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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문점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나무들은 아직도 봄을 맞지 못했다.
ⓒ 한성희
아직도 우리 마음과 현실 속에는 휴전선이 엄연히 존재한다. 4월 29일에 찾은 휴전선에는 나무들이 엷은 녹두색으로 단장하면서 분주하게 늦은 봄을 맞고 있었다. 더위까지 느껴지는 이 늦은 봄날,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에 있는 판문점을 찾았다.

▲ 회담장 안에서 경계 태세로 서 있는 군인을 잠시 인형으로 착각했다.
ⓒ 한성희
예전보다 절차가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판문점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최북단 JSA의 자연도 뒤늦은 계절을 맞느라 부산했다. 정확하게 JSA(판문점공동경비구역)는 군사 분계점의 정중앙에 있는 회담장을 중심으로 400m 반경 원의 면적을 의미한다. 다 알다시피 이곳은 유엔군이 지키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장소다.

시멘트 블록에 금을 긋고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희한한 곳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 테니까 더 이상의 설명은 그만두기로 하자.

▲ 판문점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 마을. 멀리 인공기가 보인다.
ⓒ 한성희
다만 나는 이곳에서부터 시작해서 북쪽 DMZ의 늦봄을 가볍게 구경하려고 한다. 민통선 지역을 포함해 휴전선의 늦봄을 볼 수 있는 것을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왠지 씁쓸해진다. 하지만 날씨는 얄미울 정도로 화창하다. 땀이 솟는다. 남한의 최북단이어서 그런지 판문점의 나무들의 잎이 무성하지는 않다.

회담장 밖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서있는 유엔복 차림의 병정을 보고 인형을 세워 놓은 줄 착각했다. 꼼짝도 않고 두 주먹을 쥐고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은 회담장 안에서도 볼 수 있었다. 설마 밀랍 인형일까? 가까이 가서 보니 손이 약간 흔들린다. 한국인이지만 그들은 유엔사 경비대대 군인들이다.

▲ 판문점 3초소의 이름 모를 야생화.
ⓒ 한성희
선글라스를 쓴 것은 북한군과 눈을 마주쳐서 불필요한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문득 그들의 모습이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의 이병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선글라스를 쓴 군인이 지키는 3초소에는 이름 모를 노란 야생화가 아름답게 피어 었다. 3초소에서 내려다 보이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 중간 지점이 바로 남북 경계선이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에는 4초소가 있고 그 중간에는 잘린 미루나무 흔적이 남아있다. 그 나무는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건너 편으로 북한 기정동 마을에 높이 솟아 있는 인공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깃대란다. 송악산도 뒤편에 보인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북쪽의 산야는 벌거숭이로 민둥산이다. 이곳 자유의 마을에 펄럭이는 태극기도 100m 높이에 매달려 있으니 둘다 어리석은 깃대 높이기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쯤 저 두 깃발이 내려오려나?

최초의 국제 역사 '도라산역'

▲ 3초소에서 바라본 북쪽 마을. 산이 헐벗은 곳이 북한지역이다.
ⓒ 한성희
"여러분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제역에 와 계십니다."

유일한 국제 역사인 도라산역의 초대 역장인 김시철씨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도라산 국제역은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민통선 안에 있는 역사다. 경의선의 연결로 개성 공단을 시점으로 남북 경협 시대에 필요한 세관 업무를 도라산역이 맡게 된다. 국제 역사이니 당연히 여권 수속을 위한 장소도 있다.

앞으로 남북한을 오가는 경의선을 이용하려면 도라산 역에서 내려 국제역사를 거쳐 여권 수속을 하고 신의주행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도라산 역사의 지붕은 두 손이 악수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 도라산역
ⓒ 한성희
도라산 역사에 들어서서 북쪽으로 난 철길을 계속 걸어가면 남방한계선을 볼 수 있다. 역사 옆의 도로를 이용해 개성 공단 건설을 위해 차량들이 오가고 있다.

"달밤에 철길을 내려다 보면 노루들이 후다닥 뛰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순간, 가슴이 저려오지요."

김시철 역장은 시인이다. 도라산 역에 대한 그의 시 두 편이 역사 휴게실에 걸려 있다. 도라산 역사 바깥으로 나가면 화단가에 토끼풀이 귀여운 손가락을 벌리고 있다. 민통선 지역이라 이곳은 비교적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편이다.

▲ 도라산역의 표지판.
ⓒ 한성희
"이곳은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 나라 대통령이 모두 방문한 곳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대통령이 찾아오는 기차역은 여기밖에 없어요."

판문점에서 도라산역으로, 도라산역에서 도라산 전망대로 가는 도로는 한가로웠고 공기는 티없이 맑았다. 판문점을 벗어난 민통선 지역에는 푸르른 잎으로 무성하다. 도로 주변에 귀룡나무가 하얀 꽃을 함빡 매달고 있다. 민통선에선 유난히 귀룡나무가 많이 눈에 띈다.

▲ 귀여운 손바닥을 내밀고 있는 토끼풀.
ⓒ 한성희
도라산이라는 명칭은 신라 56대 왕인 경순왕이 가끔 이곳을 찾아와 멀리 경주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도라보았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라는 일설도 전해진다. 진위 여부는 알기 어렵지만. 경순왕릉도 도라산처럼 민통선 안에 있으니 홀로 쓸쓸할 것이다.

▲ 이곳에 사람이 분주하게 오가는 날이 언제일까?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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