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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성공한 인간배아 줄기세포 배양 건을 다룬 중앙일보 12일자 기사.
ⓒ 중앙일보 PDF

국내 연구진에 의한 세계 최초 '인간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 보도를 놓고 벌어진 '엠바고 파기' 논란이 조중동간의 신문전쟁으로 확산된듯한 모습을 보여 독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지적이다.

인간배아 복제 기술의 신기원을 연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되는 이번 연구결과는 애초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를 통해 처음 공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지난 12일 학자와 과학전문지 사이에 오랫동안 지켜져온 관행을 깨고 첫 보도를 터뜨려 '엠바고 파기'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세포응용연구사업단 연구팀(서울대 황우석·문신용 교수 등)은 첫 보도가 나가자 12일 오전 서울대 의대에서 중앙의 엠바고 파기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황윤영(한양대) 교수 등 4명은 "이번 연구결과는 사이언스와 미국 국가과학진흥회(AAAS)에 의해 전 세계에 한국시간으로 13일 오전 4시까지 보도제한이 설정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구 책임자에게 아무런 확인절차도 없이 일방적 보도를 한 것은 앞으로 한국 과학계가 입게 될 국제적 위신 추락과 난관봉착 등 측면에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연구발표차 미국 시애틀에 머물고 있는 황우석·문신용 교수 등도 유감을 전해왔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른 언론사들의 비판 보도가 잇따랐다. <조선일보>는 당일 오전 10시께 중앙일보의 엠바고 파기를 가장 먼저 언급했고, <연합뉴스> <한국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국민일보> <서울신문> 등이 연달아 엠바고 문제를 제기했다.

중앙은 다음날 반박 기사와 함께 해당 기자의 해명을 올리며 맞대응을 펼쳤다. 논란이 증폭되면서 '엠바고'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이슈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조중동 자존심 싸움에 독자 알권리는 뒷전

▲ '엠바고' 파기 논란을 다룬 '조중동' 기사.
ⓒ 오마이뉴스 김태형
엠바고 파문은 그동안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조중동의 지면 공방으로 옮아갔다. 이들 3사는 이번 연구의 성과와 의미, 생명윤리 문제 등을 다루면서 한편으로는 '엠바고 파기' 논란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조선·동아는 중앙의 엠바고 파기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며 "국제 과학계에서 한국 위상을 추락시킨 부도덕한 행위"로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 중앙은 "독자취재에 의한 정당한 특종이 일부 신문으로부터 공격당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사이언스는 물론 연구진이나 어떤 기관으로부터도 엠바고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게 중앙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들은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에 걸쳐 자사 지면과 인터넷판을 통해 뜨거운 '보도전쟁'을 치렀다. 특히 중앙과 동아의 지속적인 공방은 진실게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뜨겁게 전개됐다. 이번 엠바고 파기의 당사자인 홍혜걸 중앙 기자와 그 책임을 정면으로 제기한 이영완 동아사이언스 기자는 14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는 독자의 알권리, 국익 차원의 엠바고, 기자윤리 등의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조중동의 자존심 싸움이 투영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관련보도에서 보여준 아전인수식 해석과 지나친 깎아내리기, 인신공격성 표현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본지 특종 안했다면 국내학자 개가 외신 베낄 뻔"(중앙), "심지어 한 방송사 간부는 육두문자까지 썼다고 한다"(중앙), "팩트상 하자가 없는 완벽한 기사"(중앙), "놀다가 물먹은 게으른 기자"(중앙),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게 부끄러울 정도"(동아), "국익을 무시한 자사 이기주의의 소치"(동아)", "보도제한 파기, 문제 삼아달라", "과학계에서 한국 위상 추락"(조선) 등의 어휘들이 대거 등장했다.

독자들 "곁가지 논쟁에 몰두하는 언론상황 한심스럽다"

▲ <사이언스> 인터넷속보로 실린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논문.
ⓒ 사이언스 PDF
하지만 정작 독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엠바고 파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중앙의 관련기사 댓글에는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독자 김지영씨는 댓글을 통해 "우리 언론 특유의 '한건 잡았다'식 터뜨리기 아닌가, 정말 국익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일이었는지 묻고 싶다"며 절독 의사와 함께 "변명보다는 잘못을 시인하는 반성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밝혔다.

다수의 독자들은 과학논문 검증의 중요성과 특수성을 들어 '엠바고 파기' 정당성을 주장한 홍혜걸 기자의 시각에 반대했다. 세계적 석학 수준의 편집위원들이 활동하는 과학전문지의 경우 정확히 입증된 과학적 사실을 확증한 뒤 논문을 싣기 때문에 그 자체가 뉴스거리인데, 곁가지 논쟁에 몰두한 우리 언론상황이 '한심스럽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런가하면 동아·조선의 비판 보도 역시 환영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인터넷 중앙 독자인 김범용씨는 "'배아 줄기세포 개발'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부터 물었다. 김씨는 "외신을 보면 한국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 침이 마르도록 보도하고 있다"며 "조선 동아 등은 황 박사팀 개가를 보도하는데 인색하면서도 중앙일보 비난에는 열을 올리는가"라고 반문했다.

범례를 벗어난 조중동의 지면공방 등 신문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3사는 지난해부터 중앙의 '조중동 이탈 움직임'을 주시해온 조선일보의 경계, 중앙의 노무현 대통령 단독대담 성공, 최근 촉발된 '조선-동아' 신문가격 할인전쟁과 '2위 선점'을 위한 '동아-중앙'의 장외전, 84년 역사를 내세운 '동아-조선'의 민족지 논쟁 등 복합적인 경쟁구조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 엠바고파기 '신문전쟁' 공방 일지

12일
새벽 6:22 중앙일보 첫 보도. <장기 복제 길 한국인이 열었다>
오전 9:49 조선일보, 중앙일보의 엠바고 파기 첫 언급. <장기 복제 길 한국인이 열었다>
오전 연구팀 황윤영 교수 등 4명 엠바고 파기 비판 성명
오후 2:56 연합뉴스 <황교수팀 "성급한 보도로 한국과학계 위신추락"> 보도
오후 한국과학기자협회(회장 이찬휘) 엠바고 파기 비판 성명
오후 6:23 조선일보 <국제 엠바고 깨버린 중앙일보 보도 '물의'> 보도
오후 11:23 동아일보 <"일방보도 유감...논문은 정상 게재"> 보도
오후 11:54 중앙일보 <중앙일보가 특종보도 안했다면 개가 외신 베낄뻔>보도

13일
오전 02:09 동아일보 <한국 과학계 국제위신 추락> 보도
오후 03:58 중앙일보 <중앙일보'국제 엠바고' 파기 파문의 실상> 보도
오후06:21 중앙일보 <취재일기-엠바고와 언론> 보도
오후18:13 중앙일보 <세계언론 '줄기세포 배양' 연일 극찬> 보도

14일
오전07:06 동아일보 <엠바고 어길 땐 논문게재 취소등 해당 과학자 피해> 보도
오전07:06 동아일보 <황교수 "보도제한 파기문제 삼아달라"> 보도
오전07:20 MBC라디오 <시선집중> 홍혜걸(중앙), 이영완(동아) 기자 격론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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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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