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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탄핵관련 TV방송의 공정성 여부를 분석한 한국언론학회 보고서가 오히려 공정성 시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12일 박관용 국회의장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동의안 통과를 선언한뒤 의장석으로 구두가 날아드는 장면.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방송위원회(위원장 노성대)의 의뢰를 받아 대통령 탄핵관련 TV방송의 공정성 여부를 분석한 한국언론학회(회장 박명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보고서가 오히려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특히 그동안 언론계와 학계에서 꾸준히 지적됐던 기계적 형평성을 기준으로 '탄핵방송은 공정성을 잃은 편향보도였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서 언론·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또 학계에서는 연구진의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사안을 특정 학회에 맡겨 공정성 여부를 판단한다는 게 '넌센스'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언론학회의 이번 보고서와 관련, 방송 현업인들은 당시 심의를 촉발시킨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비판적 시각과 보고서 결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들면서 '정·언·학 수구복합체'가 만들어낸 '예견된 결과'였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같은 견해는 방송위원회 내부에도 있다. 언론학회에 연구의뢰를 결정한 보도교양 제1심의위원회 일부 위원과 일부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은 양적 균형을 잣대로 방송의 공정성을 심의한 이번 결과를 수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일부 언론학자들과 시민·언론단체 관계자들은 한국방송학회나 한국언론정보학회 등에 추가로 연구를 의뢰,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언론학회 연구진 "탄핵방송은 공정성 잃은 편향보도"

한국언론학회는 지난 10일 이민웅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윤영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를 책임연구원으로 한 연구진에게 맡긴 '대통령 탄핵관련 TV방송'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언론학회 연구, 어떻게 결정했나

언론학회 연구의뢰는 방송위원회 보도교양 제1심의위원회에서 처음 제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교양 제1심의위원회 소속인 이창근 광운대 영상미디어학부 교수는 "탄핵은 워낙 중대하고 예민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치밀한 학문적 분석에 근거해야 심의결과를 납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 연구의뢰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미 차기 언론학회장으로 내정돼 있기도 한 이 교수는 "언론학회는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됐으며 가장 많은 회원수를 거느린 언론학계의 단체이다, 또 가장 권위있는 단체이기도 하다"고 추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언론학회에서 연구진을 선임하는 과정은 그리 투명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내부 공모를 통해 연구진을 선임하려고 했던 언론학회는 애초 응모한 4명의 지원자를 부적격으로 판단한 뒤 이민웅 한양대 교수를 지명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은 이민웅 교수가 9일 보도교양 제1심의위원회 회의에 참석, 심의위원들에게 연구진 선임과정을 답변하는 밝혀졌다.

이번 연구에는 이민웅 한양대 교수와 윤영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했고, 윤태진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김경모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등이 공동연구원으로 동참했다.

그러나 10일 오후 현재 책임 연구원을 맡은 이민웅 교수와 윤영철 교수, 박명진 한국언론학회장은 수 차례 전화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고 있다.
연구진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3월 12일부터 9일간 KBS·MBC·SBS 저녁종합뉴스를 비롯해 뉴스특보·속보, 시사·정보·교양 프로그램의 탄핵관련 내용을 계량적 분석과 함께 프레임 분석, 담화 분석, 영상분석을 실시했다. 6개 장르, 17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한 이번 분석분량은 모두 96시간에 달했다.

이날 제출된 보고서의 결론은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요약됐다. 보고서는 ▲탄핵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훨씬 더 많이 보도돼 양적 편향을 보였고 ▲크로마키, 자막, 인터뷰 등에서도 양적 편향이 두드러졌으며 ▲탄핵주도 세력을 '비개혁적 가해자'로, 탄핵반대 세력을 '개혁적 민주세력'으로 틀지었으며 ▲영상 이미지도 대립적 경쟁 프레임 구도에 따라 처리됐고 ▲프로그램 사회자와 출연자의 표현도 편파적이었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탄핵과정에서 나타난 방송의 편향성 수준을 ▲절제적 편향 ▲일탈적 편향 ▲파괴적 편향으로 나누기도 했다. '절제적 편향'이란 정규 뉴스프로그램 가운데 탄핵정치 과정으로 분류된 기사처리에서 심하지 않게 편향성이 나타난 기사가 포함된 경우이다.

방송사 스스로 지키겠다고 만든 공정성 규범을 심하게 일탈한 기사와 프로그램은 '일탈적 편향'에 분류됐다. 즉 정규뉴스 프로그램의 '시민반응 여론' 관련기사에서 크로마키, 자막, 인터뷰 수가 심하게 편향성을 보인 기사가 포함되고, 시사·정보·교양 프로그램의 앵커 멘트, 기자 리포트, 인터뷰에서 심한 편향성을 보인 프로그램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에 대해서는 스스로 만든 공정성 규범의 토대마저 무너뜨리는 행위와 같은 극단적 편향성을 드러낸 기사와 프로그램이 포함됐다는 지적을 받으며 '파괴적 편향'에 분류됐다.

보고서는 결국 "방송사들이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을 일탈적 정치행위로 봤다"고 전제한 뒤 "공정성과 관련한 규정을 갖고 있음에도 스스로 만든 규정조차 지키지 못했다"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서 방송의 공정성 논란은 반드시 극복돼야 할 과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그럼에도 많은 기사와 프로그램이 탄핵 반대나 찬성으로 코딩하기 어려운 중립적인 의견과 정보로 채워진 것은 저널리즘의 원칙과 규범을 지키기 위해 불리한 여건과 분위기 속에서도 끈질기게 노력하는 기자와 PD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방송사 노조-시민·언론단체-언론학자 등 일제히 반발

▲ 한국언론학회가 10일 발표한 '대통령 탄핵관련 TV방송 내용분석' 보고서.
ⓒ 오마이뉴스 신미희
그러나 방송사 노조와 시민·언론단체, 언론학자 등은 언론학회의 이번 보고서 내용에 대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탄핵방송 논란을 종식시킬 책임이 있는 방송위원회가 그 책무를 언론학회로 떠넘겨 제2의 시비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시민·언론단체는 조속한 시일 안에 이번 연구보고서 내용과 그 평가기준을 면밀히 검토하는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은 11일 '민주적 정당성과 역사성이 배제된 불편부당성을 경계한다'는 제하의 성명을 통해 "민주주의는 박제화한 법치주의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언론노조는 "언론학회 보고서가 주창하는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진실보도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표라고 볼 수 없다"면서 "공정보도는 '민주적 정당성과 역사성이 배제된 불편부당성'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김영삼)도 같은날 성명을 내고 기계적 중립이라는 잣대로 방송을 재단하려는 언론학회의 보수적 태도를 질타했다. 이어 언론노조 KBS본부는 "언론학회는 총선과 헌법재판소 결정 등을 통해 탄핵소추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역사적, 국민적, 헌법적 심판이 내려진 진실마저 부인하려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최승호)도 이날 '박제화된 공정성 논의를 규탄한다'는 제목으로 성명을 통해 언론학회가 제시한 편파방송의 근거를 단 하나도 수긍하기 어렵다고 못박았다. 언론의 가치판단 영역까지 평가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반박한 언론노조 MBC본부는 "탄핵을 단순한 보수정당간 정쟁차원으로 볼지, 민주-반민주 대결국면으로 볼지는 전적으로 언론자유에 속한다"고 밝혔다.

방송위원회의 언론학회 연구의뢰도 비판의 대상에 올랐다. MBC본부는 "방송위원회가 방송의 공영성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면 탄핵보도의 편파성 논란에 정면 대응했어야 했다"면서 "그 책임을 언론학회에 떠넘기고 조중동 주문대로 다시 방송에 대해 무엇을 하려고 나설 양이면 묵과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과거 잣대에 얽매인 현행 방송심의제도 개선 촉구에 앞장섰던 이강택 한국방송PD연합회장은 연구진 선정과 결과 공표 시기, 평가기준 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회장은 무엇보다 신문개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때 <조선> <동아> 등 보수신문을 통해 이번 보고서 결과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배경과 관련, '언론개혁 물타기' 의혹을 제기했다.

이 회장은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한목소리로 탄핵방송의 편파성을 외쳐 방송위원회 심의까지 오르게 하더니 이제는 한국언론학회마저 가세한 정·언·학의 수구복합체가 방송의 공정성 시비로 언론개혁의 초점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 회장은 그동안 현업 방송인 중심으로 제기된 현행 방송심의 평가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묵살됐다는 점도 꼽았다. 이 회장은 "언론학회가 평가기준으로 삼았다는 BBC 제작 가드라인의 실체도 기계적 균형이 아닌 진실에 접근하려는 방송 제작진의 적극적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권오훈 언론노조 방송정책국장은 "이번 언론학회 분석에는 기본적인 국민여론이 빠져있다"며 "양적 균형으로 재단할 수 없는 비평 프로그램까지 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표적심의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권 국장은 "비평 프로그램이 기계적 균형을 지키라는 것은 신문 사설에서 의견을 내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학자들 "제2의 평가작업 필요"

언론학회 보고서에 대한 반발은 어느 분야보다 학계에서 더욱 거세다. 특히 방송위원회가 방송학회나 언론법학자 등 더욱 전문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학계를 제치고 언론학회에 의뢰를 결정한 것에 매우 큰 불만을 드러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정성의 진정한 의미는 언론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최 교수는 "방송위원회가 심의결과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용역을 맡겼으면 그 절차적 공정성과 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연구자 색깔과 공정성을 보는 기준에 따라서 상반된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데, 불투명한 절차에 의한 결과 자체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동민 한일장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역시 연구진 성향의 문제점을 꼽았다. 그동안 언론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던 학자가 대다수인 연구진이 내놓을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해석이다. 김 교수는 "가장 보수적인 단체인 언론학회에 맡긴 것도 문제지만 칼럼 등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힌 사람을 책임연구원으로 선임한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며 "방송학회나 언론정보학회 등에 다시 맡겨 재평가를 하자"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또 "언론의 역할은 가치판단을 해주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탄핵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각종 여론조사는 물론 총선결과를 통해서도 나타났는데 그런 가치판단은 배제하고 양적으로만 분석한 것은 언론학자로서 자세조차 의심스럽다"고 혹평했다.

방송위원회 보도교양 제1심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언론학회 연구 자체를 '넌센스'로 표현했다. 그는 "일부 심의위원이 앞장서서 언론학회를 특정, 지목해 연구를 맡기자고 주장했다"고 전한 뒤 "이민웅 한양대 교수의 경우 정치색깔이 뚜렷한 사람인데 그가 책임연구원이 됐다는 것은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격"이라고 말했다.

언론학회의 분석 틀에 대한 문제도 언급한 그는 "양적 균형, 기계적 형평성만 갖고 평가한 이번 보고서는 방송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어 그는 "이번 보고서는 감정 차원의 의견에 불과하다, 감정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으면 재감정을 하거나 제3자에 의뢰하듯 다른 전문가(조직)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보고서 결과가 언론에 미리 공개된 문제점도 지적됐다. 그는 "언론학회 연구 의뢰에 찬성했던 심의의원들이 연구결과에 흡족했는지 언론에 공개하자고 먼저 얘기했다"며 "논란 끝에 결국 방송위원회 상임위원회 결정에 맡기자고 넘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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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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