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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성적 소수자'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성격의 행사가 열려 큰 관심을 끌었다.

한기연(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에서 주최하고 재미 신학자 현경 교수가 강연에 나선 '강요된 침묵, 기독교 안의 동성애 - 입을 떼다' 행사와 5회 째를 맞은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 - 2004 퀴어(queer)문화 축제'의 '퍼레이드 2004'가 그것.


특히 두 행사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 많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동성애자들의 당당한 행진 -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

▲ 19일 제 5회 퀴어문화제의 '퍼레이드 2004'가 종묘 공원에서 출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 방송인 홍석천(오른쪽에서 두 번째)씨와 참가자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19일 퀴어문화제의 '퍼레이드 2004'는 그야말로 축제였다.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이란 슬로건이 말해주듯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 종묘공원을 출발한 300여명의 일·이반('일반'(一般)'이라는 단어에서 '이반'(二般 혹은 異般)이 파생됐다는 게 정설인 가운데 '이반'은 성적 소수자를 일컫는 말이 됐음)으로 참가자들은 인사동 입구에 위치한 남인사 문화마당까지 약 1시간 동안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선보였다.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그야말로 '즐거움의 향연'을 보여줬다. 이번 행진에는 '해피 웨딩카'를 탄 레즈비언 커플이 웨딩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채 춤을 췄고 여장 게이들이 섹시한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얀색 슬리브리스 티셔츠(일명 나시티)에 핫팬츠 차림의 게이들은 음악에 맞춰 집단무를 선보이기도 했고 동성애·양성애·성전환 참가자들은 나름의 개성대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축하무대 사회를 봤던 홍석천씨는 참가자들을 독려하며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 '해피 웨딩카'에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레즈비언이 취재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이날 행진에 참가한 레즈비언 구아무개(22, 에니메이터)씨는 "아직 이반을 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지만 이런 행사들이 지속적으로 열리고 언론에서도 계속해서 기사를 다뤄준다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한국에서 성적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20점 정도"고 밝혔다. 이날 만난 동성애자들은 이전에 비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따뜻해졌지만 그들의 인권을 점수로 매긴다면 아직 낙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게이 웹사이트인 '이반시티'(www.ivancity.com) 운영자 박성준(33)씨는 "나날이 행사 분위기도 좋아지고 우리를 보는 시각도 나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비가 내려 여러모로 아쉽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올해 호주의 마디그라 축제나 방콕의 동성애 축제를 가봤는데 우리나라보다는 (성적 소수자들에게) 열려있는 것 같았다"며 "우리 사회에서도 성적 소수자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여줬으면 하고 우리들도 떳떳하게 자긍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영진(30, 남, 직장인)씨는 "성적 소수자들도 사람 아닌가"라며 "이에 대해 문제삼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종묘공원 근처에서 만난 중년 이상의 노인들은 "대한민국이 망해간다"는 등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내년에는 동성애자가 결혼해 나올 수 있었으면"

한편 행진 시작 전, 종묘공원에서는 이번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이, 또 인사동 남인사 문화마당에서는 행진 뒤 축하무대가 펼쳐졌다.

국회의원으로는 처음으로 퀴어문화제에 참석한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은 "그 동안 여성 농민이라는 약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성적 소수자 여러분들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다"며 "함께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고 참가자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도 "네덜란드에선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고 프랑스에선 동거권을 허용하고 있다"며 "똘레랑스가 인정되는 사회가 되도록 여러분과 적극 협력하고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엔 여러 팀의 축하공연도 있었다. 3인조 일렉트로니카 밴드 포츈 쿠키는 '헛소동' 등을 불렀고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씨는 '미인', 'Cut it out' 등을 연주했다. 이밖에 밴드 네스티 요나, 동성애 풍물패 바람소리 등의 흥겨운 무대가 펼쳐졌다.

특히 지현씨는 무대에 올라 "내년 6회 퀴어문화제 땐 결혼한 게이나 레즈비언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이 행사에 참여했으면 한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번 퀴어문화제는 지난 17일을 시작으로 29일까지 전시회, 영화제와 토론회 등을 개최한다. 행사 홈페이지는 http://kqcf.org다.

▲ 18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강요된 침묵, 기독교 안의 동성애 - 입을 열다' 행사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동성애·이성애·트렌스젠더 그 누구도 예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전날 행사가 '성적 소수자'들의 신명나는 축제의 몸부림이었다면 18일 열린 '강요된 침묵, 기독교 안의 동성애 - 입을 떼다' 행사는 '닫혀있는'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동성애자'들의 작지만 큰 외침이었다.

현경 교수 뿐 아니라 김윤성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종교사적 관점으로 바라본 동성애', 곽라분이 전 한신대 교수가 '성서는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가? - 동성애에 대한 성서의 입장' 등의 제목으로 강연에 나섰다. 주최측에서는 200여명을 예상했지만 500여명이나 몰려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특히 현경 교수는 '그리스도인이 사랑할 사람을 선택할 권리'란 제목의 발제에서 사회에서 금기시 했던 '기독교에서의 성' 특히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해부했다.

"어릴 때부터 여자만 좋아하는 여자 학생이 있었다. '뼈대있는' 집안에선 그를 정신병원에 가두기도 했고 심지어 전기충격까지 받게 하는 등 고문에 가까운 고통을 주었다. 나중에 그는 알코올중독에 시달렸고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현실에 수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어느 재활원에서 동맥을 끊으려고 했을 때 예수가 나타나 '난 널 있는 그대로 사랑한단다. 왜 넌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니'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종교적 체험을 한 뒤, 그는 신학교에서 '신모'(신부와 대비되는 표현인 듯)가 돼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를 주고 있다."

현경 교수는 위와 같은 사례를 든 뒤, "어떤 사랑도 축복 받을 만 하다"며 "하나님 나라는 평등한 사람들의 왕국"이라고 성적소수자들을 옹호했다.

현경 교수는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동성애자들을 문제 삼았던 것에 대해 ▲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왔던 관례 ▲ 목사, 신학자에게 있어왔던 성경 해석의 권위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현경 교수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예수가 두벌 옷도 갖지 말라'고 했는데 전세계 모든 교회의 어떤 사람도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라는 성경 말씀을 누가 지키고 있는가"라며 "만약 이런 걸 다 지키고 있다면 기독교인은 모두 '사회주의자'가 돼 있어야 할 것"이라고 성경 구절 가운데 동성애에 대한 것만 따라야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설명했다.

▲ 18일 동성애와 기독교에 대해 발제에 나선 재미 신학자 현경 교수.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그는 또 "성경을 해석하는 권한이 지금까지 목사와 신학자에게만 있었지만 이젠 여러분에게 있다"며 "기독교의 가장 중심 메시지인 사랑과 정의와 자유라는 큰 틀 안에서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그 모든 것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말씀이 '환난이나 고난이나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구절인데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나 트렌스젠더나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행사 뒤, 발제를 맡은 김윤성 연구위원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는 것은 적어도 이젠 '동성애'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를 넘어 모두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것 같다고 느꼈다"며 "이젠 단순히 기독교를 넘어 우리 사회의 중요한 부분인 다른 종교에까지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참가자 이호준(20, 대학생)씨는 "평소 동성애 문제를 새롭게 봐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현경 교수님 등의 강연을 통해 이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며 행사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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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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