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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본'이 아닌 '장정일본' <삼국지>를 펴낸 작가 장정일
ⓒ 김영사 제공
작가 장정일이 5년간의 작품 공백을 깨고 <삼국지>를 들고 독자들 앞에 나왔다. '또 하나'의 <삼국지>가 아니냐는 물음에 장정일은 절대 아니라고 펄쩍 뛴다. 새로운 <삼국지>란다. 그럴까? 장정일에게 물어보자.

"또 한 종류의 번역본을 보태려고 했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새로 쓰려고 시도했습니다."

23일 기자와 마주한 장정일은 첫마디에서 자신의 작품을 기존 <삼국지>들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삼국지>를 앞으로 그만 읽을 거라면 몰라도 계속 읽을 거라면 이젠 번역 중심에서 벗어나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고 봅니다. 즉 한 걸음 나아가 <삼국지>를 우리 손으로 새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그의 말을 수긍하기로 하고, 그렇다면 기존에 나와 있는 <삼국지>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새로운 <삼국지>가 나오면 으레 뒤따르게 마련인 전작에 대한 일회성 비판을 의식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장정일은 자신의 작품이 나온 시점이어서 다른 작품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본의와는 달리 자신의 책 홍보를 위해 남의 책을 헐뜯는 것 같은 모양새로 비춰질까봐 적잖이 신경이 쓰인다면서, 그렇지 않은 자유로운 입장이라면 이보다 훨씬 더 말이 많았을 거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본 <삼국지>는 없다!

"그동안 우리가 읽어온 <삼국지>들은 하나 같이 중화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쓴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당대의 이름난 작가들이 무수히 달려들어 수 차례 번역하여 엄청나게 많은 독자들이 읽었고, 현재 읽히고 있고, 또 읽힐 거라면 이젠 우리나라의 소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전에 충실한 것만이 가장 좋은 것인 양 취급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원전 중심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을 좀더 부연해보자.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번역이 나올 때마다 옮긴이들은 하나같이 명 말 청 초에 나온 '나관중본'이나 '모종강본'에 매달려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판본'이라는 수사를 덧붙여 '정본'임을 주장하는데, 실제 현존하는 <삼국지> 정본은 없다는 것.

다만 우리나라 번역가들이 특히 선호하는 '나관중본'이나 '모종강본'은 중국에서 읽히는 숱한 판본 중의 하나일 뿐이며, 나관중이든 모종강이든 그들은 원작자가 아니라 편찬자라는 것. 따라서 <삼국지>는 애초 정본이 존재하지도 않은 허구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리스 로마신화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토마스 불핀치의 판본이 우리 독자들에게 정본인 양 행세하던 시절이 있었지 않습니까? 저도 불핀치의 것을 읽었었지만. 그런데 지금 우리 독자들은 이윤기 선생님 것만을 읽습니다. 이처럼 <삼국지>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늘 새롭게 쓰여지는 텍스트이지 완성된 텍스트는 아닙니다."

한 가지 설명해둘 것은 여기서 말하는 <삼국지>는 소설인 <삼국지연의>로 정사로 쓰여진 진나라의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와 구별되는데 진수의 <삼국지>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 번 번역돼 나왔다고 한다.

황석영과 이문열의 <삼국지>

▲ "<삼국지>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늘 새롭게 쓰여지는 텍스트"
그러면서 장정일은 자연스레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대표적인 작품인 황석영과 이문열 <삼국지>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먼저 황석영 <삼국지>에 대한 장정일의 입장을 들어보자. 그는 황석영 <삼국지>는 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쉬움이 너무 많아서 언급하고 싶다고 했다.

"황석영 선생님께서 <삼국지>를 낸다고 하셨을 때 여러 독자들이 그랬을 것처럼 저도 기대를 했습니다. 민중, 민족문학의 좌장격인 황 선생님께서 쓰신다면 번역이 아닌 진짜 우리 토종 <삼국지>가 나올 줄 알았거든요. 탈식민주의와 문화의 주체성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지금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새로운 작품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나온 것은 번역본이잖아요. 거기다가 정역본이라고까지 강조를 하시잖아요."

황석영 <삼국지> 역시 저본으로 삼은 판본에 전반적으로 들어 있는 중화중심주의와 영웅사관을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기존의 작품들과 다를 게 없다는 것. 또 정역본이라는 주장은 뒤집어보면 600년 전 나관중이 살던 시대에는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른 만큼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않았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냐고 장정일은 반문했다.

장정일은 또 이문열 <삼국지>에 대해서는 작가의 해석을 넣은 '평역'을 했다는 점은 일단 평가하면서도 해석상의 문제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이문열 선생님 <삼국지>가 나올 때인 1988년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보면 이 작품은 민주화운동 선상에 있었던 민중의식과의 대립각 차원에서 쓰여졌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이문열이 직접 쓴 온전한 작품이 아니란 점을 들어 찬찬히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이 <삼국지> 속에는 이문열의 온갖 보수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창고이자 무덤과 같습니다."

장정일은 누구인가
실험성 강한 전방위적 문화전사

▲ 작가 장정일
1962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난 장정일은 고서점 주인을 꿈꿨는데, 고서점을 하는 데는 학력이 필요치 않을 것 같아 제도권 교육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머니의 강권에 중학교까지는 다녔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피하기 위해 거총과 교련에 반대하는 특정종교에 가탁하기도 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 그 종교를 미련없이 떠난다. 우연한 폭력사건으로 소년원 신세도 졌다.

그러던 장정일은 1984년 무크 <언어의 세계> 3집에 '장정간다'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그가 세인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실내극>이 당선되고 그해 말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 최연소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면서다. 장정일은 1990년 <아담이 눈뜰 때>를 내면서 소설가로 전업했다.

이후 시, 소설, 희곡, 시나리오 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영화화되고 연극 무대에 올려지는 등 전방위적으로 다뤄지면서 우리 문화계에 '장정일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세간에 파란을 일으키는 문제 작가로 꼽히기도 했다.

그의 실험적 작품 활동은 1996년에 낸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물로 분류되어 사법적 판단을 받음으로써 정치적 이유가 아닌 음란죄로 필화를 겪는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난생 처음 집필실을 가져보기도 했다는 장정일은 여전히 휴대전화 같은 문명의 이기와 담을 쌓고 산다. 책 출간 때문에 잠시 아내의 휴대전화를 빌려오긴 했지만 거는 방법을 몰라 인터뷰 시간에 늦는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리지 못하고 그냥 늦게 왔다. 그리고 무척 미안해했다.

작품으로는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 <길 안에서의 택시잡기>, 희곡집 <긴 여행>, 장편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보트하우스> <중국에서의 편지>, 그리고 6권의 <장정일의 독서일기> 등이 있다. / 조성일 기자

<삼국지>를 새롭게 해석하라!

장정일은 <삼국지>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할 때 <삼국지>의 무엇을 재해석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령 황건군을 황건적이라고 명기하는 선민적 역사관으로는 삼국시대를 살았던 당대 민중의 염원은 물론이거니와 현재의 중화민국 건국에 대한 진실마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 역대 왕조가 항상 농민혁명으로 멸망했기에 오늘날 중국 역사는 황건난을 '의로운 봉기'로 높여 부르고 있다. 그럼에도 <삼국지>에서 계속 황건적이라고 명기하는 것은 우리의 동학혁명이 동학난으로, 5 18광주민주화운동이 광주폭동으로 표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정일은 옛날 옛적 먼 나라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무심하게 넘길 것이 아니라 '황건기의'(黃巾起義)라는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는 데 인색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또한 그는 맹획의 칠종칠금(七縱七擒) 고사만 하더라도 일곱 번씩이나 적장을 풀어준 끝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복종을 끌어낸 제갈량의 재기와 인덕에 경탄할 일이 아니라 미련하고 염치없어 보였던 맹획에게서 주체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것만이 한 민족의 존엄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길이라는 것을 일찍 터득한 맹획의 의식을 오히려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이런 점에 입각하여 장정일은 <삼국지>를 쓸 때 '의도적으로' 새롭게 해석했다고 했다.

"춘추필법은 등장인물을 선인과 악인으로만 구분합니다. 유학을 배운 사대부를 '청류'(선인), 환관과 외척을 '탁류'(악인)로 정형화하는데, 이는 인간 내면에서 약동하는 욕망을 바로 읽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춘추필법이 한족은 청류이고, 그 밖의 변방의 이민족은 탁류로 이분법적 구분을 하면서 철저한 중화주의적 의식을 주입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동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장정일은 나관중과 모종강본 <삼국지>에서 한시 210수를 삽입하여 유교적 춘추사관을 충실히 보강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해체해야 할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삼국지> 편찬자들이 방금 끝난 장이나 일화를 평가할 목적으로 문인들의 시를 찾아 넣거나 직접 써서 넣기도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춘추필법의 정수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것. 그래서 장정일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삼국지>에서는 대신 시 20편을 넣었는데, 2편은 한시에서 고르고 나머지는 새롭게 창작했다고 했다.

여성에게 친 금줄을 걷어내자!

▲ "삼국지는 여성잔혹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또 하나 장정일은 기존 <삼국지>의 문제점 중 극복해야 할 것은 남성중심적 시각이라고 했다. 남자들은 통과의례처럼 <삼국지>를 반드시 읽어야 할 수신 교과서로 취급하지만 여성들은 전혀 읽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삼국지>에 나오는 여성 인물들은 남성 주인공들 틈새에 끼여 액세서리 구실만 하기 때문이다.

"여성잔혹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형제는 수족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며 네 차례나 부인을 팽개치고 도망 다닌 유비의 소행이나 여포에게 쫓겨 산길을 헤매던 배고픈 유비에게 아내를 잡아 화로에 구워주었던 어느 사냥꾼의 엽기적 행각에서 더 이상 할 말을 잃습니다. <삼국지>는 여성 독자들을 막기 위해 남성 독자들이 의도적으로 금줄을 쳐놓았지요."

해서 장정일은 이 금줄을 과감히 걷어낸다. 가령, 관우가 형수인 유비의 부인을 호위해 유비를 찾아가는 도중 황군 잔당이 찾아와 거두어 줄 것을 원하는 장면에서 도적의 무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관우는 단호히 거절하지만 워낙 애원이 극진하여 유비의 첫 번째 부인인 감부인에게 알린다.

그런데 대부분의 번역본들은 이 부분을 감부인이 남편과 황군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없으니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묘사한다. 그러나 장정일은 감부인이 남성적 수사의 앵무새 역할을 거부하고 "장군님, 예로부터 병비일가(兵匪一家)라고 했으니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습니까?"고 말하며 적극적으로 결정하는 주체적인 인물로 그렸다.

<삼국지> 갖고 못할 이야기가 없다!

이상의 이야기 말고도 10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쓰고, 또 200년경의 이야기를 지금 되살리다 보니 할 얘기가 소설의 양보다 많아 배보다 배꼽이 큰 형국이 될 수도 있어 이쯤하고 결론을 대신하여 물었다. 결국 이런 모순투성이라면 <삼국지>는 굳이 읽어야 할 텍스트가 아니잖느냐고.

"물론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죠. 사람들이 <삼국지>를 지혜의 보고쯤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삼국지> 전반에 흐르는 지혜는 '이간계' 하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조조가 젊었을 때 놀기만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그의 삼촌이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하죠. 그러자 조조는 삼촌이 보는 앞에서 간질 흉내를 내요. 삼촌은 쪼르르 달려가 또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해서 아버지가 와서 보게 되는데, 조조가 멀쩡하거든요. 결국 아버지는 삼촌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죠. 바로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출판사로부터 이 작업에 대한 제의를 받기 전에는 솔직히 <삼국지>를 우습게 알았습니다. 검토 기간을 6개월이나 달라고 했던 것도 썩 내키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작업을 끝내고 나서 느낀 점은 <삼국지>를 가지고 못할 이야기가 없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정치인은 정치에 대해, 의사는 의술에 대해, 요리사는 요리에 대해 각자 자기가 얘기할 수 있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는 그런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5년간의 사투를 벌인 장씨는 인터뷰를 끝내고 서둘러 대구의 집으로 내려갔다. 이제 평가는 독자들의 몫이기에.


장정일 삼국지는 어떤 작품인가
얼개만 차용하여 새롭게 쓴 작품

▲ 장정일 <삼국지>
2002년 겨울부터 한 해 동안 <문화일보>에 연재했던 것을 묶어낸 <장정일 삼국지>(전10권, 김영사 펴냄)는 기존 <삼국지>와 달리 특정판본에 대한 번역본이 아니라 기둥 줄거리는 그대로 살리되 새롭게 써내려간 '장정일본' 삼국지이다.

애초 <삼국지>에는 별 관심이 없던 장정일은 김영사로부터 집필 제의를 받고 6개월간의 검토 끝에 수락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 일체 외부의 활동을 접고 이 작업에만 매달려 꼬박 5년의 세월을 투자했다.

이 작품은 장정일이 '의도적'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쓰여진 것으로 중화중심주의의 춘추사관과 영웅사관을 해체하고 객관적이고 민중과 변방인에 대한 역사적 주체성을 부여하는 등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졌다.

또한 장정일은 "~사옵니다"나 "하노라"와 같은 고어체 어미를 지양하고 한글세대 독자들에게 맞는 현대적 감각에 맞춰 '젊은 삼국지'로 써냈다.

또한 장정일은 이 작품에서 전쟁무협소설 특유의 온갖 허무맹랑한 허구를 걷어내고 인과성과 사실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소설 세계를 그렸다.

아울러 이 작품은 한족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 위 촉 오 세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숱은 소수민족들이 동원돼 벌인 전쟁인만큼 동아시아의 역사소설로 확대하고 남성중심적 해석을 배격하려 했다.

한편 이 작품은 중국화가의 그림이 아닌 우리 작가 '역사만담꾼' 김태권 화백이 새롭게 그린 삽화 152컷도 함께 싣고 있다. / 조성일 기자

삼국지 2 - 무단(武斷)의 시대

장정일 글, 김영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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