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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에 발표된 군국가요 가사를 살펴보면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확인한 바 있는 <어머니의 기원>, <지원병의 어머니>, <아들의 혈서>, <군사우편> 등이 모두 대표적으로 그러한 예에 해당된다. 군국가요라는 것이 결국 일제가 강압적으로 구축한 전시 체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사실 그러한 현상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아무래도 가장 먼저 피해자가 되는 것은 무기를 들고 전선으로 나서야 하는 젊은 남자들이다. 그리고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가장 간절하게 그리는 사람, 또 후방에서 그들을 가장 애절하게 염려하는 사람은 역시 어머니이기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 남편과 아내의 관계 역시 모자 관계에 못지않은 애틋함을 자아낼 수 있기는 하나(그러기에 <결사대의 아내> 같은 군국가요가 적지 않기도 하다), 보다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의 발원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발표된 <전선야곡>이 전후방을 아우르는 일대 히트곡이 되었던 것도 '정안수 떠 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어머님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같은 가사 덕분이었을 것이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모자 관계를 소재로 한 군국가요 가운데에는 군국가요답지 않게 선동적이기보다는 애처로운 분위기가 짙은 곡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꽤 있다. 이미 살펴본 작품 중에서는, 비록 일본 군국가요의 번안곡이긴 하지만, <지원병의 어머니>가 그러한 경우이다. 비슷한 예로 <아류샨 천리>를 만든 함경진과 한상기가 작사, 작곡한 <아들의 소식>이라는 노래도 있다.

한 자 쓰고 충성일세 두 자 쓰고 효성일세/ 태백산 줄기 타고 넘어 온 편지 사연/ 아들의 소식 읽고 불현듯이 울었소
첩첩 산도 천리라네 수렁길도 천리라네/ 한 목숨 바치겠단 아들의 굳은 맹세/ 그 마음 고마워서 합장축원하였소
아들 두어 자랑일세 아들 키운 보람일세/ 어머님 내 꿈 속에 노래를 부르더니/ 포탄에 꽃이 되어 돌아온다 하였네

(유성기음반에 실린 내용을 직접 채록한 것이다)

일제 시대에 발매된 유행가 음반으로는 거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이 노래는 1943년 11월 신보로 콜럼비아레코드(당시 이름은 닛치쿠(日蓄)레코드)에서 나왔다(음반번호 40919). 가수는 <참사랑>, <봄날의 화신(花信)> 등 몇몇 군국가요를 부른 옥잠화이다.

효성보다 충성을 앞세우고, 목숨을 바치겠다는 아들의 맹세에 축원을 한다는 등 모정이 왜곡되어 표출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들의 소식>도 여지없는 군국가요이기는 하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아들의 소식 읽고 불현듯이 울었소' 같은 대목처럼 아들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더구나 차분하면서도 애상적인 분위기로 흐르는 곡조는 언뜻 들었을 때 도저히 군국가요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아직 음원이 공식적인 복각 음반으로 재발매되어 있지 않아 쉽게 접할 수 없기는 하지만, 군국가요라면 으레 빠른 박자에 선동적인 행진곡풍일 것이라는 식의 피상적인 편견을 깨뜨리기에 충분한 곡이다.

앞서 남해성, 이해연, 옥잠화 등 가수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이들이 부른 노래 가운데 군국가요의 비중이 높은 것은 가수로 활동을 시작한 시기가 1941년 이후였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는데, 이는 가수뿐만 아니라 작가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인물이 바로 함경진, 한상기 등이다.

현재 그 이력을 전혀 알 수 없는(본명인지 필명인지조차도 확인할 수 없는) 함경진은 1942년 2월에 첫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던 한상기(1917~)는 1941년 10월 이후 작곡가로 활동한 흔적이 보인다.

1943년 말까지 약 2년 정도 되는 기간 동안 두 사람이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표한 작품 수는 각각 15곡, 19곡 정도로 확인되므로,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군국가요의 비중이 높은 편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후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표피적으로만 보아 마치 이들이 군국가요의 대표적인 작가라는 식으로 호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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