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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KBS 생방송 <100인 토론>에서 “동성애, 청소년에게 유해한가?”라는 주제로 약 90분 동안 토론이 진행되었다. 2000년 10월 KBS 길종섭의 쟁점토론 이후 3년 5개월만에 동성애를 주제로 공중파 토론 프로그램이 방영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방송 내내 동성애자의 인격권은 유린당해

그러나 TV를 시청하는 내내 불쾌감과 모멸감에 사로잡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감은 내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일까? 아니다 합리적인 이성과 상식의 기준으로 본 이성애자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라 생각된다.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중 동성애 조항삭제를 반대하는 패널로 참석한 전아무개 변호사는 동성애자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되지만 동성애는 성도착증이나 변태성욕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는 주장으로 일관하였다.(이미 세계보건기구와 미국정신의학회는 동성애를 'normal sexual'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정신의학편람에서 영구히 삭제함.)

이러한 주장은 계속 되풀이되었지만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방송 90분 내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전달함으로 인해 TV를 시청하는 불특정 다수의 이성애자들에게 편견과 혐오감을 심어줌과 동시에 수많은 동성애자들의 가슴에 상처를 안겨 주었다.

만약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 혐오 범죄가 발생한다면 편견을 조장한 전 변호사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당사자주의 외면

▲ 2002년 동성애사이트 엑스존에 대한 청소년유해매체물 철회 및 행정소송 관련 기자회견
이번 토론이 졸속으로 진행된 배경에는 패널 선정에 그 문제가 있다 하겠다. 당사자주의에 입각해 본다면 이 토론은 당초부터 문제투성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동성애자 패널 부재로 인해 스스로의 권리를 대등한 지위에서 공격하고 방어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고, 둘째 청소년보호법시행령을 만든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책임자를 패널로 선정하지 않았고, 셋째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제7조 개별심의기준 중 동성애를 삭제할 것을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 책임자를 패널로 선정하지 않았고, 넷째 국가인권위원회의 동성애 삭제 권고안 철회를 주장함으로 인해 한 동성애자를 자살로 내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책임자를 패널로 선정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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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당사자주의를 외면함으로써 TV토론은 졸속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찬성측으로 나온 패널들이 언제부터 동성애자들의 삶과 인권에 대해 활동하고 연구했는가? 난 그들이 동성애와 관련된 칼럼이나 글을 한번도 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동성애자들의 인권향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여기에 비유한다면 반대측은 논의할 가치도 없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결국 이같이 당사자주의를 외면한 TV 토론이 주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를 수 있는 권리를 위해

▲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중 동성애 조항 삭제 할 것을 요구하는 퍼포먼스 시위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무지는 한국과 같이 오랜 세월동안 일본제국주의와 개발독재, 군사독재 하의 병영국가로 불리는 체제에서는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 획일화된 선전 선동에 따라 모두가 이성애자여야 하며, 모두가 결혼해서 가정을 가져야 하며(심지어 동성애자들끼리도), 모두가 아이를 낳아야 하며, 모두의 사상은 동일해야 하며, 모든 학생은 반드시 학교에서 교복을 입어야 한다. 이것을 어기면 그 즉시 유형과 무형의 제재가 가해진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차이와 다름은 곧 차별로 이어지며 별종 취급받거나 심지어 검열 받거나 감옥을 가야 한다. 학교에서 복장이 조금만 달라도, 사상이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사회적 신분이 달라도, 머리색이 달라도, 총 들기를 거부하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하면 모두 차별받거나 권리를 박탈당한다. 그리고 이 차별과 인권침해는 우리 스스로의 삶을 검열하고 통제하게 만든다.

'It`s different' 한번쯤 TV광고에서 이 문구를 보았을 것이다. 모 기업의 핸드폰 선전 문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이와 다름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 기업들의 도구로 활용되어진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 곳곳에서 차이는 인정되기 어렵다. 공교육을 통해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차이와 다를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소위 정상인들만 살아가야 하는 비정상적인 사회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임태훈 기자는 동성애자인권연대 대표(98-2002),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99-2001),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 집행위원(2000-2001), 동성애자 차별반대 공동행동 집행위원(2001-2002), 인터넷 국가검열반대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 등을 거쳐 현재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성적소수자(LGBT)그룹 대표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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