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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회의 탄핵방송 보고서와 관련, 김평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방송개혁위원장(단국대 방송영상학부 교수)이 탄핵방송과 탄핵사태 등에 대해 이 보고서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 인식의 문제, 또 이 보고서가 근거하고 있는 기본적 판단에 대한 문제, 그리고 이 보고서가 가지고올 후유증 등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정리한 글을 보내와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 김평호 교수
ⓒ 오마이뉴스
지난 5월 29일자로 한국언론학회는 이민웅(한양대 신방과)·윤영철(연세대 신방과) 교수 두 사람을 책임연구원으로 하고 윤태진(연세대 영상대학원)·최영재(한림대 언론정보학부)·김경모(연세대 신방과)·이준웅(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네사람을 공동연구원으로 한 '대통령 탄핵관련 TV 방송'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3월 12일 국회 탄핵안 가결이후, '탄핵 정국과 관련한 방송 내용에 대해 공정성, 객관성, 여과되지 않은 진행자의 멘트 등에 문제가 있어 개선, 시정, 사과 등을 요구한다는 시청자 민원이 제기되어' 방송위원회 내의 보도교양 제1심의위원회가 문제를 논의한 결과, 제재 여부에 관한 심의위의 '평결'을 내리기 전에 방송내용에 대한 언론학회 전문가 집단의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했고, 방송위원회가 이를 수용, 한국언론학회에 연구를 의뢰했었다. 이 보고서는 이 연구용역의 결과물이다.

전체 229페이지에 이르는 이 장문의 연구보고서는 상당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면 그 핵심은 '대통령 탄핵 관련 방송에 탄핵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50:50으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관련 방송은 공정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보아도 (탄핵방송은) 공정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보고서 166쪽)

이글은 보고서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는 아니다. 다만 탄핵방송과 탄핵사태 등에 대해 이 보고서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 인식의 문제, 또 이 보고서가 근거하고 있는 기본적 판단에 대한 문제, 그리고 이 보고서가 가지고올 후유증 등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정리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도 강조되고 있고 방송심의에서도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기준, 즉 방송이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갈등관계를 왜곡하지 않고,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 토론프로그램에서는 형평성·균형성·공정성을 유지하여야 하고, 출연자나 인터뷰 대상자의 선정에 있어서도 대립되는 견해를 가진 개인과 단체가 균형있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 정치문제를 다룰 때 특정정당이나 정파의 이익이나 입장에 편향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등은 신문은 물론 방송에서도 매우 당위적 명제들이다.

그러나 굳이 이같은 기준을 설정해 따져보지 않더라도 탄핵방송에 탄핵안에 대한 찬성보다는 반대의 내용이 훨씬 많았음은 따로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보고서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한나라당이나 조중동 등의 신문, 그리고 탄핵을 찬성한 집단이 '방송편파론'을 주장한 근거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들 '방송편파론'의 주장을 요약하면 탄핵에 대해서는 찬반의 의견이 있기 때문에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방송은 양쪽을 공정하게, 형평에 맞게 중립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 보고서의 의의는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을 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재확인한 것일 따름이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탄핵방송이 편파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은 탄핵이라는 사건의 근본적 성격을 어떻게 판단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보고서는 우선 탄핵사태를 대통령 탄핵 소추안의 국회통과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 집단 간의 분쟁으로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정치적 갈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국회의 탄핵 소추 절차를 적법하다고 판시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도 이러한 입장이 확인되었다면서 탄핵사태는 국정 현안을 둘러싼 의회 내의 정당 간 쟁론, 선거에서의 정당 간 경쟁과 같은 성격의 갈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보고서 19쪽).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탄핵방송은 '진보좌파 이념에 동조적인' 공영방송이 '집권 여당의 후원자로서 활동하면서'(보고서 3쪽) 전개한 편파방송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탄핵을 결의하고 실행한 집단, 탄핵에 대한 찬성여론 등이 분명히 있음에도 이들에 대해 방송은 충분하고 균형있게 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거나 부여하지 않은 잘못을 범한 것이 된다. 이는 사회적 갈등의 보도에 있어 방송에, 나아가서는 언론 일반에 요구되는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불편부당함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당시의 '한민자' 연합이 여론을 무시하면서까지 밀고나간 탄핵은 일종의 '의회 쿠데타'로서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그 반대의 입장보다 오히려 더 많았으며 이는 탄핵을 전후한 당시의 여론조사나 이번의 총선결과를 통해서도 입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보고서도 기술하고 있듯이 방송은 탄핵사태의 성격을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제도권 정치집단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일탈적 행위로 보았거나 그렇게 보고자 했다고 추론'(보고서 166쪽)할 수 있고, 이것은 오히려 우리사회의 민주적 발전이라는 역사적 맥락에 더욱 합당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탄핵방송은 편파방송이 아니라 '쿠데타'를 저지른 집단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충실히 반영하고 함께 이끌어냄으로써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앞장선 주체라고까지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탄핵방송은 오히려 정론직필의 언론으로서 수행해야할 당위적 과제를 실천에 옮긴 것이라는 뜻이 된다.

결국 문제는 탄핵사태의 기본성격을 어떻게 보는가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언론지형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여기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한다면 이 보고서의 의미는 반감된다. 그러나 어쨌든 이 보고서의 파장과 후유증은 매우 클 것이다. 그리고 그 파장과 후유증은 연구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안타깝게도 매우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이 지점에서 크게 우려되는 사태는 KBS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와 함께 방송편파에 대해 소위 학자들이 보증한 객관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방송구도 전체, 특히 공영방송 체제 전반을 흔들고자하는 세력과 집단이 힘을 얻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는 우리 사회에 공영방송 체제에서 사영상업방송이 주가 되는 방송체제가 구축되는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이나 조선, 동아 같은 신문들이 오래 전부터, 그리고 지금부터는 더욱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는 주장이다.

말할 나위 없이 우리나라의 공영방송 체제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공영방송에 문제가 있다 해도 그 문제의 크기가 공영방송 체제를 해체해야 할 정도로 큰 것인지, 그리고 지금 이 지점에서 공영방송 체제, 나아가 우리나라 방송제도 전체를 흔드는 것이 과연 올바른 처방인지 진지하고 사려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에 대한 문제인식이 부족한 학문적 연구가 가지고 오는-물론 이들 연구자들이 이러한 결과를 의도했다거나 또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뜻은 아니지만-결과가 참혹스러울 수 있음은 우리가 지난 60·70·80년대를 거치면서 익히 경험한 비극이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아니러니 한 가지. 즉 이 보고서가 탄핵방송을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탄핵관련 신문보도에 관한 보고서였더라면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하는 점이다. 탄핵방송을 평가한 이 보고서의 기준을 원용해 따져본다면 '한나라당의 후원자'로서 조선·동아·중앙의(보고서 3쪽) 탄핵관련 보도는 아무리 느슨하게 적용한다 해도 공정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탄핵사태를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한 쿠데타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판단한다면 조선·동아·중앙은 반민주적 언론집단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 전개될 무성한 논쟁의 시초가 될 것이다. 바라건대는 사안에 대해 이성적인 논의가 이루어짐으로써 보고서가 애초 의도하고 있는 소박하지만 중요한 목적, 즉 향후의 유사 쟁점에 대한 하나의 판단기준으로 제대로 기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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