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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되는 미확인 비문미확인 인물을 독립운동가로 새겨 넣어 대전 서구청에 의해 철거된 공적비(오른쪽)와 여전히 남아 있는 휘호비(왼쪽)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대전시청(시장 염홍철)이 국고를 지원해 공원 내에 확인되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공적비를 세워놓고도 수년 째 이를 수정조차 하지 않고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대전시청은 지난 2000년 민간단체지원 공모사업을 벌이면서 대전애국지사숭모회(회장 이규희)에 대전지역의 대표적 항일운동가 중 한 명인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휘호비와 생애비 건립사업비’로 국고 950만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 단체는 당초 사업 목적과 다르게 휘호비와 생애비 비문 앞면에 독립운동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이돈직’이라는 인물을 ‘독립운동가’로 지칭해 새겨 넣었다. ‘이돈직’은 전직 국회의원을 지낸 계룡건설 명예회장의 조부이다.

이 단체는 정작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생애비문은 이면에 새기고 비문에 ‘이돈직’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새겨 넣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대전시청 감사관실은 지난 2003년 5월 자체조사를 통해 “국고보조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비문 내용에 대한 확인과 정산업무를 소홀히 한 점이 인정된다”며 담당 공무원을 훈계조치하고 관할 부서에 시정 명령을 내렸다.

대전시청은 그러나 이후에도 아무런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전시청은 지난해 초 재차 논란이 일자 김용원 선생 후손에게 보낸 진정회신을 통해 “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세워진 생애비와 휘호비는 계획변경 승인 없이 이뤄져 보조금 관련 법률에 의거 대전애국지사숭모회로 하여금 김용원 선생 관련 비문 내용을 수정하고 이돈직 관련 비문은 삭제하도록 시정명령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생애비’만이 철거 됐을 뿐 함께 세워진 ‘휘호비’는 그대로 공원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휘호비’ 앞면에는 ‘이돈직’의 호와 함께 그가 생전에 즐겨 썼다는 ‘국충민위(國忠民爲)’의 휘호가 새겨져 있다.

그나마 ‘생애비’를 철거한 곳도 대전시가 아닌 서구청이다. 생애비를 세운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대전시로 부터 받은 돈은 휘호비 건립에 썼고 서구청에서 따로 돈을 받아 생애비를 건립했다’고 하자 이를 빌미로 그 책임을 서구청에 미룬 탓이다. 하지만 당시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대전시에 제출한 정산보고 자료에는 시로부터 지원받은 돈으로 생애비와 휘호비를 건립한 것으로 돼 있다.

"역사왜곡 위험 눈감는 건 직무유기“

대전시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지금까지 휘호비문의 내용을 시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비를 세운 대전애국지사숭모회와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 후손 간 당사자가 협의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김용원 선생 후손들과 이돈직 후손들간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비문을 수정할 단계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용원 선생 후손인 김옥경씨는 “국고보조사업의 집행 과정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로 조상의 행적이 엉터리로 작성된 책임을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현재 이와 관련해 누구와도 법적 소송이 진행 중인 건은 없다”고 덧붙였다.

대전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국고를 지원받아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조차 되지 않은 엉뚱한 사람의 비문을 건립한만큼 응당 비문 수정 또는 보조금 환수 등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를 방치하는 것은 역사왜곡 위험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문제의 두 비문은 지난 2000년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뜻을 기린다며 대전광역시와 서구청으로 부터 모두 1260만원의 보조금을 받아 건립했으나 비문 앞면에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이돈직의 생애와 휘호를 새겨 넣은 것으로 뒤늦게 확인돼 논란이 있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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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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