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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부채
ⓒ 김민수
제주도는 여름장마도 마른 장마로 지나가더니만 비라고는 가뭄에 콩 나듯 한 두 차례 소낙비가 내렸을 뿐이니 밭작물은 물론이고 들판의 꽃과 나무들도 타는 목마름의 갈증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우리 사회 어느 한 구석에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소식이 들려오면 좋겠는데 들려오는 소식마다 우리의 마음을 더욱더 황폐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더운 여름 날.
지금이야 에어컨을 비롯한 각종 냉방기기로 무더위를 달래지만 옛날에는 정자나 나무그늘에 앉아 부채질을 하기만 해도 무더운 여름을 거뜬하게 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전기세를 축내며 또 다른 열을 방출해냄으로 결국은 우리의 여름을 더 덥게 만드는 인공의 기계들보다 훨씬 지혜롭고 시원한 피서법이었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 김민수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꽃은 '범부채'와 '애기범부채'입니다.
범부채는 백합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잎은 좌우로 편평하며 2줄로 부챗살처럼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파리가 무성하니 수없이 많은 부챗살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면 무더위를 날려버리는 시원한 바람이 범부채의 꽃향기와 함께 날아오는 듯합니다.

꽃은 황적색 바탕에 짙은 얼룩점이 있는데 이 모양새가 마치 호랑무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범부채입니다. 지금은 동물원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호랑이 역시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였지요.

마치 개구쟁이 아가들의 얼굴에 난 주근깨 같아서 앙증맞고, 아침 바람에 하늘거리며 흔들리는 모양새를 바라보면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곤하게 잠든 손자들에게 부채질을 해줄 때의 그 시원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 김민수
범부채는 새를 쏘는 사수의 화살과 모양이 비슷하여 '사간(射干)'이라고도 한답니다. 그리고 뿌리는 약용으로 해열, 진통 등을 다스리는데 사용한다고 하니 무더운 여름 범부채의 이파리로 부채를 만들어 우리 마음에 부치면 우리를 짜증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시원하게 해결된다면 좋겠습니다.

자이툰 부대의 선발대가 이라크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명분 없는 전쟁, 추악한 전쟁에 발목을 잡히러 가는 모습을 보면서 힘없는 자의 서러움도 서럽지만, 때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팔지 말아야할 것이 있는 법인데 국익이라는 것에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팔아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것을 끝내 막지 못한 동시대의 한 사람으로서도 부끄럽기만 합니다. 무엇이 진정한 국익인지, 남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라도 이루려는 그 국익이라는 것이 도무지 어떤 괴물인지 그런 망령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을 호랑이가 전부 물어갔으면 좋겠습니다.

▲ 애기범부채
ⓒ 김민수
애기범부채는 범부채와 거의 비슷한데 꽃의 색이 좀더 진하고 무늬가 없다는 점이 다릅니다. 아니, 어쩌면 그 다름으로 인해서 전혀 다른 꽃 이름을 붙여 주었어도 좋을 번 했습니다. 제주의 중산간 도로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애기범부채입니다. 범부채보다 약간 작은 꽃 모양새와 더 많은 꽃을 달고 있는 애기범부채는 꽃을 피우면 아래로 고개를 숙입니다. 범부채는 꽃을 위로 향하고 있죠.

꽃은 그런 것 같습니다.
아래로 향하고 있으면 겸손을 상징하는 듯 하고, 위를 향하고 있으면 이상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자연이라는 것의 속성은 결코 남을 해하는 일이 없으니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가장 반자연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면 굴종같고, 고개를 들면 교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자연에서 멀어졌기 때문이겠지요.

ⓒ 김민수
자연은 자기가 더 잘살기 위해서 남을 해치지 않습니다. 때로는 경쟁하며 살기도 하지만 그것은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더 살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하면 자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더 가지지 못해 안달을 하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까지도 잃어버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모습입니다. 때로는 너무 소중한 것이라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인데 기어코 잃어버려야만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만물의 영장,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호모사피엔스의 어리석음입니다.

ⓒ 김민수
자연은 사람에게 배우지 않습니다. 배우지 않고도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연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자연에게서 배우지 않으면 척박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수확을 많이 했습니다. 그 부자는 '내 곡식을 저장해 둘 곳이 부족하니 더 큰 곳간을 세워 거기에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저장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너무 좋아 '여러 해 동안 쓰기에 넉넉한 많은 재산을 가졌으니 편히 쉬고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리라'했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 네 영혼을 가져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을 누가 가져가겠느냐?'

이 비유의 제목은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부자,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심보를 가진 부자는 어리석은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자들이라는 이야깁니다.

ⓒ 김민수
자신에게만 부자인 사람이 있고 이웃에게도 부자인 사람이 있습니다. 자연은 존재함으로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까지도 부요하게 합니다. 넉넉하게 합니다. 작금에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우리로 하여금 근심하게 만드는 모든 일들의 근원을 보면 자신에게만 부요하고자 살아가는 이기적인 삶에 기인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흔한 말로 '열 받는다'고 합니다.

범부채와 애기범부채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작은 꽃이지만, 작은 이파리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날려버릴 수 있는 평화의 부채, 행복의 부채를 만들어 이 무더운 여름, 우리를 더 덥게 만드는 모든 것을 날려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뜨거운 여름입니다.
이 무더운 여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열병같은 것들을 범부채가 다 날려버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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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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