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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도산 안창호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진실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잿빛 투성이 세상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이제는 구분하기도 힘들다" 하는 투의 고백을 하는 사람을 요즘은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당사자 또한 거짓 없고 진실한 사람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든 세상이다.

이러한 현실이기에, '해방 때 도산 안창호 선생이 살아 계셨으면 우리 나라의 현재 모습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 <안창호 평전>(안병욱, 안창호, 김구 외 씀) 표지
ⓒ 청포도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고 가르친 도산 안창호. 그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다룬 여러 제목의 책들 가운데 최근에 나온 <안창호 평전>을 읽었다. 이 책은 도산 관련 20권의 서적을 참고도서로 삼았는데, 읽기 편하게 짜여 있어 좋다.

'1부 투쟁 생애편'과 '2부 국민 훈련편'으로 쓰인 평전 외에, 안병욱 도산 아카데미 연구원 설립대표의 '안창호 일화', '안창호 일기', '안창호 편지', 백범 김구 선생의 '도산을 애도하는 글'이 함께 실려 있다.

'안창호 일화'에는 도산의 사람됨을 보여주는 글 10여 편이 들어 있다. 그 가운데 '공책 한 권 연필 한 자루'란 제목의 일화를 간추려 보면 이렇다.

59년 4개월 동안의 도산의 생애 가운데 도산이 처자와 함께 지낸 기간은 13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서 결혼식을 올린 뒤 함께 도미한 이후 독립협회 시절의 5년간, 국민회 시절의 8년간뿐. 1919년에 상해로 간 뒤엔 가정을 다시 돌볼 기회가 없었는데, 1926년에 잠시 미국에 들렀을 때 로스앤젤레스의 YMCA 도산 송별식장에서 도산은 자기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아내에게 치마 하나, 저고리 한 감 사 준 일이 없었고, 필립에게도 공책 한 권, 연필 한 자루 못 사주었다. 그러한 성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랬는데, 여간 죄스럽지 않다."

어쩌면 도산에게는, '민족 전체가 가족'이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 민족을 바라보는 도산의 시각은 매우 겸허하였다고 한다. '손이 떨려서 시무(視務)할 수가 없소'란 제목의 일화는 이렇다.

'도산은 겸허한 사람이었다.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일생을 살았다. 오만 불손한 마음과 유아독존의 영웅주의적 태도는 도산에게서 추호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두뇌와 언변과 통솔력과 용기와 덕성이 뛰어난 인격이었지만 절대 자만하거나 뽐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앞에 나서서 떠드는 사람이 아니고 뒤에 서서 묵묵히 자기 직분을 다하는 분이었다. 그는 스스로 높이는 자가 아니고 스스로 낮추는 자였다.

(중략)

1919년 도산은 상해 임시정부의 노동총판으로서 나랏일을 보았다. 모두 그를 대통령 대리의 후보로 추천하였다. 도산은 그 자리를 끝내 사양하였다. 그러나 결국 도산을 대통령 대리로 선정하였다. 그때 도산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잠시라도 대통령 대리의 명목을 띠고는 몸이 떨려서 시무할 수가 없소."

이것이 나라의 중책을 맡은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국사를 담당하는 자의 정신 자세다. (중략)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국가의 기강이 흐려졌고 위정자와 공무원의 마음가짐이 땅에 떨어졌다. (중략)

악인이 선인을 구축하는 사회적 그레샴의 법칙이 창궐한다. 그럴수록 겸허한 마음, 겸허한 사람이 아쉽다.'


'단정한 태도로'란 제목의 일화에서는 1937년 6월 그믐께 검거되어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고생하다가 11월에 용수를 쓰고 수갑에 채워진 채 검사국으로 송치, 그곳에서 취조를 받은 뒤에 서대문 형무소로 가서 소독당하던 당시의 장면을 이렇게 다루고 있다.

▲ <안창호 평전>에 수록된, 동우회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당시의 도산 안창호(1937년 11월 1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것)
ⓒ 청포도
그때의 광경을 함께 수용되었던 장이욱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동지 일동을 형무소 취조실에서 옷을 홀딱 벗긴 다음 마룻바닥에 꿇어앉히고, 소위 소독 행사를 집행했다. 그 추운 날 해질 무렵의 귀신만 사는 듯한 형무소 광경은 음울하고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간수들은 거물급을 대량으로 꿇어앉히고 지배하는 바람에 의기가 양양해졌다. 그 차디찬 소독물을 펌프로 막 뿜어내는 통에 유치장에서 파리할 대로 파리해진 피골상접한 동지들의 나체는 소름이 끼쳐서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러나 도산 선생은 그야말로 티끌 하나 까닥하지 않고 단정한 태도로 그 차디찬 소독물 펌프 시련을 받았는데 도리어 시원한 기분을 느끼시는 듯이 태연자약하였다. 도산 선생도 역시 다른 동지와 같이 쇠약한 몸에 그것이 견딜 수 없이 춥고 쓰라렸겠으나, 민족적인 체면과 지도자의 위신을 위하여 열화 같고, 또 강철 같은 의지력이, 그 시련을 단연한 태도로 극복하게 하였던 것이다."

(중략)

도산이 추운 감방에서 차디찬 소독수의 세례를 받았을 때 태연자약한 태도와 단정한 자세로 그것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평소의 의지력의, 수양의 힘이었다. 또 민족의 지도자요, 혁명 투사로서 일본인들 앞에서 창피한 꼴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결심과 자기를 믿고 따르는 여러 동지와 제자들에게 어지럽고 추한 모습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도산으로 하여금 늠름한 태도를 취하게 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일인 간수들에게서 "기다나이야츠!(더러운 자식)"라고 욕을 들을 만큼 온몸에 병이 든 것은 대전 감옥 생활과 종로 유치장 생활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7가지 병이 생겼다 하오'라는 제목의 일화는 병들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도산의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대전 감옥 생활로 그의 숙환인 소화불량이 더욱 악화되었고, 폐와 간이 나빠졌다. 도산의 임종시의 병명은 「간경화증 겸 만성기관지염 겸 위하수증」이었다. (중략) 도산은 선우씨의 손을 잡고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입 안이 마르고 혀가 잘 돌지 않아서 말을 못하였다. 몸이 극도로 수척하여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수염은 희고, 머리의 반은 누렇고 반은 희어 황백색이었다. 물을 숟가락에 떠서 입술에 축여드리니 비로소 말을 하였다.

"너무 슬퍼하지 마오. 부인과 아이들 평안하오? 이렇게 어려운 곳을 오니 참 반갑소. 내 홑이불을 들고 내 다리와 몸을 보오. 이렇게 되곤 사는 법이 없소. 나는 본래 심장병이 있는 중 대전 감옥에서 위까지 상한 몸으로 이번 다시 종로서 유치장에서 삼복 염천 좁은 방에 10여 명이 가득 누웠으니, 내 몸은 견딜 수가 없었소. 의사의 말이 나는 지금 일곱 가지 병이 생겼다고 하오. 지금 이가 상하고 치아가 빠졌고, 폐간이 상하고, 복막염, 피부염 모두 성한 곳이 없소. 그 종로서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나는 지금 아무것도 먹지 못하니, 전신에 뼈만 남고 피가 말랐소. 나를 일으켜 안아 주시오."'


요즘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학교에 가 담임선생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초등학생들이 적지 않는 모양이다. 도산의 가정교육에 얽힌 일화는 자기 자식을 "오냐 오냐" 기르는 그런 부모들에게 따끔한 교훈을 준다.

'어느 날 필립은 친구네 집에 놀러갔었다. 곧 돌아온다고 도산에게 약속을 했다. 필립은 친구네 집에서 마차를 타고 노는 데 열중하여 아주 늦게야 돌아왔다. (중략) 그는 약속을 어기고 늦게 돌아온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는 약속을 어기고 늦게 왔느냐, 자기가 한 일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잘못하지 않았어요."

도산은 채찍으로 아들의 종아리를 때렸다.

"아직도 잘못 안 했느냐."

도산은 필립이 잘못했다고 말할 때까지 종아리를 때렸다. 이러한 이야기는 아버지로서의 근엄한 면을 나타낸다.


그런 한편, 1930년 유일당 결성으로 바쁜 와중에도 자녀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에는 도산의 인자한 가르침이 잘 나타나 있다.

공부 중에 심리(心理)를 화평(和平)케 하는 공부가 가장 큰 공부이다. 왜? 가장 큰 행복인 때문에. 괴로운 환경에 처한 자가 심리의 화평을 더욱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언제던지 스마일.


'안창호 편지'에서는 도산의 서간문 중 가족에게 보낸 편지 몇 편을 골라 되도록 원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놓았다고 한다. 여기에는 고뇌를 이겨내는 그의 따스한 마음과, 참된 자녀 교육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너의 근본 성품이 속이지 않고 거짓말 아니하고 진실하니 이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 되기가 쉬우리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됨에는 진실하고 깨끗한 것이 첫째임이라. 너는 스스로 부지런한 것과 어려운 것을 잘 견디는 것을 연습하여라. 네가 책을 부지런히 보느냐, 쉬지 말고 보아라. 그러나 아무 책이나 보지 말고 특별히 좋은 책을 택하여 보아라.
좋은 사람 되는 법이 좋은 친구를 잘 가리어 두며 좋은 책은 잘 가리어 보는 두 가지가 매우 요긴하니라. 두 종류로 책을 택하여라. 첫째는 좋은 사람들의 사적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 관한 책은 좋은 책이오, 둘째는 네가 목적하고 배우고 지식을 돕는 데 관한 책이니라. 이 두가지 성질을 표준하여 책을 보고 한국 글과 책을 잘 익히어라. 내가 주는 말을 네가 즐거운 마음으로 받을 줄 믿노라.' -'1920년 8월 3일 홍콩에서 아들 필립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내가 이 경우에 처한 것을 위하여 근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기고 집안일을 돌아보며 아이들을 교양하는 데 수고하는 것으로 낙을 삼으시오. 당신이 만일 수심하는 빛을 띠우고 있으면 집안에 화기가 없어지고 따라서 아이들의 신체발육과 정신발달에 큰 영향을 줄 터이니 내게 관한 모든 것은 아예 없어진 양으로 일소하여 버리고 가정에 유쾌한 공기와 아이들의 활발한 기상을 만들기로 주의하시오. (중략)

당신은 그리 놀라거나 슬퍼하거나 할 것이 없이 태평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교양함에 전심하소서. 내 친구 중 나보다 먼저 세상을 작별하고 간 사람이 얼마입니까. 옥에서 목숨을 마친다 하여도 한할 것이 없습니다.

(중략)

집안 생활에 대하여는 본래도 곤란한데 지금 특별히 불경기의 시기에 처하여 여간 곤란하리오. 그러나 이것도 평생을 받아보는 바 견디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을 것입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필영이를 제한 외에 네 아이는 무엇을 하던지 거리에 나가 신문지를 팔더라도 죄다 일전씩의 벌이라도 버는 일을 실행케 하고 이 불경기 시기를 이용하여 절용을 공부하게 하소서.' -'1933년 6월 1일 대전 감옥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도산을 애도하는 글'에는 도산 10주기에 도산의 업적을 기리며, 백성의 굶주림과 해방은 되었어도 외세에 의한 조국의 분단에 대하여 고뇌하는 백범의 내면이 뼈저리게 담겨 있다.

도산의 일기는 현재 1920년 1월부터 8월까지와 1921년 1월, 2월분만이 남아 있다. <안창호 평전>에 또한 수록되어 있는 '안창호 일기'의 일부는 상해 시대의 도산의 생활과 사상을 아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요, 상해 임시정부의 내막과 사회 정세와 활동 인물의 동향을 아는 데 귀중한 역사적 문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총리 고사'의 사정과 심정을 고뇌하여 담은 1921년 2월 일기 가운데는, 훗날 춘원 이광수의 친일 행각을 예견한 듯한 2월 18일(금)의 일기가 포함되어 있다.

이광수·허영숙군을 방문하다. 2인이 같이 본국으로 갈 뜻을 말하는지라 내 이르기를 지금 압록강을 건너는 것은 적에게 항서(降書)를 제납(提納)함이니 절대 불까요 군(君) 등 양 개인의 앞길에 대화(大禍)를 만드는 것이라 속단적으로 행치 말고 냉정한 태도로 양심의 지배를 받아 행하라 하다.

<안창호 평전>은 간추려진 일화, 편지, 일기 등을 통한 감동과 교훈 외에도, 해방을 7년 앞둔 1938년 3월 10일 밤 12시에 눈을 감기까지의 도산의 생애를 '1부 투쟁 생애편'과 '2부 국민 훈련편'으로 구성하여 300쪽 가까운 분량에 담아 놓았다. 또 70여 점의 자료사진이 더불어 담겨 있어 그 시절의 도산 모습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 한 권의 명저가 우리의 생애를 바꾸어 줍니다"(안병욱, 서영훈)라는 추천사가 <안창호 평전>의 값어치를 알려주고 있듯이, 이 책이야말로 혼미(昏迷)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 시절에 꼭 읽어두어야 할 책의 한 가지가 아니겠는가. 도산의 뼈 있는 말씀 한 가지로 서평을 마무리한다.

"너도 믿고 나도 믿자. 너도 주인이 되고 나도 주인이 되자. 공(功)은 '우리'에게로 돌리고 책임은 '내'게로 돌리자."

안창호 평전

안병욱.안창호.김구.이광수 외 지음, 청포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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