국으로 배정받은 것은 상대적으로 그 지원자가 적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이 좋단다.

한국인이 서양 사람의 국적을 알아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이 작가는 왠지 프랑스적 인상을 물씬 풍긴다. 내 말에 그녀는 선뜻 동의한다. 우리가 서양인 국적을 알기 힘들지만 그녀에게는 왠지 외유내강의 프랑스적 분위기 느낄 수 있었다. 서양인에게도 한국인과 중국인과 일본인을 구별하기 힘들겠지만… .

그녀는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에 일본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더 잘 구별할 수 있단다. 일본인은 치아가 고르지 않고 입 모양이 달라 한국인과 구별된단다.

▲ 그녀는 한국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내 질문에 대답은 못했지만 많은 이미지를 통해서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알아가고 있고, 너무 빨리 알려고 하면 체한다는 듯이 그녀는 천천히 우리 문화를 음미하고 있다.
ⓒ Elodie
문화는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뒤에 남는 마지막 알맹이

문화 정책이 둔감했던 한국 관료들이 최근에서 그 방면에 조금 눈을 떴다는 말과 함께 문화에 대한 생각을 물으니 “문화는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뒤에 남는 것으로 한 나라를 정체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서울이 600년 된 고도(古都)지만, 고궁을 제외하고는 거의 100년이 넘은 건물을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자, 그녀는“비슷비슷한 고층 건물은 쉽게 지울 수 있지만 다시는 복원시키지 못하는 오래된 건물을 너무 쉽게 훼손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도시의 색감에서는 파리도 회색 위주지만, 서울은 너무 단일한 콘크리트 빛깔에다가 원색들이 혼재되어 있어 도시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점과 무엇보다 건물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 그녀의 눈에 역시 한국인의 따뜻한 정, 남다른 인정공동체의 모습을 놓칠 리 없다. <두 세대>라는 이 그림은 서민 화가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를 연상시킨다. 한국 사람의 유별난 가족애와 인간적 면모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 Elodie
그녀의 카툰이 단지 한국인을 희화하거나 풍자했다고 해서 네티즌의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독창한 시선으로 보는 눈과 한국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카툰은 보면서 한국인의 일상을 그림으로 그린 수묵화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작가는 한국에서 맛본 미미한 감정들이 모여 이런 큰 벽화를 만들게 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를 더 확대 해석해서 18세기에는 김홍도가 우리의 풍속화를 그렸듯이, 21세기에 한 외국작가가 우리가 무심코 넘겨버리는 현대판 풍속화를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한국 지하철 극명하게 대조된 두가지 모습. 왼쪽은 낮의 풍경, 오른쪽은 밤의 풍경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작가가 이런 장면을 놓칠 리 없다. 우린 아직도 지하철 공공장소에서도 공적 개념이 약하다. 사적 공간으로 착각하는 농경사회의 가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을 보는 멍멍이도 더 우습다.
ⓒ Elodie
혼재된 충동과 진통이 빚는 새로운 예술

사실 그녀는 한국에 있는 동안 줄곧 낯선 문화와 생경한 장면에 혼란스러웠다고 말한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온 서구 중심적 삶을 재정리하고 있었고, 점진적으로 그런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변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동서 문화의 네트워크를 연결시키면서, 발상의 전환과 이미지의 기억을 재구성을 하는 모험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이를 연상(association)과 상호작용(interaction)라는 키워드로 요약하고 있다. 대담 중 상호작용이란 어휘를 꽤 많이 사용한다.

▲ 한국은 성적으로 빗나가고 억압된 사회를 고발이라도 하는 듯이 왼쪽 이미지는 정숙한 규수의 모습이고, 오른쪽 이미지는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그려 넣어 한국인의 성에 대한 이중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진정으로 행복한 성적 향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다
ⓒ Elodie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었다면, 그의 그림에 담아낸 '금지가 너무 많고, 상상력과 창의력에 닫아버리는 한국 교육'의 문제를 바로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남성위주의 향락산업에 일침을 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홍대 시절에 본 붉은 악마의 힘찬 함성과 당시의 거리풍경, 강력한 에너지가 샘솟는 한국적인 삶의 방식에서 그녀가 기원하는 더 나은 세상의 가능성을 읽는 모양이다.

현대 미술 경향을 이야기 하다가 ‘2002년 광주 비엔날레’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도 가 보았다며 “널찍하고 열린 공간에서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고 여러 참신한 시도와 실험정신은 돋보였다”고 그 소감을 피력한다.

▲ 지하철 2호선 신촌역 벽화 그림. 미술의 엘리트주의을 벗어나 대중과 소통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바로 엘로디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의 일면이 아닐까 싶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이런 시각 공간의 무한대 확장을 필수적이다.
ⓒ 김형순
이런 흐름은 기존의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예술의 대중화 현상이란다. 관객을 그림 속으로 적극적 끌어들이며 즐길 수 있게 열린 공간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현대미술의 추세란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가는 미술, 특히 설치 미술에 관심이 많단다. 한국을 주제로 한 벽화 그림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갤러리보다는 홀이나 빌딩에서 벽화 작업을 하고 싶단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2호선 지하철 신촌역에서 본 벽화에 아주 고무되었다. 그녀가 이런 거리 미술을 본다면 지지를 보내며 아주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역이 어디에서나 설치미술의 보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든다. 그렇다! 이제는 미술도 거리로 내려와야 한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