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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위해 산다는 건 쉽지 않다

▲ 추모시를 드리는 김지하 시인
ⓒ 박도
나라 위해 산다는 건
쉽지 않다

드러나지 않게
자기 모두를 바쳐.

한 분
계시다

우당 그늘이 이제
내게까지 드리웠다

숨죽여
감읍한다.

- <갑신년> 김지하


지난 11월 17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신교동 우당기념관에서는 우당 이회영 선생 순국 72주기 추모식과 우당장학금 수여식이 있었다. 이날 추모식에는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김우전 광복회장,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을 비롯한 광복회원 및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 시인 김지하, 그리고 이종찬 전 국정원장, 이종걸 의원 등 우당 후손들과 내외 귀빈들로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 우당 기념관을 메운 추모객들
ⓒ 박도
"… 우리는 그동안 우당 선생과 그 일가의 우국단성(憂國丹誠)에 대하여 너무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모르니 후진들에게 가르치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이유가 어디에 있건, 이것은 이 시대 지식인의 책임이요, 배운 사람의 큰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나라는 그분들에게 많은 빚을 졌고, 국민은 큰 죄를 졌습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그 빚을 갚고, 죄를 용서 받으려는 것은 결코 순국하신 그분들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진실로 우리 스스로의 염치를 되찾고, 그 후손들을 떳떳한 문명인의 반열에 세우기 위함입니다…."

- 우당기념사업회 홍일식 회장 기념사


새로운 시대의 대안적 인간상

다시 지난 세기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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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회에서 삼한갑족의 후예 이회영의 사상적 종착점이 아나키즘이라는 사실은 뜻밖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 역사학자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논하면서 아나키즘을 빼면 삼국시대를 논하면서 가야를 배제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 나라 사람들이 아나키즘을 공산주의의 사촌쯤으로 인식하고, 또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면서 일반인들이 아나키즘에 대해 생소하게 여기고 거리를 두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 우당 이회영 흉상(우당기념관)
ⓒ 박도
아나키즘(Anarchism)은 그리스어의 '아나르코(Anarchos)'에서 나온 말로, '없다(an)'와 '지배자(arche)'의 합성어로 '지배자가 없다'는 뜻이다.

아나키즘의 사전적 정의는 "조직화된 정치적 계급 투쟁뿐 아니라 모든 정치적 조직·규율·권위를 거부하고, 국가 권력 기관의 강제 수단의 철폐를 통하여 자유·평등·형제애를 실현코자 하는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 및 운동으로서, 국가나 정부는 본래가 해롭고 사악한 것이며, 인간은 국가나 정부 없이도 올바르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이다.

아나키즘을 굳이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자유연합주의' 정도가 타당하다고 하겠다. 이회영이 일제 하 아나키스트가 된 것은 개인적인 성향 이외에도 아나키즘이 독립운동 이론으로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은 공존의 철학이며 이타(利他)의 사상으로, 인간의 참된 해방을 지향한다. 1924년 4월, 이회영·유자명·이을규·이정규·정화암·백정기 등 6인은 북경에서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했다.

또 이회영은 1925년에는 비밀결사조직 '다물단'의 배후 역할을, 1931년에는 한중 합작으로 항일구국연맹을 결성, 의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흑색공포단'이라는 행동대를 조직, 일제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했다.

그동안 남과 북, 모두에서 버림 받은 독립운동가 이회영과 아나키스트들은 공의(公義)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바쳤다. 그러면서도 결코 남을 억압치 않았고, 그에 따른 아무런 대가도 요구치 않았다. 그들의 삶은 완성된 하나의 인격체로,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로 뒤덮인 이 시대에 한 대안적 인간상으로 받들 만하다.

아나키즘이 비록 역사 속에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여성운동·반전반핵운동·녹색운동·환경운동 등에 뿌리를 내려 현재 진행형으로 역사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어두운 시대에 모든 기득권과 재산, 그리고 당신의 생명까지 바치면서 오로지 조국의 해방과 진정한 인간 해방 운동에 앞장 선 아나키스트 이회영은 분명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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