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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5번째 고속철도 보유국이 되었다.
ⓒ 이종원
고요한 아침의 나라 그 후 105년

지난 1899년(광무3년) 9월 18일 오전 9시.‘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힘찬 기적 소리와 함께 단잠에서 깨어났다. 노량진과 제물포 사이를 잇는 경인선 기차였다. 그로부터 105년 후. 당시 <독립신문> 기자가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고 평했다던 경인선 열차 속도의 딱 10배, 시속 300km에 이르는 고속철도가 개통됐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자‘경제의 대동맥을 뚫는 사업’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고속열차는 서울 부산을 2시간 40분만에 주파하게 된다. 지금까지 가장 빠르다는 새마을호가 4시간 10분이나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고속철도 개통으로 지방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우 신칸센 개통 이후인 1970년대 들어 지역경제 활성화와 동시에 도시로 빠져나갔던 인구의 U턴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로 유입하는 인구 역시 줄었다고 한다. 중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전국이‘1일 생활권’이라는 데 방점을 찍어가며 달달 외워댔는데, 이제는 전국 ‘반나절 생활권’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 고속철도 승강장인 용산역은 국제공항처럼 넓고 깨끗하다.
ⓒ 이종원
용산역을 출발하며

오는 4월 1일부터 일반 승객을 맞을 한국고속철도(KTX) 고객평가단의 일원으로 용산-동대구간 고속열차 시승에 참가하게 되었다. 낡았던 용산 역사는 높고 화려했다. 인천공항처럼 천장엔 대형 채광창이 있어 밝고 아늑했다. 화장실도 특급호텔처럼 시설이 좋고 깔끔하다. 무엇보다 전철역과 고속철도 역사가 붙어 있어 전철에서 내려 바로 탑승할 수 있다.

기대반 호기심반이랄까? 드디어 고속열차는 용산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앞뒤 2량의 기관차와 18개 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차 한 량에 56명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다. 한 기차에 900여 명이 탑승한다고 한다. 여승무원이 1호차에서 18호까지 가려면 20여 분이 걸릴 정도로 길다.

거꾸로 가는 열차

워낙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고속열차의 디자인이나 색깔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강렬한 붉은색 계열이나 한국 고유의 문양을 그려 넣으면 좋았을 것이다. 승객들의 가장 큰 불만은 의자가 협소하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속도를 최대한 내기 위해 유선형으로 만들기에 기존 열차보다 폭이 작아졌다는 것이다.

결국 통로도 한 사람만이 간신히 지나칠 정도다. 기차여행의 또 다른 묘미인 홍익회 카트가 지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일반석은 줄다리기하는 것처럼 반이 뚝 잘려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좌석이 회전되지 않아 승객의 반은 진행 방향을 등지고 앉아야 한다. 반대방향으로 차창을 바라보니 조금 어지럽다.

느릿느릿 고속열차

광명역까지는 15분이 걸렸다. 도심을 통과하고 기존선을 이용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차한다면 고속철이 말 그대로 저속철이 되는 것은 아닐까? ‘정치적인 고려가 있었다’ 혹은 ‘지역이기주의가 고속철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등 말들이 많았다.

이유야 어찌됐든 정말 이러다간 저속철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는 4월 1일 개통될 고속철도의 정차역은 경부선 9곳, 호남선 13곳이나 된다. 이 역들을 다 서게 된다면 분명 저속철이 될 것이 뻔하지 않는가?

철도청은 이런 우려를 씻기 위해 고속열차가 정차하는 역을 열차마다 다르게 배정해, 열차에 따라 정차하는 역을 3~4개로 제한해 운영할 방침이다. 즉 대전이나 동대구, 광주 등 큰 역에는 무조건 서겠지만, 광명역 등 작은 역에는 실제 승객량을 측정해 1시간에 한 번 정도 정차하는 등 운영의 묘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 시속 300km라는 방송이 나오자 환호를 하고 있는 승객
ⓒ 이종원
총알탄 사나이

광명역을 벗어나 고속열차 전용선에 들어서자 기차는 사정없이 달린다. 지금은 속도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오지만 개통이 되면 모니터에 속도가 나온다고 한다. 300km라는 방송을 듣자 승객들은 환호한다. 총알탄 사나이가 따로 있을까? 그러나 속도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달려도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고속열차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광명역에서 천안아산역까지 20분 걸렸다. 천안에 사는 할머니가 자기 좌석 찾다가 헤매다 보면 바로 천안에 도착해버린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결국 할머니는 비싼 돈을 주고 입석으로 가는 셈이다.

▲ "꿈꾸는 것 같아요. 세계에서 가장 긴 스포츠카를 탄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할 겁니다.”
ⓒ 이종원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하고 학교까지 결석한 이찬희(13) 학생은 고속철도를 친구들보다 먼저 시승한 것에 무척 고무된 표정이다. 과학의 집약인 고속철도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이다.

▲ 기차역 이름때문에 지자체간 싸우다가 결국 '천안아산역(온양온천역)'이란 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 이종원
지역불균형, 되레 심해질 수도

천안아산역(온양온천)에 도착했다. 출발 44분만이다. 어린 시절 동네 아저씨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원래 경부선은 조치원과 청주 인근을 지나는 노선이 아니라 ‘우리 고향’ 충주를 지나기로 됐었어. 그런데 당시 고향 양반들이 ‘어디 양반이 사는 고장에 쇳덩이를 다니게 할 수 있는가’ 하고 들고일어났단다. 그래서 경부선 노선이 충주에서 훨씬 떨어진 청주 인근을 지나게 됐다고 그래.”

물론 지금이야 ‘믿거나 말거나’류의 흘러간 옛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만약 경부선이 충주를 지나게 됐더라면 충주도 많이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한 표현이 아닐까.

▲ 1차로 개통되는 경부고속철도
ⓒ 철도청
그런데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벌써부터 지역불균형이 심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는 이들이 있다. 고속철도의 노선이 경부선을 그대로 따라 가고 있는데 군사정부 시절 구축된 지역불균형이 되레 심화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하긴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역이 있는 도시 사이에는 반나절 생활권이 이뤄지겠지만 고속철도 노선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는 강원도나 전남 남서부 등은 더욱 낙후될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비록 고속철도 노선 상에서 위치한 지역이라 할지라도 역이 없다면 역이 있는 도시로 인구 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제 무궁화호는 못 타나요?

10시 49분 대전역이다. 평소 시간이 날 때면 대전에서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곧잘 찾았던 곳. 그런데 이제 고민 거리가 하나 늘게 됐다.

지금까지는 무궁화호를 타면 가장 쌀 때는 8000원. 아무리 비싼 주말이라도 9400원이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거금 2만600원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서울-대전간 운임이 무궁화호 대비 2.19배, 새마을호 대비 1.48배로 책정됐기 때문이다. 고속철도가 개통돼도 꾸준히 무궁화호를 타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우등고속이 등장한 뒤 일반 고속 운행이 줄어들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우등고속을 타야 했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 일반실과 특실 내부모습이다.특실은 1열에 3좌석이 배열되었고, 좌석은 180도 회전이 된다.
ⓒ 권기봉
실제로 철도청에서는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경부선은 기존의 65%, 호남선은 70% 수준으로 운행할 방침이다. 게다가 중장거리 노선의 경우에는 경부호남선은 각각 최고 70%, 50%까지 줄어들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고속열차를 타야 할 때도 있을 수 있단 얘기다.

다만 다행스러운 건 다양한 할인제도를 통해 이런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청소년이나 노인, 비즈니스, 법인 등 4종류로 구분된 할인카드를 발급 받으면 3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또 출퇴근이나 통학 등을 위해 ‘정기적’으로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40% 상시 할인을 적용받을 수 있다. 그리고 10명 이상이 함께 타면 10%의 단체할인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전에 계획하고 여행을 다녔던가?

이번에 책정된 고속철도 이용요금은 다음과 같다. 서울을 출발 역으로 했다고 가정하고 ▶천안아산 11,400원 ▶대전 20,600원 ▶동대구 40,000원 ▶부산 49,900원 ▶익산 28,600원 ▶광주 38,200원 ▶목포 42,900원.

오손도손 기차여행이 좋다

구수한 목소리로 승객의 시선을 모았던 홍익회 아저씨는 이제 다시 보기 힘들지 모른다. 통로가 좁아 카트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열차마다 설치된 딱딱한 자판기가 그걸 대신하고 있다.

서울에서 온 김덕성(36)씨는 “무궁화호는 그래도 자리를 돌릴 수 있어 대화도 가능했고, 바깥 구경도 하면서 정감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빠른 이동을 위한 것이라면 서울서 부산을 2시간 40분에 주파하는 고속열차가 어울릴 수 있겠지만,‘과정’이 더 중요할 수 있는 일반 여행이라면 꼭 고속열차가 아니어도 여유 있는 기차 여행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궁화호 여객편수가 적어지면 울며 겨자먹기로 고속철도를 타야 할 것 같습니다”고 아쉬워 했다.

▲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금호개발 직원들
ⓒ 이종원
고속열차에서 아이디어를 내봐.

기업도 새로운 싸움에 돌입했다. 운송, 물류, 여행 등 관련회사는 새로운 승부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렌트카와 콘도를 운영하고 있는 금호개발(주)의 임직원 30명도 고속철도와 새로운 운송수단을 적응하고 연계된 상품개발을 위해 고속철도에 올라탔다. 직원들간 수시로 의견을 나누고 객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모니터링 하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어떤 직원이 피곤해서 졸고 있었나 보다. 김성산 사장은 "자네 여기 자러 왔나? 아이디어 생각해 봐."

▲ "스튜어디스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 고속철도 여승무원
ⓒ 이종원
"고속철도의 새로운 서비스 기대해 주세요."

이제는 항공기처럼 기차에서도 여승무원의 친절한 미소를 보게 된다. 여 승무원은 3량마다 한 명이 배치되어 있다.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고속철도의 일원이 되어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번 여승무원 모집에도 13대 1의 경쟁률을 뜷고 어렵사리 고속열차에 탑승한 것이다.

특실은 항공기 수준의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한다. 참 생일을 맞이한 분들에게 깜짝파티도 준비한다고 귀띔해준다.

▲ 장애인을 위해 마련한 휠체어 보관공간과 깔끔한 화장실
ⓒ 권기봉
고속철도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고속열차 고객평가단 모집

- 2월엔 학계·문화·예술단체 등 단체를 위한 고객평가단을 모집했는데 3월엔 개인모집을 할 예정이다. (3/19 이후 예정)

- 개인접수는 일찍 접수를 받기 때문에 수시로 철도청 홈페이지를 참조해야한다.

철도청 홈페이지
http://www.korail.go.kr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서울-부산 간 철도여객 수송능력은 3.4배 증가되고 화물 수송능력은 7.7배 증가할 것이라 한다. 이를 수치로 보면 여객은 하루 18만 명에서 최대 52만 명, 즉 연간 1억9000만 명으로 늘어나게 되고, 컨테이너 화물 수송능력은 연간 39만 개에서 300만 개로 급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고속철도 개통은 궁극적으로 여객과 화물 수송능력의 비약적인 증가나, 서울-부산간 409.8km를 2시간 40분만에 주파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도이지만 대륙일 수 없었고 그렇다고 바다일 수도 없었던, 그저 고립된 섬과 같은 한국. 경의선 연결 등 지금은 잠시 주춤하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남북간 철도 연결과 한-중-러간 철도 연결 노력은, 비록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지언정 엄청난 전환의 시발이 아닐까 한다.

덧붙이는 글 | 권기봉기자의 홈페이지: www.finlandian.com

이종원기자의 홈페이지:http://cafe.daum.net/mon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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