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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국회에서 <친일인명사전> 예산 전액을 삭감한 것을 두고 독립운동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인 조문기 선생이 국회와 이땅의 친일세력을 질타하는 글을 보내왔다. 조 이사장은 일제시기 마지막 의열투쟁으로 불리는 '부민관 폭파의거'의 주인공 3인 가운데 1인으로, 지난 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편집자 주)


▲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독립운동가)
어차피 될 대로 다된 나라에서 민족이니 역사니 지껄여서 뭘 하랴 싶으면서도 친일파 문제 하면 입 다물고는 못 배기는 것은 아마도 타고난 팔자소관인가 싶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 지원예산의 전액삭감 소식이 알려지자 각 보도매체들은 사전발간 계획이 위기를 맞았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관련 국회의원들을 질타하는 소리도 꽤나 높다.

이렇게 되자 이 문제의 한복판에서 직격탄을 맞은 민족문제연구소의 대응에 사회 각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여온다.

전액이 통과됐다고 해도 사전이 완간되기까지의 전체 소요예산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주던 예산으로 활기 있게 진행돼오던 작업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하마터면 느슨해질 뻔한 전의를 다시 추스르고 있는데, “힘내라” “잘 버텨줘라” 등등 격려와 위로의 글과 전화가 쏟아져 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헌데 지금 민족문제연구소가 실의에 빠져서 손발 놓고 한숨만 쉬고 있는 줄로 아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 이 글을 쓴다.

천만에 누구 좋으라고.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런 나약한 단체가 아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용수철처럼 튀어나와서 누르는 자들의 기를 죽여버리는 강철같이 다져진 단체다. 바로 그것이 민족문제연구소가 걸어온 역사이고 전통이고 저력이며 또한 모든 회원들이 공유하는 자랑스러운 긍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 목구멍에 가시를 빼버린 것처럼 홀가분해 하면서 이제 민족문제연구소는 팔다리 다 잘려서 일어서지도 못할 것이라고 안심하고 축배를 들고 있을 저들 친일의 후예들도 머지않아 여전한 모습으로 다시 자기들 앞에 우뚝 설 민족문제연구소의 끈기와 저력 앞에 두손 두발 다 들 날이 오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면서 다시 드러난 친일공화국의 실체 앞에서 친일세력에게 들이댈 칼을 같이 갈자고 했던 엄청난 실수를 뉘우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렇다. 친일세력과의 싸움. 그것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오늘의 독립운동이다. 자신들의 죄악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역사에 기록돼서 후세에 전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일제에게서 물려받은 통치의 칼자루를 휘두르면서 민족의 미래를 가로 막고 있는 친일반역자들이 씨 뿌리고 가꾸어서 강력한 기득권의 주류로 자리 잡게 한 후계자들, 추종자들의 힘은 참으로 막강하다.

가질 것은 다 가진 그들에게 맞서 민족 혼 하나로 싸우는 오늘 우리의 독립 운동은 어느 의미에선 어른과 아이의 싸움처럼 힘겨울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뜻있고 양심 있는 몇몇 정치인들이 삭감 반대의 목소리도 높여봤지만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양지를 좋아하는 이 나라의 많은 학자님들 열심히 친일논리를 개발해서 그들을 감싸주고 아늑한 안식처를 마련해주고 또 공격을 가로막아주는 호위병이 돼주라며 손잡고 친일공화국 건설의 터전을 굳게 만들어줬다.

그 바람에 서슬 퍼런 저들의 오만은 끝 간 데가 없고 온 나라가 친일반역자들의 각종 기념물 조형물에 뒤덮여 친일의 악취가 코를 찌르고 친일반역자들을 떠받들고 기념하는 각종행사들이 줄을 잇는 기상천외한 나라가 됐다. 그래서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박도 지음)가 됐다.

그렇다. 시련은 기회라고 했다. 되는 걸로 믿고 방심했다가 보기 좋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우리는 아니다.

정부가 내부 논의 결과로 반대한다니 노대통령의 “팍팍 밀어 드릴게요” 하던 말도 잊어버리기로 했다. 이제는 오직 국민만을 쳐다보고 역사만을 생각하면서 민족문제연구소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와서 새로운 결의와 전의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이런 우리의 뜻이 하늘에 닿은 건가.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젊은 네티즌들이 우리가 하자고 들고 일어난 것이다. 삽시간에 값진 군자금이 몰려들어 온다. 순간 그렇게도 높게만 보이던 친일의 성벽이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기고만장하던 친일반역자들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들이 떠오른다.

한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 광복이 결코 친일반역자들의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것이 되도록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힘차게 도약의 나래를 펴자.

이 땅에 독립군가가 다시 울려 퍼지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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