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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소속 변호사와 법학자들이 <오마이뉴스>에 릴레이 기고를 시작합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편견과 잘못된 상식을 깨는 내용의 [100문 100답 - 국가보안법, 이것이 궁금하다]가 그것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질문 10. '막걸리 국보법'이 무슨 말인가요?

흔히 국가보안법을 비판할 때 '막걸리 국가보안법'이라는 말을 쓰던데요. 무슨 뜻입니까?


‘막걸리 국가보안법’은 막걸리를 마시고 한 취중 발언, 술자리에서의 농담까지도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것은 물론,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까지도 처벌하는 과도한 법 적용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대포집에서 “북한은 살기 좋으니…”라고 말했다가, 또 다른 사람은 음주 중 “김일성 수령이 어째서 나쁘냐”고 말했다고 해서 구속됐습니다.

이 말은 원래 박정희 유신정권하에서 생겼는데 실제 사례를 보면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술자리에서 북한 군가를 부른 경우, 가옥을 철거하려는 당국자에게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이라는 언사를 한 경우, 경찰관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면서 우리나라법이 북한법보다 못 하다라고 발언한 경우,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정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경우가 모두 국보법 위반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막걸리 국보법’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국보법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 제정 동기의 불순성, 심각한 인권침해 현상, 위헌성 등을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그중에서도 국보법 7조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조문는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ㆍ고무ㆍ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자(제1항 찬양ㆍ고무죄),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하는 자(제3항 이적단체 구성 및 가입죄), 이적표현물을 소지, 배포, 제작하는 자(제5항 이적표현물죄)를 처벌하고 있고, 대부분의 국보법 사건이 이 조항에 의해 발생한다고 할 정도로 국가보안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독소조항입니다.

‘막걸리 국보법’은, 대한민국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할 구체적 가능성이나 고의가 전혀 없어도 누구든지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따라서 정권 유지를 위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막걸리 국보법은 옛날 이야기일 뿐일까요?
물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북한 응원단이 남한에 와서 국민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기도 하는 시대에 70년대처럼 국가보안법이 적용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처벌받는 숫자의 차이일 뿐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서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는 태백산맥이 발간된 1986년부터 계속되는 협박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1994년 4월에 8개의 반공단체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고발되어 같은 해 6월과 1999년 9월에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98년 한양대 사학과 4학년 생인 하영준씨는 영국 요크대학교 정치학 교수이자 마르크스주의 연구가인 알렉스 켈리니코스와 역시 마르크스 연구자인 크리스 하먼의 주요저서를 요약해 피시통신망의 인터내셔널 동호회에 올렸다가 검찰에 의해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2002년에는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던 대학 신문사 출신의 훈련병이 동료 훈련병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던 중 “민족분단의 책임은 미국에게 있다”, “한겨레 한 동포인 북에 총을 겨누라고 강요하는 군사훈련이 싫다”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되어 압수수색을 받아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박세길)>,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ㆍ엥겔스 저작선)>등 17권의 책이 발각되어 국보법 제7조 제1항 및 제5항 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요즘의 국보법 적용도 ‘막걸리 국보법’ 시절이나 다름없이 자의적으로 적용되고 있고, 그로 인한 인권침해는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빨리 국보법을 없애고 편하게 막걸리를 마셔야겠습니다.

(답변: 류제성 변호사 / 감수: 차병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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