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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국회 내 간첩암약 폭로사건 이후, '고문'이라는 이름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그 후 주 의원에 의해 '간첩'으로 지목된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은 자신이 고문에 의해 간첩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우리사회에 고문은 없었으며, 있었다고 해도 90년대 이전의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90년대는 물론 2000년도까지도 여전히 공안기관 지하 밀실로 끌려가 국보법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고문이 자행됐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증언들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10여 차례에 걸쳐 고문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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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고문 수사'의 담당 검사는 정형근"


▲ 심진구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심하게 붉다고 한다. 심씨는 가끔 손을 떨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1986년 12월 10일, 정형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대공수사단장과 실장, 계장 등 고문요원 12명은 나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18년이 지난 지금도 내 몸에는 상처가 남아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고문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우겨대고 있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사회 부조리에 눈을 뜨고, 사회과학서적을 즐겨봤다. 군대에 갔다 온 뒤 노동자 생활을 하던 중 서울대에 다니던 친구를 통해 당시 서울 법대에 다니던 김영환('강철서신'의 저자)씨를 만나게 됐다.

김영환씨가 체포돼 조사받는 과정에서 내가 써서 김영환씨에게 보여주었던 '선진노동자의 임무'라는 문건이 문제가 됐다. 내가 김영환씨에게 주체사상을 전파했다는 것이었다.

12월 10일 저녁 5시 해질녘, 서울 시흥본동 대로에서 정형근의 부하들에게 잡혀와 밤새 고문을 받으면서 나는 인간 도살장에 끌려와 난도질당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조사 대상을 간첩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필요조건으로 봐서 체포하고, 그 뒤 고문을 통해 충분조건을 채워가는 것이었다.

당시 이 사건은 '민족해방 노동자당'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안기부는 '수도권지역 노동자해방동맹''병사혁명 소조''구국학생연맹'등의 조직을 조작하면서 나를 간첩으로 몰아갔다.

"고문, 간첩으로 조작되느냐, 막아내느냐 하는 생사를 건 싸움"

고문은 유일무이한 살인적 무기로써, 이때부터의 싸움은 육체적 고통과 인내가 아니라 간첩으로 조작되느냐, 막아내느냐 하는 생사를 건 싸움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성기고문과 살이 찢어지고 검은 피와 피오줌을 흘리는 주리 틀기, 목조르기, 발바닥치기 등 온갖 고문기술이 가해진다.

1986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 전인 22일 경, 정형근 당시 대공수사단장이 고문을 받고 있던 내 앞에 나타났다. 6명의 부하들이 심문대 책상을 둘러싸고 심문조서에 손도장을 찍어라, 찍어라 하며 내 머리를 몽둥이로 때리고 있을 때였다. 남색 줄무늬 양복을 입고 마도로스 담뱃대를 입에 문 정형근 단장이 나타난 것이다.

부하들이 순식간에 양쪽으로 세 명씩 일렬로 서 차렷 자세로 허리를 굽히자 정형근은 이들을 향해 "뭣들 하고 있는 거야! 15일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간첩이라고 불지를 않아?"하며 소리를 쳤다.

"고등학교 나온 놈이 아는 게 너무 많아…너 북에 갔다 왔지"

▲ 심진구씨
정형근은 담배연기를 한 모금 내뿜더니 "심진구, 이제는 간첩이라고 불 때가 됐는데. 여기 잡혀오면 15일 이내에 다 불지 않은 사람이 없어. 여기가 어딘 줄 알아? 국회의원도 잡아다 줘 패는 곳이야. 간첩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돼. 그러지 않으면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 죽어. 네가 뭔데 박영진(1986년 임금투쟁 중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 싸움으로 재야, 학생, 노동자 놈들과 연합전선을 펴? 고등학교밖에 안 나온 놈이 아는 게 너무 많아. 너 어릴 때부터 포섭됐지. 너 북에 갔다 왔지?"하면서 "간첩소리 나올 때까지 더 족쳐!"라고 말했다.

그러자 실장과 대머리에 눈이 치켜 올라간 부하가 몽둥이로 내 가슴을 후려쳤다. 내가 심문대 책상 뒤로 넘어지자 6명의 부하들이 달려들어 구둣발로 머리를 짓밟아대기 시작했다. 온몸을 몽둥이로 난타하더니 실오라기 하나 없이 벌거벗긴 채 손목과 발목에 수갑을 채우고 나서는 6명이 교대로 두들겨패대는데 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온몸을 타이어처럼 둥그렇게 말면서 심문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온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심문실 바닥에 범벅이 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내 발목에 묶인 수갑을 풀고 "일어서! 일어서! 새끼야!"하며 벽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일보 앞으로! 일보 앞으로!"하면서 심문대 책상까지 다가오게 하였다.

"성기를 심문대 책상 위에 올려놓고 몽둥이로…"

나의 성기가 심문대 책상에 걸쳐지자 그 중의 한 사람이 몽둥이로 툭툭 치면서 "이것 아직도 살아 있구만"하더니 1미터 정도의 길이의 몽둥이로 내려치기 시작하였다. 비명을 지르면서 철제 심문대 책상 앞으로 고꾸라지자 이번에는 뒤에서 어깨와 머리를 쳐 뒤로 젖혀지면 또 앞에서 성기를 내려치기를 수십 차례, 나는 악이 받쳤다. 대들면 죽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개새끼들아! 차라리 죽여라, 죽여! 제발 죽여다오!"라고 외쳤다.

그들은 나를 남산 국가안전기획부 지하복도 중앙 근처에 있는 샤워실로 끌고 가더니 온몸에 범벅이 된 피를 물로 씻어내라고 하였다. 눈물이 마구 쏟아지면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통곡하였다. 정형근 패거리 때문에 운 것이 아니라 이 가혹한 민족의 운명에 울고 또 울었다. 눈물과 핏물과 수돗물이 섞이며 남산 지하 하수구를 소용돌이치면서 빠져나갔다.

하루는 구치소 안까지 쫓아와 온갖 협박을 가하던 정형근 단장의 부하 3명이 나에게 정형근 단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에는 각하께서 검사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 특별히 차출했다고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이젠 인간이 싫어진다. 환멸을 느낀다. 우리 부하들도 데모하고 싶다"고 말이다. 나에게 행한 모든 행위를 지켜 본 정형근 단장은 아마도 자신의 부하들이 자신을 저주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87년 1월 15일, 구치소로 넘겨진 뒤 재판에 들어갔다. 안기부가 그렇게 주장했던 간첩혐의는 빠지고, 이적표현물 제작과 배포혐의만 인정돼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돼 석방됐다.

그러나 37일간의 고문은 내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지금도 모세혈관이 파괴되어 걸을 때마다 마비와 통증이 오고 일하기가 힘들며, 조금만 걸어도 피로가 와 주저앉게 되며, 가슴이 답답하고 뒷골이 쑤시고 불면증과 고문의 악몽에 시달린다.

고문 고소 재항고까지 기각돼 헌재에 제소

나는 참다못해 지난 2004년 4월 1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형근 외 13명을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하지만 서울지검은 '공소권 없음'으로 기각했다. 이에 불복해 서울 고등검찰청에 항고했으나 또 기각돼 대검찰청에 재항고 했다. 대검찰청은 지난 10월 14일 공소시효 5년이 지났다며 공소시효 완성으로 또 다시 기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 사상이론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고문, 특히 인간으로서 최악의 치욕인 성고문까지 할 수 있는 권리가 과연 헌법 규정에 있는지 밝혀내기 위해 지난 달 16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나는 고문 등 반인권 범죄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도 헌재의 심판을 받아 볼 것이다.

정 의원, 일체의 고문사실 부인… "고문 주장 사실이라면 공직 떠나겠다"

정형근 의원은 나를 비롯해 여러 조직 사건 관련자들 자신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고문주장이 사실이라면 일체의 공직에서 떠나겠다"고 밝혔다.

민족분단의 비극을 안은 삼천리강산에 새해 새날이 밝아 올 때마다 정형근 의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역사와 민족이 발전하는 힘 있는 원리를 알고 동참하여 사실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는 것이야 말로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하는 첫걸음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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