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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우편>을 부른 이규남(李圭南)(1910-1974)은 6.25 전쟁 중에 월북을 한 탓에 이후 가요사에서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존재가 되고 말았지만, 광복 이전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활동하여 많은 인기를 누린 가수였다. 그의 대표작인 <진주라 천리 길>(이가실(李嘉實) 작사, 이운정(李雲亭) 작곡)은 월북 작가 작품이라 하여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다.

1933년 1월에 임헌익(林憲翼)이라는 이름으로 콜럼비아레코드에서 첫 음반을 발표한 이규남은 몇 달 뒤 일본 닛토(日東)레코드에서도 음반을 냈다. 1936년에는 이규남으로 이름을 바꾸어 빅터레코드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37년 6월부터는 빅터레코드의 본사인 일본 빅터레코드에서도 미나미쿠니오(南邦雄)라는 이름으로 1939년까지 많은 노래를 발표했다. 1941년부터는 다시 콜럼비아레코드로 옮겨와 전속가수로 활동했는데, <군사우편>은 바로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표한 곡이다.

이규남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발표한 작품 140여 곡 가운데에는 <군사우편> 외에도 몇몇 군국가요가 발견된다. 일본어로 불러 발표한 <血染の傳令>, <露營の煙草> 등은 일본에서 나온 군국가요 모음집 음반에서 요즘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곡이다. 우리말로 부른 군국가요는 모두 콜럼비아레코드에서 활동할 무렵에 나왔는데, 그 가운데 하나로 <승전가>(음반번호 40907)라는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빛나고 장엄하다 대동아(大東亞) 전쟁/ 우리들의 승리로 돌아왔도다/ 용사야 어서 오라 *** 들고/ 새 힘과 새 맘으로 **드리자/ 승전가 부르자 높이 부르자/ 만세 만세 만만세
대동아 공영권(共榮圈)은 동터 오르고/ 태평양의 태양도 찬연하도다/ 이*에 *고 넘친 기쁨의 물결/ 건설의 괭이 메고 활개를 쳐 보자/ 승전고 울려라 둥둥 울려라/ 만세 만세 만만세
불 붙는 성화 들고 가슴이 뛰는/ 아세아의 십일억 모든 민족아/ 형제여 새 동아를 새로 건설해/ *** 평화롭게 잘 살아 보자/ 기*을 날려라 높이 날려라/ 만세 만세 만만세
(가사지 내용을 현재 맞춤법에 따라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현재 공개되어 있는 가사지 상태가 썩 좋지 않아 가사에 일부 알아볼 수 없는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대동아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내용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 인구가 1억이 채 되지 않던 상황에서 ‘십일억’ 운운한 것은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일대를 장악해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겠다는 일본의 제국주의 야망이 그대로 반영된 대목이다.

사실 <승전가>가 발표된 1943년 3월 당시 전쟁 상황은 이미 일본에게 불리한 쪽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1942년 6월에는 태평양전쟁의 분수령으로 일컬어지는 미드웨이 전투에서 일본의 기세가 꺾였고, 이어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과달카날 전투에서도 일본군은 패퇴하고 말았다. 패전의 기미가 짙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눈앞에 두기라도 한 것처럼 <승전가>라는 노래가 나왔던 것이다. 하긴 이미 패배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었던 1944년에도 일본에서는 <勝利の日まで(승리하는 날까지)> 같은 노래가 나왔을 정도이니, 대중을 기만하고 선동한 전쟁의 광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승전가>를 작사한 사람은 김태오(金泰午)이고 작곡·편곡을 한 사람은 김준영(金駿泳)이다. 김준영은 <처녀총각>, <홍도야 울지 마라> 등 수많은 인기곡을 작곡하여 광복 이전 가요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작사자 김태오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보를 알 수 없다. 광복 이전에 발표된 유행가 목록에서 김태오라는 이름은 이 <승전가>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김태오라는 인물이 1943년 당시 유행가 작사를 할 정도의 역량이 있었다는 것인데, 만약 별명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일제시대에 시인·아동문학가로 활동하며 나운영(羅運榮)이 작곡한 가곡 <달밤>에 가사를 붙이기도 한 김태오(1903-1976)일 가능성이 있다. 이미 사망한 인물이므로, 그리고 설령 생존해 있다고 해도 군국가요가 안고 있는 민감한 문제가 있는 탓에, <승전가>를 작사한 사실을 본인에게 확인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많은 자료의 보강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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