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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달의 저서 '미국헌법과 민주주의' 한국판 서문에 실려있는 최장집 교수의 논문 '민주주의와 헌정주의 : 미국과 한국'은 분량이 무려 64쪽에 달한다. 최 교수의 논문은 미국 헌법의 기원과 비민주적 요소에 대한 분석, 그리고 미국 헌법을 이식받은 한국 헌법에 대한 고찰 등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다음 요약문은 이 가운데 한국 헌법에 대한 고찰 부분인 '한국의 헌법과 민주주의'만을 요약해 발췌한 것이다....편집주 자
4. 한국의 헌법과 민주주의
(1) 타율적 헌법과 그 유산
한국의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헌법의 중심 이념 및 내용, 그리고 그것이 제정될 당시의 정치적 조건의 특성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두 가지 가장 중요한 특징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것이 외부로부터 주어짐으로써 헌법의 타율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헌법이 이념적 양극화라는 비상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남한에 분단국가를 제도화하는 계기로 제정되었다는 것이다.
우리헌법의 전문이 밝히고 있듯이, 새로이 건설될 국가의 기본이념과 목표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 시기 헌법을 실천할 주체로서의 한국 국민, 특히 정치엘리트들이 얼마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준봉하고 이를 실천할 의지를 가졌는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그보다는 분단국가의 두 가지 존재 이유, 즉 하나는 반공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정치의 기본이념과 실천이 자유민주주의이어야 한다는 상충하는 두 요구를 통합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면서 정체의 성격을 밝히고 그 정당성을 천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일찍이 매디슨이 미국의 정체를 규정하기 위해 불러들였던 “공화정”이란 말이나, 알렉산더 해밀턴이 최초로 명시적으로 사용했던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은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의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여러 국가들이 규정하듯, 한국의 정체는 그저 단순히 민주주의국가라고 규정할 수도 있고, 매디슨과 해밀턴이 강조했고 또 프랑스에서처럼 공화주의의 이념적 표현으로서 공화정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헌법의 저자가 어떤 의미로 한국국가를 민주주의국가나 공화정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라고 불렀는지를 알지 못한다. 지금도 한국민의 대다수는 공화정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고 있다. 분단국가의 정치적 조건에서 왜 공화주의적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필요했는지, 또는 그것이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면 왜 단원제를 택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헌법은 극한적 이데올로기적 대결과 국토분단의 위기적 환경하에서, 그리고 법의 작동과 자유민주주의를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첨예한 분열과 혼란이 지배하는 내란에 가까운 상황에서 제정되었다.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적 상황 내지 군부권위주의가 지배적이 된 1950년대로부터 1987년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헌정사는, 매디슨적 민주주의를 원리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적 헌법이 실패해왔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헌법으로부터의 국민의 소외, 그로 인해 헌법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으로 특징지어진다. 헌법이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다만 규범적 이상으로서만 존재했다는 것은 그것이 현실에 있어 형식적 장식물로 전락했으며, 법의 해석자들이 법리라는 이름으로 실정법 조항들에 근거하여 어떤 논리를 끌어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형식논리 이상의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헌법이 현실을 규율하는 규범이 아니라 허구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가장 단적인 예는, 1972년 유신헌법에서나 1980년 5공화국 헌법에서 제1조는 변함없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규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제도화된 권위주의체제가 스스로를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했다는 것만큼 헌법의 내용과 정치현실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것도 없다 하겠다. 이러한 헌법의 역할 및 위상과 관련하여 국가보안법(1948년 12월 제정)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남한의 분단국가는 당시의 현실에서 서로 상충하는 두 가지 목표, 즉 반공국가를 건설하는 것과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었고, 이 두 목표가 충돌할 때 어디까지나 그것은 냉전이라는 조건하에서 전자가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헌법을 이상적, 형식적 근본규범이라고 한다면, 국가보안법은 반공질서를 실현하는 보다 상위의 국가목표를 실제로 실현하고 그럼으로써 현실을 규율하는 실질적 근본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이중의 근본규범(Grundnorm)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개인 기본권이 실현되는 경계를 한정하고 내용을 규정하며, 정치경쟁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주형하고 이를 통해 정당간 경쟁의 규칙을 만들며, 실제 정치를 규율했던 것은 헌법 혹은 그에 의거한 헌정질서라기보다 국가보안법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있어 국가보안법은 헌법보다 상위의 위상과 역할을 갖는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민주화는 ‘헌법을 유일 근본규범으로서 제자리에 놓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이 때로 헌법의 상위에서 때로 그와 동등하게 우리사회의 기본 이념과 내용을 규율하는 한 헌법이 담고 있는 조항의 표현이 아무리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사회가 민주헌법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관점에서 헌정사의 변화를 본다면, 그것은 대체로 세 측면을 갖는다. 첫째는 처음 한국민들에게 타율적으로 외부로부터 부과되었던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내용을 갖는 헌법이 긴 권위주의시기를 지나고 민주화투쟁을 통하여 토착화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둘째, 민주화는 명실공히 근본규범으로서 헌법의 지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특히 헌법과 국가보안법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자주 헌법보다 상위의 지위와 영향력을 가졌던 국가보안법이 현저하게 약화되면서 이중의 근본규범 문제가 사라지게 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지난날 정치는 헌법이 기능하는 영역 밖에서 작동했다.
(2) 민주화와 헌법의 구조: 견제와 균형의 불균형
1987년 10월 민주헌법을 만드는 헌법개정은 이후 한국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당시의 시점에서 민주적 정치경쟁의 틀을 주형하는 정치제도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가에 대한 인식은 별로 많지 않았다. 제도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은 정치엘리트와 일반인들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었으며, 사실상 문화적 전통이 되다시피 했다.
1960년 4.19학생혁명은 최초로 광범한 사회적 논의와 민주적 결정방식을 통하여 타율적으로 주어진 헌법을 현실에 입각하여 개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제2공화국의 정부형태가 의회중심제가 되었던 것은 사실상 거의 자동적인 것이었다. 대통령중심제는 권위주의와 동일시되었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공식강령도 의회민주주의였기 때문에 민주당이 주도했던 새로운 헌법은 이론의 여지없이 의회중심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1987년 6월항쟁은 광범하게 민중적 의견이 표출되고 기존의 매디슨적 민주주의가 담고 있는 제도에 대한 중요이슈들을 검토할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본격적인 민주헌법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부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민주헌법으로의 개정은, 민주화운동세력들의 이렇다할 개입이나 압력 없이 또한 이슈에 대한 광범한 사회적 논의 없이 구체제의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 민주화와 더불어 부상한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등 주요 정파들의 몇 안 되는 대표들 사이의 비공개 정치협상에서 타협을 통해 만들어졌다. 1987년의 경우에서도 국민(대표)참여의 배제와 논의과정의 부재라는 현상은 앞선 시기에서와 같이 문화적 전통처럼 반복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강한 지속성을 말하는 것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본격적으로 민주주의가 전개될 때, 우리가 미국의 경우를 통하여 볼 수 있었던 여러 특징적 현상들, 즉 견제와 균형과 삼권분립이 가져오는 효과로서의 다수지배의 위험에 대한 억제, 이중대표성이 초래하는 대통령권력과 입법권력 간의 대립과 교착, 거대권력으로서의 사법부권력의 부상과 같은 현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강력한 민중주의적 동력의 투입을 통해 만들어졌다면, 민주주의의 제도화 과정에서 민중주의적 동력은 매디슨적 민주주의로 특징되는 헌법의 제도적 틀이 부과하는 제약에 의해 구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 양자는 상당한 긴장과 갈등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될 것이다.
앞 절에서 보았듯이 매디슨적 제도디자인의 최대 관심사는 국민주권과 의사를 대표하는 입법부가 최대의 권력이고 다수의 전제는 입법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를 제일 먼저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한국의 헌법개정자들은 쉽게 권위주의화하는 대통령의 권력 강화를 견제하려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그 제도적 장치로서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행정부와 입법부간 관계에 있어서 한국의 행정부 기능이 미국보다 약하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의 경우, 의회에 독점적으로 입법권행사를 보장함으로써 권력분립의 원칙을 관철시키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대통령에게 법률안 제출권뿐만 아니라 긴급처분 명령권, 계엄선포권을 부여함으로써 일정한 입법부의 역할을 공유함과 아울러 미국에는 없는 국가긴급권을 통하여 대통령에게 보다 큰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는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중을 강화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사법부의 역할강화야 말로 1987년 헌법개정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며, 또한 가장 큰 특징이다. 이로써 한국헌법에서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특징은 제도적으로 더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위헌여부, 탄핵, 정당의 해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상호간 권한쟁의, 나아가 헌법소원에 관한 광범한 법적, 정치적 문제에 심판의 권한이 부여되었다.
제도적으로 극히 애매한 지위를 갖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한 또한 엄청나다. 평등한 투표권, 의사표현의 자유, 결사체의 자유로운 조직과 활동, 자유공정선거가 민주주의에 있어 핵심 제도의 하나라고 할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 문제를 관장하고 그에 대한 합법성 여부를 심판할 수 있는 준사법적 권한을 부여받고 있는 것은, 이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를 제약할 수 있는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과 선관위의 위원은 6년이라는 임기와 선임방법이 동일하다. 즉 대통령에 의한 임명, 국회에 의한 선임, 대법원장의 지명에 의해 3인씩 모두 9인으로 구성된다. 미국과 같이 연방최고법원의 9인 판사를 포함하여 모든 연방법원의 판사를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이 인준하는 미국식과는 달리, 이들 두 중요한 사법기관의 판사와 위원을 대통령, 의회, 사법부로 3인씩 분할한 것은 한국적인 특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특성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서 이 방법은 분명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려는 동기에서 유발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의회다수가 동일한 정당이 되었을 때 이들 판사와 위원들이 동일한 정당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는 우려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식 방법은 대통령의 임명은 상원의 인준이라는 방법으로 다른 당을 통하여 견제되기 때문에 연방법원은 두 부서에 대한 수평적 책임을 진다. 그러므로 사법부는 국민의 대표인 이들 두 부서를 통해 국민에 대해 수직적 책임을 진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국회에 의한 3인은 정당간의 배분을 통하여 임명되곤 하기 때문에 수평적 책임의 소재는 애매해진다. 그러나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방식 즉 사법부 자체에 의한 임명, 그러므로 국민에 대해서도 타부서에 대해서도 어디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 임명방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대표와 책임의 고리로부터 자유로워짐을 의미하며, 사법부의 자율적 역할 나아가 역할비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매디슨은 연방주의자 ‘논설 10번’에서 로크 이론을 따라 “어떤 사람도 그 자신의 이유를 갖는 사건에 대해 스스로가 심판관이 될 수 없다”라고 강조한다. 여러 사람들은 사법부를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수호자는 누가 감독하나?
(3)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와 ‘제왕적 헌법재판소’의 등장
앞에서도 말했지만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제도적 근간을 이루는 삼권분립은 혼합헌법의 견제와 균형 이론에 기원을 두는 것이었고, 이 때의 견제와 균형은 정부 부서간의 기능적 분업이 아니라 사회세력간의 견제와 균형을 의미했다. 이에 기초하여 필자는 한국에서의 삼권 분립과 이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본래적 의미의 사회세력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와 접맥시켜 보고자 한다.
이렇게 볼 때 초점은 한국의 헌법이 제도와 규범 그 자체로서 갖는 장단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역(逆)으로 민주화이후 한국정치의 현실과 정치세력간 사회적 힘의 균형이 헌법의 삼권분립을 통하여 어떻게 표출되었는가에 두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삼권분립의 문제를 단순한 정부부서 간의 기능적 분업을 넘어 사회세력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형적 문제틀로 환원시켜 보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민주화이후 민주적 정치경쟁이 본격적으로 가동됨에 따라 1987년의 헌법이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결함을 드러내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는 입법부와 행정부간의 상호견제에 의한 갈등으로 인하여 정치와 정부 기능이 교착과 마비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는 정부의 무능력을 심화시킴과 동시에 정치의 탈정치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법기능의 역할, 특히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엄청나게 비대해진 것을 말한다. 이 역시 정치의 범위를 크게 좁히고,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에 제약을 가하는 변화이다. 이러한 제도의 결함은 제도권에서 경쟁하는 정치세력간 힘의 관계가 뚜렷이 변하는 것을 계기로 시차적으로 연속해서 발생했다. 먼저 첫 번째 단계에서 나타난 입법부와 행정부간의 상호견제에 의한 교착상태를 보도록 한다.
여소야대정국의 출현이 두 부서간 상호견제를 극심한 정치갈등과 교착상황으로 몰고 간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민주적 선거를 통하여 성립된 최초의 정부인 노태우정부에서부터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여당이 의회 다수당이 되기 이전까지 일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한국정치 본래의 어떤 정치문화적 특징이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의 견제와 균형을 삼권분립의 기본구조로 한 매디슨적 헌법이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민주주의와 정당이론의 대가인 사르토리는 미국의 대통령제는 분할정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권력을 분리해놓은 최악의 구조적 배열을 지니고 있으며, 미국제도는 헌법 “때문이” 아니라 헌법 “에도 불구하고” 작동하고 있다며 미국의 헌법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에 의하면 매디슨의 기대와는 달리 삼권 간의 견제와 균형이 스스로 작동하는 평형을 만들어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의 비판은 대통령중심제를 갖는 미국이나 라틴아메리카에서 볼 수 있듯이, 매디슨적 민주주의가 구조적으로 강력한 대통령제를 만들어낸다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사르토리의 비판은 한국정치에 대해서도 커다란 설득력을 갖는다. 노태우정부는 3당통합, 김영삼정부는 의원빼내오기를 통해 여소야대 상황을 타개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초기까지는 거의 여소야대였다. 그리고 이 경우 정부는 의회다수를 점했던 강력한 야당의 비판과 공격 앞에 정부가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위기에 직면했다. 민주주의의 현실은 자주 이상적인 선택이 아니라 어느 것이 덜 나쁘냐의 선택, 즉 비민주적 방법을 통하여 정부를 작동시키는 것과,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또는 못함으로써) 무능한 정부가 되는 것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헌재 역할의 부상이다. 이미 최근 년에 이르러 헌재에 의한 “사법부의 정치적 결정” 사례들은 증가해왔다. 2004년 8월, 9월의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판결도 그 한 예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했듯이 2004년 5월과 10월의 평결을 통해 헌재로 상징되는 사법부가 극적으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압도하는 “제왕적 사법부”로 등장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삼권분립은 헌법해석권에 바탕을 둔 강력한 사법부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이 점에서 사법부의 부상은 매디슨적 삼권분립이 한국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 혹은 한국이 미국의 모델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헌재의 부상을 급작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부여된 권한 자체를 행사하는 방법도 극적이었지만, 이 변화가 일반인들의 의식에 미친 충격이 매우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글의 주제, 즉 민주주의의 제도 안에서 그리고 민주주의의 규범에 부응하는 사법부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2004년 5월의 헌재 판결은 판결의 결과가 아니라 판결의 내용을 이루는 헌법해석의 방식이 중요했다.
그 중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통령을 공무원으로 규정하고 공무원으로서 선거에 개입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현행 선거법 9조에 대한 해석을 내린 것으로부터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시발되었다는 사실은 극히 중요하다. 헌재 역시 이를 인정하고 그러한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을 위반했다고 해석했다.
2004년 10월 헌재의 위헌판결은 두 가지 요소가 중요한데, 하나는 특별법으로 제정된 행정수도이전이 국회의 여야당 모두가 압도적 다수로 동의한 입법부의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대통령후보 선거공약으로 제시되고 논의되었으며 유권자의 직접투표를 통해 합법적으로 위임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추진된 정부의 최대 정책사안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행정수도이전에 찬성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헌재의 결정내용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수준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위의 두 사건은 많은 논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쟁점보다도 이 판결의 중요함은 그것이 민주주의의 규범과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이다.
중앙선관위가 대통령을 공무원법 9조가 정의하는 공무원으로 해석하고 헌재가 이를 인정한 것은, 대통령직을 좁은 의미에서의 공무원의 역할로 한정시키는 동시에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광범한 정치적 역할을 무시하고 부정한 것이다. 하나의 정부가 선거경쟁을 통해 구성되는 전 과정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내용을 갖는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제정부이고 그 중심행위자는 정당이며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렴하는 정책을 결정하고, 사회의 갈등을 수렴하는 정치의 리더십을 통해 이를 통합하고자하는 대통령의 기본적인 역할은 공무원의 역할 규정의 대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민주주의의 전 과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헌재가 내린 판단의 논거는 정치와 행정을 구분하지 못하고, 정치를 행정으로 환원시키는 것 이상이 아니다. 공무원의 행위준칙은 그 자신의 외부로부터, 그리고 상위의 권위로부터 국가목표, 정책, 행정지침의 내용으로 부여된다. 이를 만드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며, 대통령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 하더라도 광범하게 부여되는 자율의 공간, 가능의 공간을 갖는 특별한 역할, 즉 정치적으로 국가/정부에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정책대안들을 결정하고, 민주적으로 제정된 법을 통해 행정적으로 이를 집행하는 특별한 역할을 갖는다.
따라서 그의 행위와 실책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내용을 갖고 헌법에 규정된 제재대상이 아니고서는 민의의 대표-책임의 고리를 통하여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게 되는 특수한 형태의 지위를 통해 공익에 복무한다는 가장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공직자이다. 헌재가 대통령으로 하여금 정치적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의 불합리함은 역설적이게도 헌재 판결의 내용과 결과가 매우 정치적이었다는 사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헌재의 위헌결정은 사법부에 의한 정치적 결정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행정수도이전 정책이 여론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는 부정적 측면을 안고 있다 하더라도 정책결정의 절차적 정당성에는 하자가 없다. 이러한 사안에 헌재가 개입하여 입법부의 결정과 정부정책을 무효화한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부정이며 제일의 민의의 대표기구가 내린 다수의 결정을 번복한 것으로 헌재 결정의 비민주성과 입법부에 대한 사법부의 우위를 입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인민주권, 정책과 법의 결정과정에 대한 인민의 참여, 다수의 결정을 그 중심원리와 규범이라고 이해한다면, 이는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제일의 가치와 규범을 무시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헌법적 제약이 미국헌법의 중대한 결함이라고 보고 있는 왈드론과 같은 법학자가 미국의 제도보다, 법원에 의한 헌법해석을 인정하지 않고 순전히 대의기구인 의회에 결정권을 부여하는 영국 의회제도를 우월하다고 보는 이유는, 미국헌법이 권리중의 권리, 즉 민주적 참여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헌재판결이 의미하는 것은, 대중의 민주적 통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소수의 법전문가와 엘리트들의 판결이 인민다수의 의사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의 개념을 따르면, 그것은 그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말하는 후견주의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헌재가 등장하기 이전시기를 여소야대의 정국으로 특징지었다. 이시기 정치적 대립을 특징짓는 담론의 하나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었다. 그것은, 대통령의 권력을 실제로 견제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개헌을 해서라도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자 했던 의회다수당으로서 야당의 선호를 집약하는 말이었다. 이 말은 17대 총선의 결과로 여소야대 상황이 바뀌면서 더 이상 대통령 비판의 담론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필자가 “제왕적 사법부”라고 말하는 까닭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헌법이 정부 정책과 의회다수의 결정을 일거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권한과 권력을 헌재에 부여했고, 헌재가 이를 실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민주주의에서 참여의 권리를 권리중의 권리라고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어떤 절차적, 내용적 제한으로 구속되어야 하는가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인민 스스로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민 혹은 인민의 대표가 해야 할 것을 법원이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원리에 배치되는 것이며, 그 때문에 제왕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법부에 대해, 사회에서 가장 공익을 대변하고 한 사회가 지향해야할 규범과 가치가 실정법적 내용과 합일되는 것을 상정하는 “법리”에 기반을 두고 그러한 법리에 대한 가장 이성적이고 전문적인 해석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상식의 세계에서 이해하듯이 가장 비정치적이고 정치를 초월하는 상위의 심판을 하고 있는가, 또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근본적 물음을 제기할 때가 되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먼저 왜 헌재의 역할이 특정의 시점에서, 어떤 조건 때문에 커지기 시작했나 하는 문제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3월을 전후한 대통령탄핵소송은 행정부를 장악한 여당과 의회다수를 갖는 야당(들)간의 대립은, 이들 간의 힘의 교착으로 인하여 쉐프터(Martin Shefter)와 긴스버그(Benjamin Ginsberg)가 말하는 이른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를 내용으로 그 정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것은 정치인과 정당의 부패가 정치의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등장하면서 폭로-수사-기소가 정치를 지배하게 되고, 여야간 힘의 대립에 있어 제 3의 힘, 즉 정부 내의 사법기구인 검찰과 사법부의 판결에 의존하는 정도를 크게 높임과 동시에 언론매체가 주도하는 여론의 힘이 크게 증가하게 된 현상을 말한다. 요컨대, 사법부의 역할이 증대하는 것은 정치의 약화 나아가서는 정치의 붕괴가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헌재의 10월 행정수도위헌결정은 17대 총선이 가져온 결과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총선의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사회의 보수적 세력들이 대통령선거에서 연속적으로 패배함으로써 집행부권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최초로 의회다수를 상실함으로써 모든 정치권력에서 지배적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권력상실의 장기화에 따른 보수세력의 위기감은 증폭되었고 제도권 안팎에서 여론동원의 정치와 그에 따른 갈등과 대결이 과거보다 더욱 격렬해졌다. 이러한 양상의 전개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선거경쟁에서 패배한 정당과 그들을 지지한 사회세력들이 헌재 재판관들의 결정권한을 통해 선거에 의한 결과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면서 정치 밖의 영역에서 구원자를 찾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재 재판관들의 판결이 갖는 보다 중요한 측면은 그들의 판결 내용이며 그 정치적 결과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판결은 정치적으로 분명히 갈등적인 사안에 대한 것이었다. 따라서 사법적 심판을 통한 그들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확연하게 이득을 보는 집단/지역과 손해를 보는 집단 사이의 어느 한편을 택하게 되었다. 더욱이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한 헌재의 판결은 이득과 손해를 보는 집단들과 이를 대변하는 정당들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일치하는가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헌재의 판결은 정치적인 결정일 뿐만 아니라 적어도 판결의 결과에 있어서만은 분명하게 당파적이었다.
미국 사법부의 헌법해석에 대해 왈드론이 부정적으로 보는 논거의 하나는 그것이 “불일치”의 성격을 갖는 갈등적 상황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 사안은 기본적으로 법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다. 인민다수 혹은 그 대표에 의해 의회에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져야 할 문제가 9명 재판관들의 다수결에 의한 결정으로 환원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민주주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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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1-18 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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