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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도에는 수많은 한반도계 도래인의 유적지와 가문이 있으니, 하타(秦) 씨족도 그 중 하나이다. 이들은 주로 한반도 신라나 가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로 큐우슈우의 미나토군(京都郡)과 이토시마군(糸島郡)으로 이주했다가 쿄오토에 집단 정착한 유력한 한반도계 씨족이다. 미나토군을 '경도(京都)'라 씀은 당시 신라 수도 경주를 금성(金城)이나 경도(京都)로 썼음에 연유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토시마군의(糸島郡)의 ‘이토(絲)’는 말 그대로 옷감 짜는 실을 의미이니, 비단을 만들던 하타씨족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지명이라 할 수 있다.

하타씨는 처음에 모두 같은 발음인 파다(波多). 파대(波大).파태(波太).반태(半太).판태(判太)로 표기했었다. 지금은 하타(秦)나 하타(波多).하타(羽田)등으로 대부분 표기하고 있다.

이들이 쿄오토로 이주하여 대활약을 하니, 바로 당시의 최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던 테크노 클래스 집단이었기에 가능했다 할 것이다. 그들이 술 빚는 제신을 모신 마쓰오 다이샤(松尾大社)라든가, 농사의 신을 모신 후시미이나리 신사(伏見稻荷神社)와 미륵반가보살사유상이 있는 코오류우지(廣隆寺)를 건립했던 것이다. 그 중 6-7세기 큰 활약을 했던 하타노 카와카츠(秦河勝)가 코오류우지를 건립했으며, 진씨족 번창의 기틀을 다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바로 코오류우지가 있던 곳이 고대의 야마시로국(山背國) 카도노군(葛野郡)이었다.

그곳은 당시 일본열도 전국의 진씨족을 통치하던 본부가 있던 곳으로써 ‘우즈마사(太秦)’라 표기하나, 처음에는 ‘우즈마사(우두마좌-禹豆(都)麻佐)’나 ‘우즈모리마사(우두모리마좌-禹豆母利麻佐)라 하였다. 때때로 우즈마사를 ‘귀승(貴勝)’이라 표기 했는데, 여기서 마사(勝)는 한국어로 무당을 뜻하는 ‘수쿠리’이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족장(族長)’이나 ‘촌장(村長)’을 일컫는다. 백제계는 대개 '스구리(村主)’라 표시한 반면, 신라계는 ‘마사(勝)’로 구분해서 표기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에는 무당이 추장이요, 촌장으로서 귀한 신분으로 모셔졌으나, 제정분리 후에는 ‘머저리’로 차별받았음을 우리말에서는 알 수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아직도 ‘귀한 분’,‘촌장’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여기서 ‘우즈’는 ‘소머리(牛頭)’를 의미하며, 초창기에는 ‘우즈(禹豆)’의 표기도 대개 우리말 그대로‘소머리(牛頭)’라 적었다. 이는 곳 우리말 ‘우두머리’를 뜻한다. 이는 우두머리가 당시 쿄오토의 카도노군(葛野郡)에 있었던 것으로 코오류우지 근처였다. 이곳에 신라인들이 집단으로 정착하여 당시의 최첨단 산업인 술 빚는 기술로부터 비단 만드는 기술,토목기술, 제염(製鹽)기술,선진 농사기술, 동광(銅鑛)개발 등으로 엄청난 부를 축척했던 것이다.

이들 씨족은 성덕태자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코오류우지를 건립한 것이며, 그들은 키워 온 재력을 바탕으로 급기야 나라에서 수도를 쿄오토로 옮기게끔 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이들이 짜던 비단 방식을 일러 ‘하타오리(機織り)’라하며, 베틀조차도 하타(機)라 하는 연유이다. 참고로 백제계인 ‘아야(漢)’씨들이 짜던 비단 방식을 ‘아야오리(綾織り)’라고 한다.

일본어로 진(秦)은 하타로 읽는데, 이는 이들이 신라에서 바다를 통해 일본에 건너갔다 하여 처음에는 성씨도 ‘하타(波多)’또는 ‘하타(波陀)’로 사용하였으니, 우리말 ‘바다’도 고대에는 ‘파다’ 또는 ‘파타’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큼을 알 수 있다. 일본어로 ‘파다’를 ‘하다’로 읽다가 ‘하타’로 읽게 됐으며, 8세기 중반 이후 중국을 중시하면서 한반도 출신을 차별함에 신라계 진씨들이 엉뚱하게도 진시황의 후예라 하여 ‘진(秦)’을 성씨로 사용하고 족보조차도 진시황 후예인 것처럼 꾸몄던 것이다.

<성씨록>이 쓰여진 9세기 초부터는 ‘하타’라고 읽혀지는 것조차“천황(인덕)이 가라사대, 진왕(秦王-진하승)이 헌납하는 실.면.비단은 짐이 입기에 부드럽고, 따뜻하기가 살과 피부(肌膚)같다. 때문에 성을 하다(波多-당시에는 탁음으로 읽힘)라고 내린다(성을 하타공(波多公)이라 하사함)” 고 왜곡 기술 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 발음 ‘파다(바다)’는 고치지 못하고 현재에도 ‘하타’로 읽고 있으니, 진씨족이 결국은 신라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본 고대에 있어 진씨들은 정부의 창고를 맡아 관리하던 씨족이니, 현재의 재경부와 같으며 그들 씨족이 관리를 독식했던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재벌 가문이었던 것이다.

하타씨는 지금도 유명한 가문이며, 전 수상이었던 하타 쓰토무(羽田 孜)씨도 있었다. 단,그조차도 하타씨가 진시황의 후손이라고 밝혔듯이 잘못된 인식이라 할 것이다. 일본성씨 중 ‘하타’로 발음되면 한자표기가 다르더라도 대부분 신라계 진씨족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이러한 진씨들의 원 고향은 바로 한국의 춘천. 경기양평, 경남 고령의 우두산이 있던 곳이다. 이들이 한반도 북부에서 남부를 거쳐 일본열도로 이주해 간 것이다. 이 내용이 바로<일본서기>에 전해지는 신화로써 신인(神人)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신라의 ‘소시모리(曾尸茂梨)'에 강림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소시머리’란 말 그대로 우리말로 ’소머리’요, ‘우두’이고 ‘우두머리’아니던가? 이들이 춘천, 경기도 경남지역에 분포하다가 금관가야가 있던 김해를 통해 일본 큐우슈우로 쿄오토오로 이동해 갔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춘천의 ‘우두산’과 전국에 산재한 ‘우두산’이 진씨족들이 신성시하던 소 숭배 사상으로 농사를 지어 수확을 하던 가을걷이 때 소를 잡아 소머리로 제단을 꾸며 풍년을 축하하던 씨족집단이었다. 여기서 우두신앙이 나오고 우두산이란 지명이 한국에 남아 있으며, 우두머리란 말이 생겼고 우두머리가 일본에서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원 뜻은 소실되고 소머리란 표기만 남고 만 것이다.

일본에서는‘우주마사’의 어원을 ‘우즈마끼(渦卷き-물이 소용돌이치는 형상)’나‘실타래가 꼬인 상태를 일컫는다’고 설명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어원이 한국어인 ‘우두머리’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우즈마사란 결국 우두머리로 ’통령(統領)’을 의미한다. 즉, 전국의 진씨들을 통합하고 다스리던 진씨들의 본거지를 의미하는 말이 곧 ‘우즈마사’요 이의 어원은 우리말 ‘우두머리’에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원코리아에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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