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 오종렬 민중연대 상임대표가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책을 전달하고 있다.
ⓒ 철도노조
국보법에 의해 삶이 파괴된 문학청년의 삶을 다룬 소설이 출간된 가운데 작가와 출판사가 국회의원 299명 전원에게 소설을 전달해달라며 국보법폐지국민연대에 전달했다. 작가는 "전 세계의 조롱거리로 비난을 받았던 국보법을 완전 철폐해달라"고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했다.

소설가 이인휘(47·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씨의 <내 생의 적들>(실천문학사) 출판기념회가 15일 저녁 7시 서울 용산구 철도웨딩홀에서 열렸다. 출판기념회에는 오종렬·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를 비롯해 정종권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 노동운동가 김승호씨, 허영구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처장, 이행자 시인, 문학평론가 홍기돈 등이 참석했다.

김승호 사이버노동대학장은 축사에서 "24년 전, 5·18 전두환 군사쿠데타 당시 상황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후일담도 영웅담도 아닌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형상화되어 있다"며 "휴머니즘이 절실히 요청되는 지금, 시대정신을 생생하게 담은 이 소설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8년 동안 소설을 쓰지 못해 마음 고생이 많았던 이인휘 동지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격려했다.

정광훈 상임의장은 "소설가는 죽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작품이 위축됐다, 소설가들이 나서서 진보의 시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으며, 유치상 철도노조 사무처장은 "(이인휘씨가)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 철도노조 민주화를 이루게 했다, 하반기 단체교섭에서 승리해 보답하겠다"고 철도노조와 작가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했다.

작가와 실천문학사는 국회의원 299명에게 국보법 폐지에 앞장서달라는 뜻으로 소설을 전달할 예정이다. 작가와 출판사는 출판기념회에서 소설 299권을 국보법폐지국민연대에 전달했고, 오종렬 상임대표는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해달라며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책을 전달했다.

작가는 국회의원들에게 "전 세계의 조롱거리로 비난을 받았던 국보법은 민족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완전 철폐되어야 한다"며 "의문사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의원 여러분들이 앞장서달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현애자 의원은 "소설의 주인공이 겪었던 80년 5월의 고통을 우리 모두가 겪었으며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악법에 의한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작가의 열망을 잊지 않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명을 중심으로 반인권, 반민중, 반민주적인 국보법을 올해 안에 반드시 철폐시키겠다"고 다짐했다.

"24년의 기억 더듬는 동안 눈물 쏟아져... 민중·생명은 빛을 찾아가고 있다"

▲ 작가 이인휘씨. 그는 자신의 삶과 고통이 투영된 '내 생의 적들'을 쓰는 동안 서럽고 고통스러워 눈물이 쏟아졌다고 밝혔다.
ⓒ 철도노조

소설가 이인휘는 누구?

문학청년이었던 작가는 80년 5월 학내에서 있다가 안기부와 경찰에 끌려갔다. 이 일로 인한 충격으로 명지대 무역과 3년을 중퇴한 그는 농촌과 공장을 떠돌며 방황하다 1984년 말 노동운동가들을 만나면서 노동운동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친하게 지내던 신흥정밀 노동자 박영진씨가 1986년 파업 도중 분신해 숨지자 추모사업회를 만드는 일에 동참했으며 1988년 문학계간지 <녹두꽃>에 '우리 억센 주먹'을 발표하며 소설가가 됐다.

장편소설은 광산노동자의 투쟁과 삶을 담은 <활화산>을 비롯해 <문밖의 사람들>, <그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가 있다. 작가는 1996년 소설 작업을 중단하고 구로공단으로 돌아가 박영진 추모사업회 일을 맡았고 그 과정에서 진보생활문예지인 <삶이 보이는 창>을 창간, 6년 동안 이 문예지를 펴내는 일에 전력했다. 또한 2002년 사단법인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를 만든 뒤, 이 일들을 후배들에게 이어주고 8년만에 소설 <내 생의 적들>을 펴냈다.
8년만에 펴낸 신작 <내 생의 적들>의 상당 부분은 그가 겪어온 삶이며, 주인공 '김광훈'은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가난 때문에 야학에서 공부하다 어렵게 대학에 입학한 그는 시인 지망생이었다. 지난 80년 5월 17일, 학내에서 숙식을 해결하다 이유도 모른 채 안기부 요원과 경찰에게 총구로 겨누어진 채 끌려가 고초를 겪기 전까지는 말이다.

국가권력의 폭력에 만신창이가 된 그는 광주항쟁의 끔찍한 소식을 듣고 자원 입대했다. 군을 제대한 뒤에도 복학하지 않은 채 농촌에서 돼지 키우는 일을 하는 등 현실을 도피하며 2년간 방황했다. 1984년 먹고살기 위해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 취직한 그는 노동운동가들을 만나면서 민중의 삶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갔고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벗이 돼 24년간을 함께 살아왔다.

작가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4년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고 말했다. 일주일만에 춤을 추듯 글이 써지면서 원고지 300매를 썼지만, 견딜 수 없는 서러움과 아픔이 찾아오면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1년 동안 작품을 중단한 채 방황하던 그는 사찰에 들어간지 3주만에 원고지 300매를 쓴 뒤에야 '내 생의 적들'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고 산고(産苦)의 아픔을 고백했다.

"지난 24년간의 기억들이 너무 고통스럽고 서러워서 소설을 쓰는 동안 눈물이 쏟아졌다. 비가 쏟아지던 날, 버스를 타고 가리봉을 지나는데 '구로 1∼3공단' 이정표가 '디지털공단'으로 바뀐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주변에 사는 민중들은 실직자에서 언제 노숙자로 바뀔지 모르는 끔찍한 상황인데 세상이 디지털로 바뀐 것처럼 서있는 것을 보고 싸늘해졌다. 구로공단에 들어온지 24년. 세상은 진짜 변했는가? 민중의 삶과 싸움은 부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묻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

산업화의 심장부였던 구로공단, '공돌이'와 '공순이'로 비하(卑下)돼 불리던 노동자들의 눈물과 투쟁이 서려있는 구로공단이 용도 폐기되고 있는 현실을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좀더 나은 삶을 위해 몸부림치던 민중들의 삶은 나아진 게 아니라 삶의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운동가들은 민중을 잊어버리고 국가는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민중의 시대는 결코 끝날 수 없다"고 항의했다.

그는 또한 "민중은, 생명은 빛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민중들은 빛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데 지식인들, 심지어 운동권마저도 자기들만의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민중을 외면하고 있다"며 "정치권력이든 운동세력이든 민중을 배반하는 세력은 민중들에게 외면 당할 것이다, 빛을 찾아가는 민중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때 나와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가 이인휘씨와 판박이 주인공 김광훈
<내 생의 적들> 리뷰

▲ 출판기념회 참석자들에게 작품에 저자 서명을 해주고 있는 작가.
ⓒ철도노조

도시빈민의 자식으로 태어난 주인공 김광훈은 공장과 야학을 오가며 어렵게 공부해 겨우 대학에 진학한다. 학교 서클룸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는 가난뱅이 시인 지망생인 그는 끔찍한 현실과 상관없이 살기 위해 초현실주의 작품에 푹 빠진 채 살아간다.

1980년 5월 17일 서클 친구이자 총학생회 간부였던 이상현과 함께 있다가 느닷없이 들이닥친 기관원들에게 끌려가면서 몽상의 삶이 깨진다. 상현은 의문사로 죽고 그는 심한 고문을 당한 뒤 강제징집으로 군대에 끌려간다. 국보법 제7조 '고무찬양죄'를 뒤집어쓴 채 남한산성에 갇힌 그는 첫번째 연인인 오연희가 면회 오다가 교통사고로 숨진 사실을 나중에 알고 괴로워한다.

형기를 마치고 세상에 합류했지만 그는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에 불과했다. 안기부는 유린된 삶마저 용납하지 않은 채 감시했고 결국 그는 친구네 시골집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거들며 지낸다. 파탄 난 인생의 늪에서 허우적이는 그에게 총학생 간부를 지내다 의문사한 이상현의 여동생 이정혜가 찾아온다. 그녀는 오빠의 의문사를 규명하기 위해 세상과 맞서 싸우는 전교조 소속 교사다.

그는 이정혜를 통해 자신이 이유도 모른 채 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겪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상현을 고문하다 죽게한 그들이 죽음을 은폐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그는 고심 끝에 양심선언을 한다. 그리고 "국보법이라는 족쇄가 목에 걸려있는 한 나는 국가로부터 감시와 격리라는 또 다른 감옥에 갇혀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글을 무기로 부당한 세상과 싸운다.

벌통집과 공동화장실, 연탄재와 쓰레기, 가리봉 오거리와 구종점 인력시장…. 24년이 흘렀음에도 거의 변하지 않은 가리봉, 이처럼 민중의 삶은 24년 전과 별반 바뀌지 않았는데 구로공단 일번지는 디지털 일번지로 바뀌어버렸다. "나약하고 불안한 내 안의 적들과 내가 상관없는 것들이라고 외면했던 내 밖의 적들"이 가한 모순과 고통을 헤쳐온 그는 가리봉에서 "그 어떤 힘도 생명을 찾아나가는 존재의 빛을 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중년으로 변한 광훈은 이렇게 믿는다.

"세상이 늘 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변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화들짝 놀랄 만큼 변하기도 하고, 때로 좋게도 때론 나쁘게도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꽃과 나무들이 생명의 빛을 좇아서 움직이듯 세상도 희망을 찾아 움직인다고 믿고 있습니다. 비록 소수의 힘이 다수를 억압하는 사회가 이어져왔다고 해도, 언젠가는 다수가 존중받는 그런 사회가 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에필로그)

내 생의 적들

이인휘 지음, 실천문학사(2004)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