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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7월 김종규 부안 군수의 핵폐기장 유치신청으로 본격화된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
ⓒ 오마이뉴스 김태형

핵폐기장(원전수거물 관리센터) 부지선정을 위한 예비신청 절차가 무산됐다. 정부는 지난 5월말 유치청원을 낸 7개 시·군(10개 지역)을 대상으로 유치신청을 받으려 했으나, 마감일인 15일까지 단 한 곳의 지자체도 유치신청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2월 신규 공고안을 통해 읍면동 주민의 30% 이상의 서명만 받으면 유치청원이 가능하고, 주민 유치청원이 없더라도 지방의회가 의결하면 유치신청이 가능하게 하는 등 유치 청원·신청 기준을 완화했으나, 결국 해당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발만 확인한 채 부지선정 절차를 마쳐야 했다.

그동안 꾸준히 정부의 핵폐기장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던 반핵국민행동은 15일 밤 긴급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무책임하고 비민주적인 정책으로부터 지역공동체를 지켜온 지역 반핵운동의 작은 승리"라며 이번 결과를 평가했다.

산자부 "부안 핵폐기장 선정 가능성 남아있다"

사실 핵폐기장 부지선정에 어떤 지자체도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지난 5월 말 경북 울진, 전남 장흥, 완도, 영광, 전북 고창, 군산, 인천 강화 등 7개 지역 주민에게서 유치청원을 받은 직후부터 제기됐다.

7월 말에는 7개 청원 지자체 중 전북 군산을 제외한 6개 시·군 지자체장이 핵폐기장 유치신청 의사가 없다는 것을 공식확인하기도 했다. 강원 삼척, 전남 진도가 새로운 후보지로 거명되기도 했으나 이 지역 역시 해당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유치신청이 불가능했다.

정부는 지난 2월 신규 공모안을 발표하며 전북 부안 위도 지역의 경우는 이미 신청서를 낸 것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부안 지역 주민들은 공고안이 나오기 직후 핵폐기장 유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통해 90%가 넘는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16일 오전 10시 가진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예비신청 단계로 남게 된 부안의 경우 부안주민, 자치단체 등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해법을 10월중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혀 정부가 여전히 부안을 핵폐기장 유치 지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반핵국민행동은 "핵폐기장 문제는 단지 일부 지자체의 신청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이번 부지선정 예비신청 무산에서 드러났다"며 "핵폐기장 문제의 근본 문제인 핵발전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위해 부안 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기존 부지선정 절차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승인 절차를 전면 중단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 부안 반핵민주광장에 새워진 핵폐기장 투쟁 기념 조형물.
ⓒ 오마이뉴스 김태형

핵에너지 정책 전반 다루는 협의기구 구성 추진

한편 이번 예비신청 마감 전에 열린우리당은 핵폐기장 선정 문제를 포함해 핵에너지 정책 전반을 다루는 '사회적 협의기구' 구성을 제안, 문제 해결을 위한 공론화 작업에 나섰다.

열린우리당 국민통합실천위원회(위원장 이미경 의원)는 지난 9일 "핵폐기장 부지 선정 추진일정을 중단하고 정부·환경단체·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반핵국민행동은 12일 긴급회의를 열고 열린우리당의 제안을 일단 수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여당과 환경단체의 이런 합의는 무엇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으로는 지난 18년 동안 실패를 거듭해온 핵폐기장 부지설정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투명한 민주절차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핵폐기장 문제는 결국 '부안사태'와 같은 극단적인 갈등만을 불러올 뿐이라는 공감대가 양측 간에 형성된 것이다.

협의기구가 구성된다면 핵폐기장 선정 문제, 신규 핵발전소 건설 등 당면 정책과제뿐만 아니라 대안에너지 개발, 장기 가동된 핵발전소 처리 문제 등 중장기적 정책 방안 등에 대해서도 폭넓은 공론화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협의기구의 구성에 대해 핵에너지 주무부처인 산자부 안에서도 아직 명확한 입장 정리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16일 브리핑에서 열린우리당의 제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당의 의견을 받아놓고 있으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논의가 진행중"이라고만 밝혔다.

이 같은 산자부의 입장은 앞으로 핵 정책 관련 협의기구가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이 기구의 역할과 법적 권한, 합의 과정 등을 놓고 참여 주체간의 이견이 적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환경운동연합은 15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핵폐기장은 현대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절대 위험시설이라는 사실을 산자부도 시인하고 앞으로 더 이상은 돈을 앞세운 핵폐기장 추진 정책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며 "핵폐기물이 나오는 핵발전소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위해 지혜를 함께 모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핵폐기장 부지선정을 둘러싼 정부와 환경단체, 지역주민 간의 갈등은 정부가 오는 10월 추가 신규공고안을 제출하기 전까지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안 위도 핵폐기장 선정 작업이 백지화되지 않았고, 울산 울주군 신고리에서 핵발전소가 예정대로 건설되고 있다는 점에서 핵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언제라도 표면화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부안 사태·핵폐기장 선정무산 일지

ⓒ오마이뉴스 김태형
▲ 2003년
- 5월 1일 : 산자부, 핵폐기장 유치신청 공고
- 7월 9일 : 부안군의회 핵폐기장 유치 반대 결의
- 7월 14일 : 김종규 부안 군수, 산자부에 핵폐기장 유치신청서 제출
- 7월 16일 : 부안지역 초·중고생 등교 거부
- 7월 24일 : 산자부, 핵폐기장 후보지로 위도 최종 선정
- 7월 26일 : 핵폐기장 반대 촛불집회 시작
- 7월 29일 : 청와대 국무회의 현금보상 배제 확인
- 8월 13일 : 부안주민 4천여 명 서해안고속도로 점거
- 9월 8일 : 김 군수 내소사서 주민들에게 폭행 논란
- 11월17일 : 정부-대책위 협상 결렬, 부안 읍내 대규모 시위
- 11월19일 : 부안주민 대규모 촛불집회, 서해안고속도로 점거
- 11월20일 : 정부 '부안사태 엄정대처' 선언. 경찰 70개 중대 8천여 명 배치
- 12월12일 : 윤진식 산자부장관 책임 사표, 이희범 새 산자부장관 임명

▲ 2004년
- 2월 6일 : 정부, 부안이외 지역 원전센터 유치청원 접수
- 2월 11일 : 정부 완화된 조건으로 유치 청원·신청 가능한 신규 공고안 발표.
- 2월 14일 : 부안 주민 자체 주민투표 실시, 반대 91%
- 5월 31일 : 부안 외 7개 지역 지자체 핵폐기장 유치청원
- 7월 30일 : 전북 군산을 제외한 유치청원 6개 지역 지자체장 유치신청 의사 없음을 공식 확인함.
- 9월 15일 : 핵폐기장 부지선정 예비신청 지자체 불참으로 무산
- 9월 16일 : 산자부, 현행 핵폐기장 부지선정 절차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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