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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소속 변호사와 법학자들이 <오마이뉴스>에 릴레이 기고를 시작합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편견과 잘못된 상식을 깨는 내용의 [100문 100답 - 국가보안법, 이것이 궁금하다]가 그것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질문 3. 이적표현물 기준이 궁금합니다

국가보안법 상 이적표현물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요? 국가보안법에 명시되어 있나요?


사상ㆍ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침해해 위헌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은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을 찬양ㆍ고무ㆍ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ㆍ선동할 목적으로 문서 도화 기타 표현물을 제작ㆍ소지하는 등의 행위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제7조는 찬양ㆍ고무죄, 이적단체가입죄 등도 함께 규정되어 있어 불고지죄와 더불어 국가보안법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손꼽히는데 그 이유는 동조가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인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기 때문입니다.

'용공 주술사' 공안문제연구소

국가보안법은 무엇이 이적표현물에 해당하는지 그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법원의 해석에 의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우리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인정되기 위하여는 그 내용이 대한민국의 존립ㆍ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어야 한다(2000도5442)"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판시 내용의 표현만을 놓고 보면 이적성 유무를 엄격히 판단하는 것같지만,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이 위헌이 아니라는 전제와 북한이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판단하고 있어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범위는 매우 넓은 편입니다.

한편 실제 소송에서 이적성 판단의 유력한 증거로 채택되고 있는 것은 경찰대학 산하에 있는 공안문제연구소라는 곳의 감정결과입니다.

공안문제연구소는 서울 남영동의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있던 내외정책연구소가 그 이름만 바꾼 것인데 주로 국정원, 군기무사, 검찰, 경찰의 의뢰를 받아 공안관련 문건의 감정 및 분석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좌익·용공성·친북성·반정부성' 4부류로 '빨간딱지'

이 연구소는 미국과 우리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나 단체와 그들의 표현물에 대해 '좌익, 용공성, 친북성, 반정부성'이라는 딱지를 아무 거리낌없이 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감정결과는 사법부에 의하여 별다른 의문없이 유죄의 증거로 채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용어는 그 의미부터 논란이 있고 판단기준이 전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유죄판단의 근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부당하고, 엄격하게 범죄를 증명해야 할 검찰과 법원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항의도 이적표현

이적표현물로 인정된 몇 가지를 볼까요?

과거에는 이제부터 드는 예보다 훨씬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적지 않았습니다만 근래의 예만 들어보지요

화가 신학철의 그림 '모내기'는 외세, 군사독재정권, 코카콜라 따위의 외래문화 등의 반통일적 이미지들을 농부의 써래질로 밀쳐내고 백두산 아래 한반도에서 풍성한 통일수확을 기뻐하는 상징적 구도를 밝은 터치의 색조 아래 담아 밝고 경쾌한 메시지를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북한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남한과 미국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이적표현물로 인정되어 압수된 지 올 해로 15년이 되었습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이 판결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법무부에 그 반환과 보상을 권고했으나, 정부는 이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총련은 여전히 이적단체로 남아있습니다. 수배 중인 한총련 대의원이 구속될 경우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죄목이 이적표현물 제작 등 죄인데 문제되는 문서들의 내용이라는 것이 '주한미군철수,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항의, 국가보안법 철폐, 북미평화협정체결'등 입니다. 검찰과 법원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이적의 표지가 되는 것입니다.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항의하고 미국의 조치를 비판한 사람들이 그 뜻을 인터넷에 올리고, 일부는 다른 사람의 글을 다른 사이트에 옮겼는데 극단적으로보면 그 모든 사람이 국가보안법상 동조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청년단체협의회는 6ㆍ15공동선언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추진하자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작성ㆍ배포했다는 이유로 유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송두율 교수는 그의 저서 '역사는 끝났는가' '경계인의 사색' 등이 대한민국사회를 냉엄하게 비판하면서도 김정일이나 북한사회를 미화ㆍ찬양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위와 같은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놓고 볼 때 우리 대법원은 미국이나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 북한의 주장과 유사한 면이 있는 내용의 표현에 대해 그러한 표현이 우리나라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어떤 실질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는 지에 대한 아무런 엄격한 근거없이 이적표현물로 인정하여 처벌하여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헌재의 결정도 문제해결에 도움 못 줘

헌법재판소는 계속해서 제기되는 동조의 위헌성에 대해 최근 "그 행위가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이를 적용하는 것으로 그 적용범위를 축소제한 하는 한 헌법에 합치된다(99헌바27)"고 판시하여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정치적 자유와 사상적ㆍ이념적 가치판단이 전제된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판결을 내려 온 헌법재판소의 입장을 다시 보여주는 것으로, 그 위헌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임에도 정면으로 위헌 결정을 할 경우의 정치적인(?) 부담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항은 위헌성이 있는데 엄격하게 해석, 집행하면 위헌이 아니라는 취지의 이런 결정으로 인하여 실제 해석상의 혼란이 더 심해지고 실제 별다른 개선효과도 없습니다.

이는 과거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변경된 국가보안법의 적용 상황이 그 전과 별 변화가 없고, 구속자 수 등도 크게 줄지 않았음으로도 반증된다 할 것입니다.

동조가 존재하는 한 공안당국은 언제든지 동조에 근거한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어 그에 따른 인신 구속과 표현물의 압수조치 등 인권침해의 소지가 여전합니다. 더구나 우리 대법원이 헌재 결정의 대법원에 대한 구속력을 부정하고 있어 대법원이 얼마든지 헌재와 다른 해석을 통해 유죄판결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축소해석, 집행만으로 동조의 위헌성이 제거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같은 헌재의 결정은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헌재의 존재의의를 스스로 거스르는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해결의 유일한 방안은 국가보안법 폐지

결국 이러한 표현물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가 가능하고, 별다른 제한없이 기소되며, 별다른 사회적,학문적인 검증도 받지 않은 사람의 감정서에 의하여 유죄로 인정되며, 표현의 자유의 제한에 따르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도 적용되지 않는 이적표현물 처벌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선한 법이 잘못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국가보안법 자체의 문제로부터 기인하는 것인바 국가보안법의 폐지만이 대안인 것입니다.

(답변: 류제성 변호사 / 감수: 백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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