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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막론하고 행운의 편지가 가장 잘 먹혀드는 집단은 역시 '여학생'과 '유한마담'이었다. <매일신보> 1939년 8월 4일자에는 행운의 편지에 빠져든 것은 시국인식에 철저하지 못한 탓이라 하여 총후여성(銃後女性)의 나약한 심성을 나무라는 글이 실렸다. 물론 그때는 군국주의가 한창 판을 치던 시절이었다.
학창시절의 통과의례인 양 누구나 한두 번쯤 겪는 일로 '행운의 편지'란 것이 있다. 그런데 이 편지는 말이 행운이지 말투의 거지반은 협박이다.

언제까지 몇 통의 사본을 만들어 다른 이들에게 보내라, 그리하면 행운이 따를 것이나 이를 어기면 며칠 내로 불행한 일이 닥친다는 식이다. 그러니까 제 아무리 무던한 사람일지라도 이 대목에서는 주춤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결국 이 대열에 꼭 동참해야 하는지 아님 그냥 무시해도 되는지를 두고 공연히 심각한 고민을 해야할 판국인지라 그러한 편지가 달가울 리가 없다. 더구나 누가 보냈는지를 도통 알 수가 없으니 그에 대한 궁금증은 또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행운의 편지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은 대개 그렇게 젊은 날에 일찌감치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행운의 편지란 것은 도대체 누가 왜 만들었으며, 언제부터 이토록 께름칙하고 괴상한 놀음이 있어왔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어느 시기부터 행운의 편지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일까?

'행운의 편지' 기원은 19세기 '연쇄편지'

알고 봤더니 이 나름의 역사가 꽤나 깊다. 크게 보아 이는 연쇄통신(chain letters)의 범주에 속하며, 여기에도 워낙 여러 갈래의 종류가 있는 모양이다.

서양 쪽에서는 자선을 구하거나 종교적 축원을 담은 연쇄편지가 19세기 후반기에 벌써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아는 행운의 편지라는 것은 1920년대에 이르러 그 전형적인 모습이 등장한다.

물론 행운의 편지라고 해서 거기에 담긴 내용과 규칙이 매번 동일했던 것은 아니었고, 각 시기마다 유행했던 주제와 형태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행운의 편지에 관한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엄밀하게 조사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 행운의 편지에 관한 최초의 흔적은 <동아일보> 1922년 2월 1일자에 등장하는 '호운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기사가 아닌가 싶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 <동아일보> 1922년 2월 1일자에 등장하는 '호운을 위하여'라는 제하의 기사이다. 이것이 행운의 편지에 관해 현재까지 확인된 최초의 기록인 듯하다.
"30일 이래로 경성 시내에는 괴상한 엽서가 배달되는 일이 있다. 그 엽서에는

'좋은 운수를 위하여, 이것을 아홉 장의 엽서에 기록하여 그대가 '호운(好運)'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보내라. 아흐레만 지나면 그대에게 좋은 운수가 돌아올 것이오. 이 사슬(엽서의 줄이라는 뜻인 듯)을 끊으면 아니 된다. 만약 끊으면 크게 악운이 있다. 이 사슬은 미국 사관(士官)에게서 비롯된 것인데 아홉 번 지구(地球)를 돌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이십 사 시간이 지나기 전에 쓰기를 바란다. 호운을 위하여.'

라고 기록하고 발신인의 주소 성명은 보려 하여도 볼 수가 없고 일부인을 보면 경성우편국과 광화문이란 도장이 찍혀 있다.

이것을 보면 시내에서 발송한 것을 알 수가 있고 이 엽서에 대하여는 여항에 여러 가지 풍설이 유행하는데 수일 전부터 대판(大阪) 지방에 다수히 배달된 사실이 있었는데 어느 틈에 경성까지 온 것을 보면 엽서의 본문과 같이 며칠 아니하여 땅덩이를 아홉 번 돌고도 남겠다.

세상의 풍설을 들어보면 이 엽서는 미국 사관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있는 어떠한 비밀결사(秘密結社)에서 시작한 것인데 이것이 어떠한 위험한 운동의 조짐으로 동지자끼리 서로 기백을 통하는 암호라고도 하고 또 일설에는 체신국에서 엽서를 많이 팔기 위하여 꾸미어 내인 장난이라 하니 이러한 말은 상식이 없는 말이라, 두 번 옮길 필요조차 없을까 하며 아무리 하여도 괴상한 엽서라 하겠더라."


그 무렵에 나온 미야타케 가이코츠(宮武外骨)의 <기태유행사(奇態流行史)>(1923)에도 1922년 1월 중순경에 수신된 '행운엽서'의 존재를 소개한 구절이 들어있고 그 편지의 내용 또한 동일한 것이 수록되어 있는 걸로 봐서, 위의 기사에 나오는 행운의 편지는 일본지역을 거쳐 조선 땅으로 유입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으로는 행운의 편지를 퍼트린 주범으로 체신국이 지목되고 있다는 풍설을 옮겨놓은 대목이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근거는 전혀 없지만, 처음부터 그러한 종류의 인식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것 말고도 일거리가 없어질 것을 두려워한 우편배달부의 소행이라는 둥 문방구 주인이 범인이라는 둥 타자기 판매업자가 그랬다는 둥 하는 얘기가 줄곧 있어왔지만 이에 관한 사실 여부가 구체적으로 밝혀진 적은 없다. 그저 되게 할 일 없는 사람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여길 따름이었다.

▲ 1922년 1월 중순에 수신된 '행운엽서'의 존재를 소개한 미야타케 가이코츠(宮武外骨)의 <기태유행사(奇態流行史)>(1923)이다. 여기에는 이러한 행운의 엽서가 '7, 8년 전에 영국 등에도 유행한 일이 있었다'고 적은 구절이 있는 걸로 봐서 연쇄통신의 역사가 훨씬 더 오래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 결과는 대단한 히트작이었다. 그리고 '지구를 아홉 번을 돈다'는 구절에서도 짐작하듯이 이것은 지구의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 내용이 너무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것인지라 누구에게나 크게 환영받을 만한 대상은 못됐다는 점이다.

특히 그 시절의 식민통치자들에게는 이것이 다름 아닌 치안유지의 방해요소였던 것이다. 행운의 편지가 '공안을 방해하거나 풍속을 교란하는 문서'라 하여 이를 엄중하게 단속 처벌하겠다는 경찰당국의 공표가 자주 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상 전파나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아닌 게 아니라 때마다 세계적인 유행을 타고 있던 행운의 편지는 이미 갖가지 용도로 변형되곤 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상품선전의 수단으로, 종교적으로는 선교의 방편으로, 또 정치적으로는 사상과 신념을 전파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사례의 하나로 <매일신보> 1926년 8월 28일자에는 충남 부여지역에서 행운의 편지를 흉내내어 적화사상(赤化思想)을 선전하는 편지가 포착되었다는 기사가 수록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행운의 편지는 때로 직접적인 돈벌이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 행운의 편지는 간혹 불경기의 타개책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매일신보> 1935년 10월 12일자에는 '강대육'이라는 해산물상이 일정 금액을 회송하도록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체포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그러니까 근년에 '전자우편방식'으로 크게 유행했던 피라미드식 행운의 편지는 일찍이 그 시절부터 있어왔던 기법이었다.
이른바 피라미드식 기법과 행운의 편지가 결합하는 형태가 바로 그것이었다. <동아일보> 1935년 10월 11일자에는 '불경기퇴산통신무진(不景氣退散通信無盡) 행운편지 대유행, 수신자에게서 10전씩 징수'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들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무진(無盡)'은 상호신용계(相互信用契)를 일컫는 예전의 말이다.

"본정경찰서에서는 경북 문경군 문경면의 금융조합 내의 하몽호(河夢虎) 외 4명에게 행운편지 온 것을 조회 받고 그 발송인의 행방을 탐지하던 중 8일 오후 1시경 시내 남미창정(南米倉町) 268번지 해산물상 김대진(金大鎭, 가명=29)을 용의자로 체포한 바 그는 2일 전에 모르는 사람한테서 받은 것이라 하는데

이것은 재래의 행운의 편지와는 달라서 명의를 '불경기퇴산 통신무진 행운구락부'라 하고 일단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2일 내로 다른 5명에게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하는 동시에 제일 먼저 기명된 사람에게 10전씩을 절수(切手)로 부송하라는 것이다.

이런 만큼 그 사기수단의 피해가 보통 유행하는 것보다도 심하다. 본정서에서는 그 최초의 발신자를 찾아내기에 노력중이라 한다. 동서(同署)에서는 전기 김대진을 취조 후 과료 1원에 처하고 석방하였다."


그렇다면 행운의 편지가 유행하는 것은 정말 경기의 변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에 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관찰결과로 나온 자료는 없었던 것 같은데, 행운의 편지가 유행하는 것은 다소간 불규칙적이거나 그 순환주기가 경기의 변동보다는 훨씬 더 빠르다는 점에서 그것을 반드시 경기의 부침과 결부시켜 생각할 것은 아닌 듯하다. 다만 세월이 지날수록 경제적인 요소가 훨씬 강하게 가미된다는 추세 정도만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실제로 행운의 편지에 관한 역사를 죽 훑어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초기에는 대체적으로 단순히 운수가 좋아지는 것을 축원하는 내용이 주류였던 반면 나중에는 이것이 차츰 '횡재(橫財)'를 기원하는 내용이 노골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가령 누구는 행운의 편지를 따랐더니 이내 거액을 얻는 일이 생겼고, 누구는 이를 무시하였더니 오히려 큰 손실을 보는 일이 생기더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경제적 요소가 덧붙여지는 것이 경기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경기가 어려운 때에만 금전을 송금하라는 형식의 편지가 많이 유행할 거라는 추론은 입증하기 어렵다.

오히려 행운의 편지가 유행하는 것은 인간의 심리적인 속성이랄까 아니면 또래집단의 통과의례와 같은 의미로 지속력을 갖는다는 것이 더 합당한 설명이 아닐까 한다. 많은 경우에 행운의 편지에 동참하는 까닭이 행운을 바라서라기보다는 행여나 닥쳐올지도 모를 액운을 떨쳐버리고 싶은 생각이 더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이 바로 행운의 편지가 연쇄적으로 작동하는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매우 완벽한 논리인 듯도 하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논리인 셈이다. 돌이켜 보면 행운의 편지를 이어주는 대열에 동참하기보다는 그 사슬을 끊어버리고도 별 탈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하지만 지금은 비록 행운의 편지일망정 귀찮아서라도 그것을 편지지에 일일이 옮겨 적는 이들도 드물거니와 일년이 가야 우체국 언저리에 한번 갈까 말까한 사람들이 수두룩한 시절이 되고 말았으니, 전자우편으로 접하는 탐욕스러운 피라미드식 행운의 편지를 제외하고는 이제 '종이'로 된 행운의 편지는 머지않아 유행의 풍속사에서나 만날 수 있는 단어가 될 것 같다.

애초 행운의 편지엔 전달자의 명단 있었다
1920년대의 신문기사에 드러난 '행운의 편지'에 관한 풍속도

<동아일보> 1926년 8월 12일자에는 '보는대로 듣는대로 생각나는대로'라는 코너에 망중한인(忙中閑人)이라는 필명으로 "'행운편지'의 유행"이라는 글이 실렸다. 여기에는 그 시절에 통용된 편지 구절과 이에 관한 갖가지 해설이 수록되어 있어, 당시의 풍속도를 들여다보기에는 마침맞은 자료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행운의 편지에 대한 원문에는 애당초 '연결되어 온 인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행운의 편지에는 원래 전달자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일이 그러했던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통용된 행운의 편지에는 언제부터인가 원문에 첨부된 전달자의 명단은 슬며시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행운의 편지는 원래 익명의 편지가 아니라 누가 보낸 것인지를 그대로 알 수 있는 '진솔한' 편지였다는 사실 정도는 기억해두는 것이 옳겠다. 아래의 글은 기사의 전문이다.

"수년 전에 조선에도 돌아다니던 '행운편지'가 요즈음 또 유행된다. 너무 싱거워서 도리어 괴상한 이 행운편지의 발생지는 태평양 건너편 미국이란 나라이다.

내용은 아무 별 것이 없다. 싱겁기가 끝이 없고 심심하기가 짝이 없는 편지다. 편지내용이 너무 평온하니까 불온하다고 보는 셈인지 그래도 경찰은 공연히 날뛴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속담처럼 경찰의 눈에는 불온만 보이는지 덮어놓고 이 편지의 왕복을 '주의'하고 '경계'한다.

'망중한자(=필자)'는 복 받을 연분이 없는지 아직 이 편지를 받지 못하였다. 받지는 못하여도 보기는 보았다. 실상 복 받기보다도 글씨 쓰기가 귀찮아서 이 편지가 온다고 하여도 못 받은 체 할 작정이다. 그러나 이 편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첫째 보고도 싶을 것이고, 둘째 '호박'이라도 얻을 생각이 간절할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만천하 독자에게 위선 일제히 알린다. 쓸데없는 절차를 밟을 것 없이 이렇게 대번에 알리는 것이 이 더운 여름에 수고도 덜 것이고 밤잠 못자는 경찰의 한숨도 풀릴 것이다.

편지원문〓 이 행운의 편지는 친구 ○○○씨가 보낸 것인데 나는 행운의 연결을 깨트리지 않으려고 당신을 비롯하여 여덟 명의 친구에게 보냅니다. 당신도 이 편지를 등사하여서 이십사 시간 안으로 아홉 명의 친구에게 보내십시오. 이 행운의 편지는 미국(米國) 어떤 대가(大家)의 손으로부터 시작되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도록 한 것이니 이 연결이 중단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만일 이 연결을 깨트리는 때에는 당장에 악운(惡運)이 이른다 합니다. 이대로 실행하면 당신은 구일 이내로 무슨 행운이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연결되어 온 경로의 인명은 약함).

'이 편지가 이렇게 돌아다니면 얼마동안에 얼마나 퍼질꼬?' 하고 이 기사를 읽은 독자는 누구든지 한번 생각하여 볼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알려질 숫자가 아니다. 적어도 면필로 계산을 하거나 수판을 들고 놓아보아야 알 일이다. 내가 독자를 위하여 이왕 수고하는 김이니까 이것까지 대신으로 풀어볼까?

첫째 번에는 아홉 사람에게, 둘째 번에는 '구구팔십일' 여든 한 사람에게, 셋째 번에는 칠백 스물 아홉 사람에게 퍼져간다. 이렇게 다섯 번째만 가더라도 오만 구천 사십 구 명이나 되고, 열 번만에 가서는 삼십 억 팔천 육백 칠십 팔만 사천 사백 일 명이나 된다. 전세계 인구의 두 곱도 넘는다. 열한 번째부터는 기가 막혀서 놓지 못할 숫자이다. 이 이상 알고 싶은 독자가 있거든 혼자 풀어보는 것이 좋겠다.

'계속'이란 이같이 무서운 것이다. '연결'이란 이같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원래 편지도 받지 못한 '망중한자'는 '행복'은커녕 '호박'도 얻지 못하였지만은 이 위대한 두 가지 힘을 이 행운편지에서 발견하였다."
/ 이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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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전부터 문화유산답사와 문화재관련 자료의 발굴에 심취하여 왔던 바 이제는 이를 단순히 취미생활로만 삼아 머물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알리고 싶은 얘기, 알려야 할 자료들이 자꾸자꾸 생겨납...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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