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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임명동의안 인사청문회에서 김영란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영란 대법관 후보는 11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사형제와 호주제에 대한 폐지 입장을 명확히 하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대해서도 개정 입장을 보였다.

김영란 후보는 "사형제도는 교화를 포기하는 제도"라며 "형평의 문제가 있어서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SOFA 문제와 관련, "환경오염 규제, 미군 재판권 행사 등 문제 규정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미관계를 동반자적 관계로 재정립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도 "법을 빨리 만들어서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인도적"이라고 답했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점쳐지고 있는 김영란 후보는 호주제나 부계성씨제도 등 가족법 개정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 김영란 후보자가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 후보는 호주제 폐지에 대해 동의의 뜻을 밝히며 "이번 국회에서 꼭 통과시켜 주시길 하는 바람이 있고, 올해 안에 폐지되지 않을까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녀가 아버지 성 따르는 게 남녀평등 원칙에 어긋나냐"는 질문에도 "법감정의 측면을 고려해야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나 생물학적 연구결과는 그렇다(어긋난다)"고 답해 기존 보수성향의 대법관에 비해 뚜렷한 진보적 색채를 드러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진상규명법 재개정,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 등 진보적 사회단체가 요구하는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아직 더 논의가 필요하고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내용"이라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영란 후보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남북환경이 많이 변하고 있어 어떻게든 손질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면서도 개정·폐지·대체입법 등 구체적인 '손질'의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대북 인식'에 대해서도 "대치하는 면도 있고 교류하는 면도 있다"며 이중적인 입장을 보였다.

친일반민족진상규명법에 대해서는 "대상을 너무 확대해서 당시의 모든 조선인들이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며 보수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김 후보는 이 대목에서 다소 난처해하며 말을 아꼈는데,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이 김 후보 시어머니의 일제 강점기 국민학교 교사 경력을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주 의원은 "당시 교원들은 황민화 교육에 적극 협력했는데 후보자가 반민족자의 며느리라면 가문의 명예에 손상이 있지 않겠냐"고 김 후보를 몰아붙였다.

이날 김영란 후보는 자신의 성향에 대해 "사람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다를 수 있고 성향을 이름붙인 다음에는 판결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자신을 '진보'라고 규정지은 시민단체 추천 평가에 대해 일정 정도 거리를 두었다.

일부 의원들도 "김 후보를 진보적 성향으로 판단하기 어려운데 대법원 다양화 측면에서는 더 파격적이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참고인으로 출석한 조국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에게 김영란 후보의 추천 근거를 따져묻기도 했다.

조국 소장 역시 "김영란 후보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온건보수가 정확하다"며 "지금은 '진보 남성'보다 '온건보수 여성'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고 답했다.

주호영 의원 "남성 역차별 아니냐"... 조국 소장 "의도적 여성 임명 필요"

한편 여야 의원들은 이번 인사제청의 서열파괴를 놓고 찬반 논쟁을 벌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나친 서열파괴는 구성원의 사기저하, 조직의 분열과 갈등을 일으킨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서열주의가 대법원을 국민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병폐요인"이라며 이에 맞섰다.

▲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이 김영란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서열파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은 판사 출신의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 주 의원은 "기수를 뛰어넘는 인사로 법원에 혼란이 있지 않겠냐"며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년 안으로 대법원 구성이 바뀌는데 굳이 지금 서열파괴 인사를 할 필요가 있냐"고 물었다. 또한 "여성이어서 대법관이 될 이유는 적지 않냐"며 "이번 인사는 남성이 역차별받는 게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최용규 열린우리당 의원은 "82년 전까지 40대 대법관이 16명이나 있었는데 왜 유독 김 후보에 대해서만 코드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김 후보는 (대법관으로) 충분히 준비된 것 아니냐"며 옹호하고 나섰다. 김춘진 열린우리당 의원 역시 "사회에서 가장 변화가 더딘 곳이 법원"이라며 "더 서열파괴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것이 문제되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란 후보는 이에 대해 "대법관 인사가 승진개념처럼 인식되어 서열 위주로 이루어진 면이 있는데, 앞으로는 여성·젊은층 등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야 한다"고 반론을 폈다.

또한 이날 참고인으로 출석한 석호철 대법원 인사관리실장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혼란스럽게) 느낄 수도 있지만 대법원은 기수 서열에 얽매일 일이 아니"라며 오히려 법관들의 '전향적 사고'를 강조했다. 조국 소장 역시 "현재 여성 고등부장이 3명인 것은 그동안 법원이 여성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라며 "여성의 대법관 임명은 의도적으로 필요하다"고 반론을 폈다.

"유신시대에 사시 도전... 갈등 많았다"
김영란 후보 "직장과 가정 병행 힘들다" 고충 토로

11일 인사청문회에서 김영란 대법관 후보의 사적인 경력에 대한 질문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은 유신시대 법학도로서의 소감과 전문직 여성으로서의 고뇌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김영란 대법관 후보는 1978년 사시 20기에 합격해 법조생활을 시작했다. 유신시대 헌법을 공부한 셈이다. 김영란 후보는 11일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법학도로서의 소회를 밝히며 "또래 법관들이 다 비슷한데, 개인적으로 갈등이 많았다"며 "해야할 몫이 따로 있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하며 노력해왔다"고 답했다.

김 후보는 또한 '여성판사'로서의 삶에 대해 "직장생활과 가정을 양립한다면 수퍼우먼이고 저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며 "직장에서 남자들과 비교해 능력을 의심받는 경우도 많은데 (능력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책임이 너무 많은 것이라고 강변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다른 여성들에게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여러사람들과 연대하고 자신이 부족하다는 자괴적인 생각을 갖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김 후보의 자녀교육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 후보는 두 자녀를 모두 대안학교에 보냈는데 이에 대해 "과도한 비용을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김 후보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귀족학교가 아니고 단지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니어서 농사도 시키고 옷도 만들게 해준다"며 "아이들에게 대학을 꼭 가야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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