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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9일 14주기 추모제가 열렸던 천안공원 묘역의 '나주 임종국지묘' .
ⓒ 박도
현대 서울의 어느 명문 사학 고등학교 본관 뜰에는 동상이 하나 세워져 있다. 자태를 보면 개화기 지식인의 면모로 굽어보며 손을 내밀며 무언가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동상의 아래 받침돌에는 '나를 따르라'라고 새겨져 있다.

등하교 할 때나 교내생활을 하던 중에도 학동들의 머리 속에는 '그분은 일제시대에 교육으로써 민족의 역량을 길러 조국의 광복을 실현하려 한 애국지사이셨다'란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되뇌며, 그 학교의 설립자인 그분과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각오를 새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분은 일제치하 당시 독립운동을 하거나 독립정신으로 불타 있었던 인물이 아니라, 친일행위자였음이 최근 밝혀졌다. 그러므로 '나를 따르라'란 구호의 참된 의미는 '민족주의자가 되자가 아니라 친일부역배가 되자'란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천지가 개벽할 사실이로다.

얼마 전인가, 해방 후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여 당대의 역사를 재조명한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반민족 행위자 처벌법'에 저촉되는 친일분자들을 처단하려는 시도를 다루고 있었는데 그 날 다룬 사건은 첫째, 문화교양의 표상적인 존재인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의 과거 친일 행각과 현재 심회 자술, 둘째, 조선총독부 경부보로 악명을 떨쳤던 노덕술의 변신처세술이란 두 사건으로 크게 요약된다.

그런데 이들 '황민화 정책의 앞잡이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통해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민족의 주체성과 자존을 회복하려 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1949년 경찰의 습격으로 와해되고 1966년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이르는 시기 동안 민족적 역사 의식이 매몰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친일문제에 대한 민족적 인식과 저항은 그다지 문제 삼지 않는 세태를 이루고야 말았다.

친일문제의 희석화와 민족정기의 퇴화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소위 해방공간(1945-48)에서 일제의 식민구조가 그대로 존속했을 뿐더러 친일파들이 실권을 장악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행적조사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탐구·조사할 좌파 세력과 진보적인 민족주의 세력들이 당시의 정치투쟁과 반민특위의 와해와 김구의 암살사건,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해 제거되고 말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건국과정에서 친일파들이 현란한 변신술로 반공 애국주의의 명분을 획득함으로써 쇼비니즘의 면모를 보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대국 사대주의에서 보듯 민족적 정체성이 약한 문화 전통이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도 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제3공화국의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자본의 축적을 위해 1966년 한일회담을 통해 굴욕적인 한일외교정상화조약을 맺었는데 이에 대해 반대하는 식자층들과 민중들을 극심하게 탄압한 바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황 속에서 '친일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죽음에 값하는 희생이 요구되기도 했으리라 본다.

이 때에 우리의 지성사는 실로 값진 출판물을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청년 학도였던 임종국님이 온갖 심혈을 기울여 이룬 노작 <친일문학론>(1966년. 서울 평화출판사)이란 책자다.

이 책이 출판될 당시만 해도 우리의 민족문학사의 값진 업적들이라 하는 작품들의 작자들의 대부분이 실로 부끄럽게도 창씨개명을 하고 학도병과 정신대 지원을 독려하며 황국신민의 주구 노릇을 했음을 숨기고 민족주의자란 탈의 모습으로 자신을 뽐내고만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은 일제하의 허상적 인물들을 바로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서문에 보이듯, 친일파 척결의 당위에 대한 인식이 선언적이고 단정적이어서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으나 엄청난 자료의 발굴과 정리의 작업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서 '친일의 문제'에 대한 학계의 본격적인 관심과 연구가 80년대 중반에 와서야 이루어진 점을 떠올려보자. 60년대 중반의 억압적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친일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은 참으로 놀라운 실천이라 할 것이다.

이 책의 출간 이후 임종국님은 문학의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의 전반으로 확장하여 아래의 자료에서 보듯 친일의 척결과 일제 잔재의 청산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연구 논저

<정신대> 일월서각. 1981
<밤의 일제 침략사> 한빛문화사. 1984
<일제하의 사상 탄압> 평화출판사. 1986
<친일논설선집> 실천문학사. 1987
<일본군의 조선침략사> 일월서각. 1988
'제1공화국과 친일파', <해방전후사의 인식> 한길사. 1981
'일제하 지식인의 변절', <월간조선> 80. 06
'이광수의 비극과 원천', <한국인> 85. 03
'친일파의 화려한 변신', <순국> 89. 5·6
이상 80여편.


임종국님의 이러한 실천적 작업은 이제 민족사를 올바로 기술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잡아 민족의 주체성과 자존을 회복하며, 친일의 해악을 현실적으로 제거하며, 경제·문화·정치·군사적 침략의 대응과 소위 '신군국주의'의 구호인 '신대동아공영권지배'의 기도를 척결하는 문제 등에 인식적 기초를 마련해 준 셈이다.

그런데 임종국님은 그의 희원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서 1989년 눈을 감고 말았으니 그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품고자 하는 우리 후학들은 슬픔을 금할 길 없다.

이상과 같은 임종국님의 지향과 실천을 오늘의 우리 민족 구성원들은 친일파의 유산을 극복하고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제2의 민족해방운동으로 승화·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 역사 및 현재의 삶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주체적 자세로 오욕스런 역사상황을 직시하고 분석함으로써 역사 실패의 내부적 조건들을 검토하여 현실의 문제점을 개선·극복하는 정신과 태도가 절실히 요청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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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부산의 지역신문인 <영도신문>의 고정칼럼인 "민초칼럼"에 2003년 9월 20일에 송고한 바 있는 글을 다소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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