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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박물관에 돌로 만든 통일신라시대 사자상이 하나 있다. 앞발을 모아 세웠고, 가슴을 당당히 앞으로 내밀고 입을 조금 벌리면서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얼핏 보면 근엄하고 무서운 듯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라. "야, 나 무섭지, 나를 무서워해야 해"하면서 무서움을 강요하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멀리 가지 말고 함께 있어주기를 원하는 듯하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너무나 친근감이 들고 차라리 귀엽다. 바로 옆에 있는 사자부조도 마찬가지다. 심하게는 앙증맞다는 생각이 든다.

▲ 경주박물관에 있는 석사자상, 매우 무섭고 위엄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장난기가 넘쳐 흘러 웃음이 저절로 터져나온다.
ⓒ 신병철
사자는 동물 세계에서 왕중왕이다. 우리나라에는 사자가 살지 않았다. 그러나 고대 중세 시기 우리나라 불교 문화재에는 사자상들이 많다. 불교와 함께 사자상들이 유입되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사자를 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인도나 중국을 왕래하였던 신라의 혜초와 같은 승려들이 사자나 불교 예배물에 새긴 사자상을 보고 왔을 것이다. 사자상은 이들이 보거나 그려 온 사자 모습에 의존해서 만들었다.

불교에서 사자가 등장하는 곳은 많다. 사자가 짐승 세계의 왕이었다면 부처는 사람 세상의 왕이다. 사자가 네 발 짐승 중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일체를 항복시키는 것과 같이 부처 역시 일체를 항복시키는 사람 사자라 여겼다. 부처는 짐승 세상으로 치면 사자였다.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부처님 중에서도 가장 원조 부처인 대일여래를 사자에 비유했다. 대일여래 비로자나불상의 대좌로 사자를 많이 사용했다. 대일여래는 제법의 왕이어서 변화하여 거침이 없으므로 사자를 타고 겁 없이 온 세상에 진리를 전파하고자 했다. 그래서 여러 동물의 왕인 사자를 대좌로 삼았다.

불제자의 대좌도 사자로 하는 경우가 있다. 아난은 불제자 중에서도 가장 지혜로웠다. 아난 존자는 부처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그 말씀을 듣고 외웠다가 후에 기록하여 경전을 완성했다. 불제자들 중에서 바로 아난의 대좌가 사자다. 불교에서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가장 높이 여겼다. 그래서 아난을 사자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인도나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불상 대좌로 사자를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 대신 무덤이나 석탑의 기단, 석등의 중대석이나 하대석, 승탑의 기단에 사자가 많이 등장한다.

▲ 경주 괘릉 앞 석사자상. 당당한 체구의 네 마리 사자가 무덤을 지키고 있다. 얼굴에는 미소가 넘쳐 흐르고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친근감이 배어 나온다.
ⓒ 신병철
사자가 지키는 무덤으로는 경주의 괘릉이 있다. 신라를 중흥하기 위해 독서삼품과를 실시했던 원성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괘릉 앞 쪽에 사자 네 마리가 자리잡고 있다. 하나같이 위풍당당하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무서움은 사라지고 만다. 몸체는 당당하지만 하고 있는 모습은 친근감이 내면화되어 있고 체질화되어 있다.

한 마리는 무섭기는커녕 크게 웃어젖히고 있다. 당당한 체구에 귀여움을 떨고 있다. 아예 한 마리는 다리를 살짝 들고 만면에 웃음을 띠고 같이 놀자고 아양 떨고 있다. 저 당당한 체구들의 귀여움이란! 외유내강인가 아니면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긴다'인가?

무서움과 폭력으로 지키는 것은 일시적이다. 부드러움과 친근감으로 관용으로 지키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화강암으로 조각하는 기술이 가장 절정에 달했던 통일신라시대 사자 중에 법주사 쌍사자 석등에 있는 두 마리 사자를 빼놓을 수 없다. 석등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석등의 몸이랄 수 있는 화사석을 암수 두 마리 사자가 떠받들고 있다.

▲ 법주사 쌍사자 석등의 사자상. 암수 두마리 사자가 가슴을 맞붙이고 천년 이상 저 무거운 석등을 들고 있다. 사자가 아니라 귀여운 강아지다.
ⓒ 국보 도판
까치발을 하고 허리를 최대한 펴서 가슴을 맞붙이고 앞발로 무거운 화사석을 쳐들고 있다. 갈기가 없는 한 마리는 입을 벌리고 갈기가 표현된 한 마리는 입을 다물어 두 마리가 대화하는 것 같다.

800년대 만들었다 해도 1200년 동안 저 두 마리 사자는 "이제 내가 힘쓸테니 니는 좀 쉬어라" "아니다 아직은 괜찮다. 니가 좀 더 쉬어라"하며 서로 양보해가면서 진리의 빛을 발하는 석등을 천년만년 들고 있을 듯하다. 참으로 앙증맞다. 꼬리까지 쳐들고 당당한 몸매에 귀여움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다.

고려시대 석등에도 사자가 등장한다. 경복궁 앞마당으로 옮긴 여주 고달사터 쌍사자 석등 아래쪽에 있는 두 마리 사자도 예사롭지 않다. 복슬복슬한 두 발을 앞으로 내밀고 나란히 엎드려 석등을 받들고 있다. 고개를 돌려 서로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끊임없이 서로 배려하는 인상이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경복궁의 두 마리 사자에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 화암사터 무학대사 부도 앞 쌍사자 석등. 사자 두 마리가 머리를 뺀 온몸을 붙이고 깜찍하게 석등을 받들고 있다. 혼연일체 모습이다.
ⓒ 국보 도판
고려 말 사자는 또 다른 자세다. 포천 회암사터 무학대사의 승탑 바로 앞에 있는 쌍사자 석등은 두 마리 사자가 뒷발을 구부리고 앉아 몸 전체를 맞붙이고 앞발로 힘껏 석등을 받들고 있다. 두 마리가 완전히 석등 떠받치는 일에 매몰되어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다. 저런 혼연일체 없이 어떻게 저 긴 시간동안 저렇게 무거운 돌덩이 등을 들고 있을 수 있을까?

한 마리 사자가 외롭게 석등을 받들고 있는 충주 중원의 청룡사터 석등의 사자 역시 귀엽기는 마찬가지다. 토실토실한 사자가 엎드려 군말 없이 영겁의 시간이라도 진리를 받들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사자가 앙증맞으니 석등 전체가 앙증맞다. 산골짜기까지 겨우 찾아간 청룡사터에서 저 석등 하나 만나고 나면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 청룡사터 석등. 석등 전체가 깜찍하고 앙증맞다. 산골짜기 이런 석등을 만나면 더는 바람이 없을 것이다.
ⓒ 국보 도판
부처님 무덤인 탑에도 사자는 많이 등장한다. 역시 탑의 몸을 받치고 있는 기단부에 사자를 넣어 부처님이 전지전능한 전륜성왕임을 나타내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에 만든 '화엄사 네 마리 사자가 받들고 있는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다.

네 마리 사자는 모두 앞발과 뒷발을 땅에 붙이고 예쁜 목걸이를 한 가슴을 당당하게 내밀고 머리로 석탑을 받치고 있다. 네 마리 표정이 각각 다르지만, 가만히 보면 모두 귀엽다. 네 마리 사자 중앙에 스님 한 분이 서 있다. 스님이라기보다 부처님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부처님이라면 비로자나불 대일여래일 가능성이 많다.

▲ 화엄사 4사자 석등과 사자 얼굴 모습. 통일신라 시대 조각술이 절정에 달했을 때 사자들의 모습으로 자신만만하며 건실하다.
ⓒ 국보 도판
고려시대에도 '사자 네 마리가 떠받친 석탑'을 만들었다. 아마도 화엄사 석탑을 모방했을 것이다. 충북 제원군 송계계곡 빈신사터에 있는 다층석탑은 키가 작달막한 사자 네 마리가 귀염을 떨면서 부처님 몸인 석탑을 받들고 있다. 정확히 1022년에 만들었다고 탑에다 새겨 넣었다.

사자들은 석탑을 별로 무거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놀기 삼아 받치고 있다는 듯이 자연스럽다. 중앙에는 머리가 치렁치렁한 비로자나부처님이 앉아 있다.

▲ 빈신사터 4사자 다층 석탑과 사자상. 고려의 사자상이다. 송계 계곡의 이 사자상들은 귀염을 떨면서 편안히 탑신을 받들고 있다.
ⓒ 국보 도판
사자는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고매한 스님의 사리를 모신 무덤인 승탑에도 많이 새겨졌다. 통일신라시대 후기부터 선종이 들어오면서 고매한 스님을 부처 수준으로 올리며 지방 세력이 정치적 독자성을 확보해갔다. 이 시기부터 승탑이 제작되었는데, 이런 승탑에 사자가 기단에 부조로 들어간 것이다.

절대 힘과 권위를 지닌 사자가 스님 몸을 받들고 있는 형상에서 스님을 절대 존재로 인식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 갑사 부도와 사자상들의 모습. 부도 기단부에 사자들이 온화하고 익살스런 모습으로 새겨 있다. 동자와 한패가 되어 있다.
ⓒ 국보 도판
실제로 사자는 매우 무섭다. 그래서 부처님의 절대 권위와 전지전능을 사자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자상에 나타난 사자는 귀엽다. 무섭게 표현한 듯하지만 귀엽기 짝이 없다. 무서움을 통해서 절대 진리를 전달할 수는 없다. 끝없는 관용과 허용 그리고 포용이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길임을 사자들은 말해주고 있다.

▲ 괘릉의 장난기 발동한 사자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의 사자상. 무서운 사자가 아니라 깜찍한 강아지다.
ⓒ 신병철
법주사 쌍사자 석등의 사자는 사자가 아니라 앞발을 쳐들고 입을 벌리고 있는 발바리다. 저 당당한 체구를 가진 괘릉의 사자는 같이 놀아달라고 보채는 강아지 같다. 사자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섭다는 사자를 저렇게 귀엽고 앙증맞게 표현해 버렸다.

우리의 자연친화적 경향이 사자에도 묻어나오고 말았다. 자연과 맞대응해서 싸워서 이기려 하지 않고 자연 속에 동화되어 버리고 싶은 우리의 문화 경향이 무서운 사자를 발바리로 강아지로 만들고 말았다.

▲ 경주 토함산 장항리절터 금당 불상대좌에 새겨진 사자상, 한잔 걸쳤는지 기분이 엄청 좋다. 무서움은 완전히 사라지고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가 되고 말았다.
ⓒ 신병철
이런 우리 사자는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경주 토함산 뒤쪽 장항리 절터에는 5층 석탑과 금당지의 기단이 남아 있다. 이 금당지 가운데 불상 대좌가 있는데, 이 대좌에 새긴 사자상은 한잔 걸쳤는지 기분이 엄청 좋다. 앉은 자세에서 한쪽 발까지 들고 춤추고 있다. 팔과 다리는 그냥 한잔 걸치고 추는 춤 자세다. 이 정도 되면 권위고 무서움이고 다 사라졌다. 너무나 친근한 이웃 아저씨 모습이 되고 말았다. 사자가 술을 다 마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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